전체 글455 제33대 창왕 - 출생과 즉위 및 치세, 폐위와 사망, 급전도감, 대마도 정벌 고려 제33대 국왕 창왕(禑王, 1365 ~ 1389)은 우왕과 근비 이씨의 아들로 이름은 창(昌)이다. 1388년 6월에 즉위하여 1389년 11월까지 1년 5개월간 재위한다. 창왕은 위화도 회군 이후 이성계 등에 의해 부왕인 우왕이 폐위되자 뒤를 이어 9세의 나이에 왕이 된다. 창왕은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금지하고, 민생 안정을 위한 정책을 시도했으나, 1389년 11월, 창왕은 우왕과 함께 이성계를 암살하려 했다는 혐의로 이성계 등에 의해 폐위된 후 강화도로 유배되어 처형당한다. 출생과 즉위· 출생과 즉위 창왕(禑王, 1365 ~ 1389)은 우왕과 시중 이림의 딸인 근비 이씨의 외동아들로 이름은 창(昌)이다. 위화도 회군 이후 이성계 등에 의해 부왕인 우왕이 폐위되자 뒤를 이어 9세의 나이에 왕.. 2025. 4. 12. 제32대 우왕 - 외교정책, 왜구의 침입, 요동정벌과 위화도 회군, 사망과 가족 고려 제32대 국왕 우왕(禑王, 1365 ~ 1389)은 공민왕과 신돈의 여종인 반야의 소생으로 아명은 모니노였다가 후에 강녕부원대군 우(禑)로 개명한다. 1374년 9월에 즉위하여 1388년 6월까지 약 14년간 재위한다. 공민왕이 시해당하자 이인임의 추대로 왕위에 오른다. 1388년 명이 철령위 설치를 통보해 오자, 최영을 시켜 요동 정벌을 단행하였으나, 위화도에서 회군한 이성계 일파에 의해 폐위되었다가 이듬해 처형된다. 우왕 재위기간 중에는 신진사대부(정몽주, 정도전, 조준)가 성장하여 권문세족에 대립하고, 왜구의 피해가 극심하여 최무선이 화통도감을 설치하여 화약을 사용한 무기 제조 등으로 대비한다. 또한 청주 흥덕사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인 직지심체요절이 간행된다. 출생과 즉위· 출생.. 2025. 4. 11. 제31대 공민왕 3 - 사망과 가족 및 주요 인물(이제현 이자춘 문익점) 고려 제31대 국왕 공민왕(恭愍王, 1330 ~ 1374)은 충숙왕과 공원왕후 홍씨의 차남으로 이름은 강릉대군 왕기(王祺)이다. 1351년 10월에 즉위하여 1374년 9월에 시해되기까지 23년간 재위한다. 공민왕은 노국대장공주가 사망하고 신돈마저 의심하여 처형하자 정치에 염증을 느끼고 술과 남색 등 향락에 빠진다. 심지어 공민왕은 후사가 생기지 않자 자제위 소년들로 하여금 왕비들을 강간하라고 명령하기에 이른다. 결국 측근인 자제위 홍륜에 의해 45세의 나이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또한 공민왕의 시기에 활약했던 주요 인물로는 이제현, 이자춘, 문익점 등이 있다. 사망과 가족· 사망노국대장공주가 난산으로 사망하자 공민왕은 1372년 젊고 잘 생긴 청년들로 구성된 자제위를 설치하여 시중을 들게 한.. 2025. 4. 10. 제31대 공민왕 2 - 공민왕 시해 사건(김용, 최유의 난) 및 신돈의 급진개혁 고려 제31대 국왕 공민왕(恭愍王, 1330 ~ 1374)은 충숙왕과 공원왕후 홍씨의 차남으로 이름은 강릉대군 왕기(王祺)이다. 1351년 10월에 즉위하여 1374년 9월에 시해되기까지 23년간 재위한다. 공민왕의 재위 기간은 원나라 간섭을 받는 가운데 중국은 원명 교체의 시기이며, 국내적으로는 왜구의 침략과 홍건적 침입으로 토지가 황폐되고 백성들이 죽어나가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이러한 국내외 정세 속에서 공민왕은 노국대장공주와 함께 원의 간섭에서 벗어나 왕권을 강화하여 고려의 자주성을 회복하고자 노력한다. 노국대장공주가 난산으로 사망하자 신돈을 등용하여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하고 유학을 장려하는 등 개혁 정치를 추진한다. 그러나 공민왕은 신돈마저 처형되자 정치에 염증을 느끼고 술과 향락에 빠져 그의 개혁.. 2025. 