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고려사38

제34대 공양왕 - 출생과 즉위, 고려의 멸망, 사망과 가족, 주요 인물, 정몽주 고려 제34대 국왕 공양왕(恭讓王, 1345 ~ 1394)은 정원부원군 균(鈞)과 국대비 왕씨의 둘째 아들로 이름은 정찬군 요(瑤)이다. 1389년 11월에 즉위하여 1392년 7월까지 2년 8개월간 재위한다. 공양왕은 고려 왕조의 쇠퇴를 막으려고 과전법을 실시, 급전도감 설치, 한양 천도 시도, 사원재산 몰수 등 개혁을 시도한다. 공양왕과 정몽주는 이성계가 사냥 중 낙마하자 정도전, 조준 등 급진 개혁파를 탄핵하여 귀양을 보낸다. 그러나 이방원의 정몽주 암살로 다시 권력을 장악한 이성계 등 급직 개혁파들은 1392년 7월 공양왕을 폐위하고 이성계를 왕으로 옹립한다. 이로써 고려 왕조는 475년 만에 34대 공양왕을 마지막 왕으로 멸망하고 조선이 개국하게 된다.   출생과 즉위· 출생공양왕(恭讓王, 13.. 2025. 4. 13.
제33대 창왕 - 출생과 즉위, 치세, 폐위와 사망, 대마도 정벌, 정도전과 이색 고려 제33대 국왕 창왕(昌王, 1365 ~ 1389)은 우왕과 근비 이씨의 아들로 이름은 창(昌)이다. 1388년 6월에 즉위하여 1389년 11월까지 1년 5개월간 재위한다. 창왕은 위화도 회군 이후 이성계 등에 의해 부왕인 우왕이 폐위되자 뒤를 이어 9세의 나이에 왕이 된다. 창왕은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금지하고, 민생 안정을 위한 정책을 시도했으나, 1389년 11월, 창왕은 우왕과 함께 이성계를 암살하려 했다는 혐의로 이성계 등에 의해 폐위된 후 강화도로 유배되어 처형당한다. 출생과 즉위· 출생과 즉위 창왕(禑王, 1365 ~ 1389)은 우왕과 시중 이림의 딸인 근비 이씨의 외동아들로 이름은 창(昌)이다. 위화도 회군 이후 이성계 등에 의해 부왕인 우왕이 폐위되자 뒤를 이어 9세의 나이에 왕.. 2025. 4. 12.
제32대 우왕 - 외교정책, 왜구의 침입, 요동정벌과 위화도 회군, 사망과 가족 고려 제32대 국왕 우왕(禑王, 1365 ~ 1389)은 공민왕과 신돈의 여종인 반야의 소생으로 아명은 모니노였다가 후에 강녕부원대군 우(禑)로 개명한다. 1374년 9월에 즉위하여 1388년 6월까지 약 14년간 재위한다. 공민왕이 시해당하자 이인임의 추대로 왕위에 오른다. 1388년 명이 철령위 설치를 통보해 오자, 최영을 시켜 요동 정벌을 단행하였으나, 위화도에서 회군한 이성계 일파에 의해 폐위되었다가 이듬해 처형된다. 우왕 재위기간 중에는 신진사대부(정몽주, 정도전, 조준)가 성장하여 권문세족에 대립하고, 왜구의 피해가 극심하여 최무선이 화통도감을 설치하여 화약을 사용한 무기 제조 등으로 대비한다. 또한 청주 흥덕사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인 직지심체요절이 간행된다. 출생과 즉위· 출생.. 2025. 4. 11.
제31대 공민왕 3 - 사망과 가족 및 주요 인물(이제현 이자춘 문익점) 고려 제31대 국왕 공민왕(恭愍王, 1330 ~ 1374)은 충숙왕과 공원왕후 홍씨의 차남으로 이름은 강릉대군 왕기(王祺)이다. 1351년 10월에 즉위하여 1374년 9월에 시해되기까지 23년간 재위한다. 공민왕은 노국대장공주가 사망하고 신돈마저 의심하여 처형하자 정치에 염증을 느끼고 술과 남색 등 향락에 빠진다. 심지어 공민왕은 후사가 생기지 않자 자제위 소년들로 하여금 왕비들을 강간하라고 명령하기에 이른다. 결국 측근인 자제위 홍륜에 의해 45세의 나이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또한 공민왕의 시기에 활약했던 주요 인물로는 이제현, 이자춘, 문익점 등이 있다.  사망과 가족· 사망노국대장공주가 난산으로 사망하자 공민왕은 1372년 젊고 잘 생긴 청년들로 구성된 자제위를 설치하여 시중을 들게 한.. 2025. 4. 10.
제31대 공민왕 2 - 공민왕 시해 사건(김용, 최유의 난) 및 신돈의 급진개혁 고려 제31대 국왕 공민왕(恭愍王, 1330 ~ 1374)은 충숙왕과 공원왕후 홍씨의 차남으로 이름은 강릉대군 왕기(王祺)이다. 1351년 10월에 즉위하여 1374년 9월에 시해되기까지 23년간 재위한다. 공민왕의 재위 기간은 원나라 간섭을 받는 가운데 중국은 원명 교체의 시기이며, 국내적으로는 왜구의 침략과 홍건적 침입으로 토지가 황폐되고 백성들이 죽어나가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이러한 국내외 정세 속에서 공민왕은 노국대장공주와 함께 원의 간섭에서 벗어나 왕권을 강화하여 고려의 자주성을 회복하고자 노력한다. 노국대장공주가 난산으로 사망하자 신돈을 등용하여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하고 유학을 장려하는 등 개혁 정치를 추진한다. 그러나 공민왕은 신돈마저 처형되자 정치에 염증을 느끼고 술과 향락에 빠져 그의 개혁.. 2025. 4. 9.
제31대 공민왕 1 - 출생과 즉위, 반원 자주 개혁 정책, 외적의 침입, 유인우 고려 제31대 국왕 공민왕(恭愍王, 1330 ~ 1374)은 충숙왕과 공원왕후 홍씨의 차남으로 이름은 강릉대군 왕기(王祺)이다. 1351년 10월에 즉위하여 1374년 9월에 시해되기까지 23년간 재위한다. 공민왕의 재위 기간은 원나라 간섭을 받는 가운데 중국은 원명 교체의 시기이며, 국내적으로는 왜구의 침략과 홍건적 침입으로 토지가 황폐되고 백성들이 죽어나가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이러한 국내외 정세 속에서 공민왕은 노국대장공주와 함께 원의 간섭에서 벗어나 왕권을 강화하여 고려의 자주성을 회복하고자 노력한다. 노국대장공주가 난산으로 사망하자 신돈을 등용하여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하고 유학을 장려하는 등 개혁 정치를 추진한다. 그러나 공민왕은 신돈마저 처형되자 정치에 염증을 느끼고 술과 향락에 빠져 그의 개혁.. 2025. 4.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