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제31대 국왕 공민왕(恭愍王, 1330 ~ 1374)은 충숙왕과 공원왕후 홍씨의 차남으로 이름은 강릉대군 왕기(王祺)이다. 1351년 10월에 즉위하여 1374년 9월에 시해되기까지 23년간 재위한다. 공민왕은 노국대장공주가 사망하고 신돈마저 의심하여 처형하자 정치에 염증을 느끼고 술과 남색 등 향락에 빠진다. 심지어 공민왕은 후사가 생기지 않자 자제위 소년들로 하여금 왕비들을 강간하라고 명령하기에 이른다. 결국 측근인 자제위 홍륜에 의해 45세의 나이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또한 공민왕의 시기에 활약했던 주요 인물로는 이제현, 이자춘, 문익점 등이 있다.
사망과 가족
· 사망
노국대장공주가 난산으로 사망하자 공민왕은 1372년 젊고 잘 생긴 청년들로 구성된 자제위를 설치하여 시중을 들게 한다. 1374년 9월, 자제위 소속인 홍륜이 공민왕의 후궁 익비 한씨와 간통하여 임신하자 내시 최만생이 은밀히 공민왕에게 알린다. 그러자 공민왕은 "이 사실을 아는 자를 모두 죽이겠다."라고 말한다. 이에 두려움을 느낀 최만생은 홍륜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그날 밤 홍륜은 권진, 홍관 등과 모의하여 술에 취한 공민왕을 찔러 죽이고 "도둑이 침입했다"라고 소리친다. 다음 날 아침 명덕태후가 강녕대군 우를 데리고 내전에 와서 왕의 죽음을 비밀에 부친다. 결국 이인임이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되고 최만생과 홍륜 등 변란의 주동자들은 체포되어 거열형을 당하고 삼족이 멸족된다. 이 사건으로 어린 우왕이 공민왕의 뒤를 이어 왕이 되고 이인임이 섭정을 하게 된다. 우왕은 공식적으로 공민왕과 궁녀 한씨의 소생으로 발표한다. 그러나 신돈과 신돈의 여종 반야의 소생이라는 소문에 시달리게 된다. 후에 이성계 일파들은 이 소문을 '폐가입진'으로 조선의 개국을 정당화하는 데에 이용한다. 이렇게 반원 자주 개혁을 추진했던 공민왕은 허무하게 홍륜 일당에 의해 45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하고 만다. 공민왕의 능은 현릉(玄陵)으로 노국대장공주의 능인 정릉(正陵)과 나란히 있다. 현재 개성시 개풍구 해선리 봉명산 중턱에 소재하고 있다.
· 가족
공민왕은 제1비 노국대장공주, 제2비 혜비 이씨, 제3비 익비 한씨, 제4비 신비 염씨, 제5비 정비 안씨와 궁인인 순정왕후 한씨라는 6명의 부인과 시비인 반야에게서 1명의 자식인 강녕부원대군 왕우(우왕)를 낳는다. 노국대장공주는 원나라의 위왕의 딸로 1349년 공민왕과 혼인하고 1351년 숙옹옹주로 책봉된다. 1365년 결혼 16년 만에 임신하였으나 난산으로 인해 아이를 유산하고 세상을 떠난다. 혜비 이씨는 대학자 이제현의 딸로 1359년에 후궁으로 입궐한다. 공민왕이 자제위 소년들을 시켜 왕비들을 강간하려 하자 끝까지 절개를 지킨다. 1374년 4월 공민왕이 죽자 출가하여 여승이 된다. 익비 한씨는 공민왕의 강요로 홍륜과 관계하여 임신하고 딸을 출산한다. 그 후 1388년 위화도 회군으로 집권한 이성계, 조민수 일파의 강요로 우왕을 폐하고 창왕을 세우는 교서를 내리고, 이어서 창왕을 폐하고 공양왕을 세우는 교서도 내린다. 정비 안씨는 절세미인으로 공민왕이 자제위 소년들로 하여금 강간하려 하자 목을 매는 등 강하게 저항하여 절개를 지킨다. 공민왕이 죽고 난 후 우왕이 그녀에게 욕심을 내자 동생을 바쳐 위기를 넘긴다. 훗날 공양왕을 폐하고 이성계를 옹립하는 전교를 내림으로써 고려의 문을 닫고 조선을 열게 해 준 인물이 된다. 신비 염씨는 자제위 소년들의 능욕을 거부하였으며, 공민왕이 피살되자 여승이 된다. 반야는 신돈의 여종으로 공민왕과 동침하여 임신한다. 그 후 신돈의 친구 능우의 어머니 집에서 아들을 출산하고 다시 신돈의 집으로 돌아간다. 1371년 신돈을 제거한 공민왕은 반야의 소생 모니노를 궁궐로 데려와 이름을 왕우로 개명한다. 공민왕은 이미 사망한 궁인 한씨를 왕우의 생모라고 발표한다. 우왕은 즉위하자 반야가 나타나 명덕태후의 처소에 나타나 자신이 생모라고 주장하다 쫓겨난다. 이에 이인임은 우왕이 신돈의 자식이라고 오해를 살까 염려하여 반야를 임진강에 수장시켜 버린다.