4. 9. 제31대 공민왕 1 - 출생과 즉위, 반원 자주 개혁 정책, 외적의 침입, 유인우 고려 제31대 국왕 공민왕(恭愍王, 1330 ~ 1374)은 충숙왕과 공원왕후 홍씨의 차남으로 이름은 강릉대군 왕기(王祺)이다. 1351년 10월에 즉위하여 1374년 9월에 시해되기까지 23년간 재위한다. 공민왕의 재위 기간은 원나라 간섭을 받는 가운데 중국은 원명 교체의 시기이며, 국내적으로는 왜구의 침략과 홍건적 침입으로 토지가 황폐되고 백성들이 죽어나가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이러한 국내외 정세 속에서 공민왕은 노국대장공주와 함께 원의 간섭에서 벗어나 왕권을 강화하여 고려의 자주성을 회복하고자 노력한다. 노국대장공주가 난산으로 사망하자 신돈을 등용하여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하고 유학을 장려하는 등 개혁 정치를 추진한다. 그러나 공민왕은 신돈마저 처형되자 정치에 염증을 느끼고 술과 향락에 빠져 그의 개혁.. 2025. 4. 7. 제28대 충혜왕, 제29대 충목왕, 제30대 충정왕 - 생애와 즉위, 사망과 가족 고려 제28대 국왕 충혜왕은 충숙왕의 아들로 이름은 왕정이며, 두 차례(1330~ 1332, 1339~1344)에 걸쳐 왕이 된다. 그는 초기에는 원에 의존하여 왕권을 강화하려고 하였으나, 사치와 향락에 빠져 원나라에 의해 폐위당하고 유배 중에 의문사한다. 충혜왕은 심지어 부왕의 비를 강간하는 패륜을 저지르는 고려 역사상 최악의 폭군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또한 고려 제29대 국왕 충목왕은 충혜왕의 장남으로 이름은 왕흔이며, 재위기간은 1344 ~ 1348년으로 4년이다. 충숙왕이 8세의 어린 나이에 즉위하자 재위기간 내내 어머니 덕녕공주가 섭정을 한다. 권문세족에게 빼앗긴 토지를 되돌려주고, 빈민 구제를 위한 진제도감을 설치하는 등 개혁을 시도하였으나, 즉위 4년 만에 12세의 나이로 요절하여 큰 성과는.. 2025. 4. 6. 제27대 충숙왕 - 출생과 즉위, 원의 간섭과 내정의 혼란, 치세, 가족과 사망 고려 제27대 국왕 충숙왕(忠肅王, 1294 ~ 1339)은 충선왕과 의비 예쉬진의 차남으로 이름은 강릉대군 도(燾)이다. 재위기간은 1313년 ~ 1330년, 1332년 ~ 1339년으로 두 차례에 걸쳐 24년 동안 즉위한다. 충숙왕은 권세가들이 불법으로 차지한 토지와 노비를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기 위해 찰리변위도감을 설치하고, 사심관제도를 폐지하여 중앙집권을 강화하고, 원으로부터 무리한 세공을 삭감하고, 공녀와 내시의 수를 조정하여 백성들의 부담을 경감하려고 노력한다. 이렇게 충숙왕은 원의 내정간섭과 심양왕 고와의 갈등 속에서도 고려의 자주성을 회복하기 위해 개혁을 시도한 왕으로 평가된다. 출생과 즉위· 출생충숙왕(忠肅王, 1294 ~ 1339)은 충선왕과 의비 예쉬진 사이의 차남으로 이름은 강릉대.. 2025. 4. 4. 제26대 충선왕 - 생애와 즉위 및 사망과 가족, 사림원, 만권당, 계국대장공주 고려 제26대 국왕 충선왕(忠宣王, 1275 ~ 1325)은 충렬왕과 제국대장공주(장목왕후)의 장남으로 이름은 장(璋)이다. 충선왕은 1298년 3월 왕위에 올랐으나, 정치적 갈등으로 7개월 만에 퇴위하고 충렬왕이 다시 복위한다. 이후 원나라에서 심양왕으로 활동하며 원 황실과의 관계를 강화했고, 부왕 충렬왕이 사망하자 1308년 9월 다시 고려 왕위에 복귀하여 1313년 4월까지 재위한다. 권문세족의 권력 독점을 막기 위해 정방을 폐지하고 사림원을 설치하는 등 개혁을 시도하였으며, 만권당을 설립하여 원과의 학문과 문화 교류를 촉진한다. 후반에는 아들 충숙왕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원나라에서 독서와 학문 연구에 전념한다. 