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제33대 국왕 창왕(昌王, 1365 ~ 1389)은 우왕과 근비 이씨의 아들로 이름은 창(昌)이다. 1388년 6월에 즉위하여 1389년 11월까지 1년 5개월간 재위한다. 창왕은 위화도 회군 이후 이성계 등에 의해 부왕인 우왕이 폐위되자 뒤를 이어 9세의 나이에 왕이 된다. 창왕은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금지하고, 민생 안정을 위한 정책을 시도했으나, 1389년 11월, 창왕은 우왕과 함께 이성계를 암살하려 했다는 혐의로 이성계 등에 의해 폐위된 후 강화도로 유배되어 처형당한다.
출생과 즉위
· 출생과 즉위
창왕(禑王, 1365 ~ 1389)은 우왕과 시중 이림의 딸인 근비 이씨의 외동아들로 이름은 창(昌)이다. 위화도 회군 이후 이성계 등에 의해 부왕인 우왕이 폐위되자 뒤를 이어 9세의 나이에 왕이 되니, 그가 바로 고려 제33대 국왕 창왕이다. 그는 이성계 등에 의해 1388년 6월에 즉위하여 강제 폐위되는 1389년 11월까지 1년 5개월 동안 재위한다.
창왕의 치세
창왕이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이성계가 섭정을 한다. 고려의 조정은 개혁의 방향을 두고 조민수, 이색, 정몽주 등의 점진적 개혁을 주장하는 온건 개혁파와 이성계, 정도전 등의 급진적 개혁을 주장하는 급진 개혁파로 대립된다. 결국 조민수, 이색 등이 축출되고 이성계 등 급진적 개혁파들이 실권을 잡는다. 창왕은 이러한 혼란한 정세 속에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나름대로 독자적인 판단으로 정사를 수행하려고 노력한다.
· 정방폐지
지나친 군부의 권력을 막기 위해 무신들의 상설기구인 정방을 폐지한다.
· 급전도감
조준을 내세운 이성계 등은 가장 먼저 토지제도의 전면적인 개혁을 주장한다. 급전도감을 설치하여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금지하고 농민들에게 재분배하는 토지개혁을 실시한다. 이 과정에서 조민수가 탄핵되고 1389년 10월 이색이 정계에서 떠나게 되니, 이성계 등의 급진적 개혁파들이 실권을 잡게 된다.
· 민생 안정
공물징수를 조정하고, 지방관료들의 부패를 단속하는 등 백성들의 부담을 줄여 민생을 안정시킨다.
· 대마도 정벌
또한 왜구의 침입에 대응하기 위해 박위를 파견하여 대마도를 정벌한다. 박위는 100척의 함선을 이끌고 왜선 300척을 불태우고 포로로 잡힌 고려인 100여 명을 구출한다.
폐위와 사망
· 사망
1389년 11월 창왕과 김저, 정득후 등이 이성계를 제거하고 폐위된 강릉으로 유배된 우왕을 복위시키려다가 곽충보의 밀고로 인해 발각된다. 그 결과 김저가 체포되자 정득후는 자살하고 관련자들은 모두 숙청되어 유배를 간다. 이 사건을 우왕복위 미수사건이라 하며 이를 빌미로 창왕은 아버지 우왕과 연락을 취하고 가담했다는 이유로 폐위된다. 얼마 후 강화도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집행관 유순에게 시해된다. 이때 부왕인 우왕도 함께 강릉에서 죽임을 당한다. 창왕이 죽고 난 후 왕릉은 별도로 조성되지 않는다.
· 우창비왕설
이때 이성계 등은 우왕의 아들 창왕마저 즉위한 지 1년 6개월 만에 1389년 11월 폐위한다. 이때 '가짜 왕을 몰아내고 진짜 왕을 세운다'는 폐가입진(廢假立眞)과 '우왕과 창왕은 역적 신돈의 자식이다'는 우창비왕설(禑昌非王說)을 내세우며, 우왕과 창왕을 폐위하고 충렬왕의 외증손인 정창군 요(공양왕)를 왕으로 옹립한다.
주요 인물
· 정도전(鄭道傳, 1342 ~ 1398)
정도전은 정운경의 아들로 경북 영주에서 태어난 고려 말과 조선 초의 문신이자 학자, 정치가로 호는 삼봉(三峰)이다. 어린 시절 이색의 문하에서 정몽주, 이존오, 윤소종 등과 함께 유학을 배운다. 1360년 성균시, 1362년 진사시를 합격하여 충주사록, 전교주부 등을 지낸다. 1370년 이색이 성균관 대사성이 되자 성균박사에 임명된다. 1375년에 이인임 등의 친원정책에 반대하여 유배된다. 그 후 유배가 풀리자 삼봉산 밑에 삼봉재를 짓고 제자에게 유학을 가르친다. 얼마 후 정적의 압력으로 김포로 이사를 간다. 이렇게 삼봉 정도전은 유배와 유랑생활을 계속하다 1383년 함주 막사로 이성계를 찾아가 조정에 복귀하여 1387년 성균관 대사성이 된다. 1388년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으로 창왕을 세우자 밀직부사가 되어 조준 등과 함께 전제개혁을 추진한다. 1389년 이성계, 조준 등과 함께 창왕을 폐위시키고 공양왕을 옹립한다. 1391년 8월 공양왕과 정몽주의 반격으로 봉화, 나주 등으로 유배를 하다가 1392년 봄 영주로 돌아온다. 그 후 이성계가 낙마하여 위독해지자 다시 유배를 갔다가 1392년 7월 조준, 남은 등과 함께 이성계를 왕으로 추대하여 조선을 개국한다. 그는 조선 건국의 이념적 기반을 마련한 급진 개혁파로 성리학을 통해 중앙집권적 관료제 국가를 구상한 조선의 설계자로 불린다. 고려 말 권문세족의 부패를 비판하고 역성혁명을 주도하여 조선 건국에 기여했으며, 조선 태조 이성계의 신임을 받아 개국공신으로 활약한다. 1398년 진법 훈련을 강화하여 요동정벌을 추진한다. 그러나 제1차 왕자의 난 때 1398년 8월 이방원에 의해 암살당하며 생을 마감한다. 그의 저서로는 <조선경국전>, <경제문감>, <불씨잡변> 등이 있다.
· 이색(李穡, 1328 ~1396 )
고려 말기의 문신이자 학자로, 성리학을 고려에 소개하고 확산시키며 학문적 기반을 다진 온건 개혁파이다. 그는 권문세족의 부패를 비판하며 점진적인 개혁을 통해 고려 왕조를 유지하려 한다. 공민왕 시기에 성균관 대사성으로서 학문을 장려하고, 정몽주와 정도전 등 많은 학자를 배출한다. 조선 건국 이후에도 출사를 거부하며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켰으며, 그의 학문적 업적은 후대에 큰 영향을 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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