주요 인물
· 이제현(李齊賢, 1287 ~ 1367)
이제현은 고려 후기의 문신, 학자, 문인으로 본관은 경주이며, 자는 중사(仲思), 호는 익재(益齋)와 역옹(櫟翁)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학문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며, 1301년(충렬왕 27년) 성균시에 장원급제하고 과거에 합격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한다. 1314년 충선왕의 초청으로 원나라 연경의 만권당에서 학문을 연구하며 원나라 학자들과 교류를 통해 성리학을 연구하고 고려에 도입하고 이를 체계화하여 조선 시대 성리학 사림파의 학문적 기반이 된다. 그는 정당문학, 판삼사사, 문하시중 등을 역임하며 원의 간섭 속에서도 고려의 독립성을 유지하는 데에 노력한다. 또한 저서로는 <익제집>, <역옹패설>, 시문집인 <익재난고> 등이 있다. 특히 이제현의 <역옹패설>은 경전, 인물, 시문, 서화 등에 대한 비평과 자신의 시문을 싣고 있어 이인로의 <파한집>, 촤자의 <보한집>과 더불어 고려의 3대 비평문학서로 손꼽힌다. 그의 시와 산문은 고려 한문학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러한 이제현은 1367년(공민왕 16)에 8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 경주의 구강서원과 금천의 도산서원에 제향 되어 후대에 기려지고 있다.
· 이자춘(李子春, 1315 ~ 1361)
이자춘의 조상들은 원나라의 관리로 지내오면서 동북지역에 막강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자춘은 이원계, 이성계, 이화 등의 아들을 두고 쌍성 일대에서 고려 유민의 지도자로 부상한다. 그는 망해가고 있는 원과 결별하고 고려와 손을 잡기로 결심한다. 유인우가 쌍성총관부를 정벌할 때 머뭇거리자 공민왕은 이자춘에게 연락한다. 이에 이자춘은 즉시 군사를 일으켜 성문을 열고 쌍성을 공격해 함락시키고 주위의 여러 성을 빼앗는다. 공민왕은 그 공을 치하해 이자춘에게 벼슬을 내려 개경에 집을 주고 살게 한다. 그때부터 이자춘은 병마사를 거쳐 호부상서에 오른다. 이자춘이 4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당시 26세이던 둘째 아들 이성계가 동북면을 지배하고 사병을 거느린다. 결국 이자춘은 고려로 돌아와 아들 이성계가 조선을 창업할 수 있는 확고한 기반을 마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 문익점(文益漸, 1329 ~ 1398)
문익점은 고려 후기의 학자이자 정치가로 본관은 남평이며 자는 일신 호는 삼우당이다. 그는 성리학을 연구하고 실천한 인물이다. 1363년 서장관이었던 문익점은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으며 덕흥군 왕혜를 지지하여 귀국 후 1364년에 공민왕에 의해 파면된다. 그러나 문익점은 원나라에서 돌아올 때 목화씨를 들여와 고려에 전파한다. 문익점과 그의 장인인 정천익이 겨우 싹튼 세 그루 중에 한 그루만 살려 3년간 노력 끝에 대량재배에 성공한다. 그 후 원의 승려 홍원으로부터 씨아와 물레를 들여와 백성들에게 목화재배법과 베 짜는 방법을 보급한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나지 않아 백성들은 솜옷과 솜이불을 덮을 수 있어, 고려의 농업과 섬유 산업, 백성들의 의복 생활에 커다란 혁명을 가져오게 된다. 처음으로 시험재배한 장소가 경남 산청군 단성면 사월리로 오늘날 사적 제108호로 지정되어 있다.
제31대 공민왕 1 - 출생과 즉위, 반원 자주 개혁 정책, 외적의 침입, 유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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