이렇듯 충선왕은 고려의 정치적, 문화적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개혁적이고 학문을 중.. 2025. 4. 1. 제25대 충렬왕 - 출생과 즉위, 몽골의 일본원정, 치세 및 사망과 가족, 일연 고려 제25대 국왕 충렬왕(忠烈王, 1236 ~ 1308)은 원종과 정순왕후 김씨의 장남으로 이름은 심(諶)이다. 재위기간은 1274년 7월부터 1308년 8월까지 14년 중에 7개월이 빠진 33년 5개월이다. 충렬왕은 원나라 공주와 혼인하여 부마국으로 고려의 자주성 유지하며 외교적 안정을 도모한다. 고려의 관제를 개편하고 중앙집권화를 위해 노력하였으며, 군사력을 강화하여 왜구와 여진의 침입을 격퇴하며, 정동행성을 설치하여 2차에 걸친 몽고의 일본 원정을 지원한다. 또한 자비령 이북(서경) 지역과 탐라(제주)를 원나라로부터 돌려받아 고려의 영토를 회복한다. 출생과 즉위· 출생과 즉위 전 충렬왕(忠烈王, 1236 ~ 1308)은 원종과 정순왕후 김씨의 장남으로 본명은 왕거(王昛)이며, 초명으로는 왕심(王.. 2025. 3. 31. 제24대 원종 - 출생과 즉위 및 무신정권의 종식, 삼별초의 항쟁, 사망과 가족 고려 제24대 국왕 원종(元宗, 1219 ~ 1274)은 고종과 안혜왕후 유씨의 장남으로 이름은 식(植)이다. 즉위기간은 1260년 6월부터 1274년 7월까지 14년 1개월이다. 그러나 1269년 6월부터 1269년 12월까지 5개월간은 무신 임연이 원종을 폐하여 동생 안경공 왕창이 왕이 되었으나 원 쿠빌라이의 간섭으로 다시 원종이 복귀한다. 원종은 태자 때 몽고에 인질이 되었으나 원의 황제 계승 싸움에 쿠빌라이를 지지한다. 부왕 고종이 사망하자 후에 황제가 되는 쿠빌라이의 지원으로 고려왕에 오른다. 몽골과의 전쟁을 끝내고 강화조약을 체결하고, 태자 왕심(충렬왕)을 원의 공주와 혼인시켜 부마국이 된다. 1270년 강화도에서 개경으로 환도하였으며, 삼별초의 난을 진압하고 내부의 혼란을 정리한다. 이와 같.. 2025. 3. 29. 제23대 고종 2 - 몽고의 침략과 여몽전쟁 및 고종의 사망과 가족, 김윤후 고려 제23대 국왕 고종(高宗, 1192 ~ 1259)은 강종과 원덕왕후 유씨의 장남으로 이름은 철(㬚)이다. 고종은 45년 10개월이라는 고려 역사상 가장 오래 동안 재위한 왕으로, 통치 기간 내내 최충헌 → 최우 → 최항 → 최의로 이어지는 최씨 무신정권이 실권을 장악하였으며, 28년 동안 9차례에 걸친 몽고의 침략으로 전국토가 황폐화되고 약탈과 도륙이 자행되었다. 그러나 고종은 몽고에 대항하기 위해 팔만대장경을 만들고 수도를 개경에서 강화도로 천도를 한다. 고종은 정치적 실권은 없었지만 몽골의 침략 속에서 고려의 존속을 유지하려고 노력한 군주로 평가받고 있다. 몽고의 침략과 여몽전쟁· 개요고려에서는 무신정변으로 정치적 혼란이 거듭할 때 대륙에서는 1188년 몽고 보르지긴족의 후예인 예수게이의 아들.. 2025. 3. 27. 제23대 고종 1 - 생애와 즉위 및 거란의 침공, 강동성 전투, 최씨 무신정권 고려 제23대 국왕 고종(高宗, 1192 ~ 1259)은 강종과 원덕왕후 유씨의 장남으로 이름은 철(㬚)이다. 고종은 45년 10개월이라는 고려 역사상 가장 오래 동안 재위한 왕으로, 그의 통치 기간 내내 최충헌 → 최우 → 최항 → 최의로 이어지는 약 62년간 최씨 무신정권이 실권을 장악하였으며, 28년 동안 9차례에 걸친 몽고의 침략으로 전국토가 황폐화되고 약탈과 도륙이 자행되었다. 또한 고종은 몽고에 대항하기 위해 팔만대장경을 만들고 수도를 개경에서 강화도로 천도를 한다. 이와 같이 고종 때는 고려 역사상 가장 혼란스러운 시기로 고종은 정치적 실권은 없었지만 몽골의 침략 속에서 고려의 존속을 유지하며 중요한 결정을 내린 군주로 평가받고 있다. 무신정권 시대 국제정세· 몽고의 등장고려에서는 무신정변으.. 2025. 3. 27. 이전 1 2 3 4 ··· 38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