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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고려사

제23대 고종 2 - 몽고의 침략과 여몽전쟁 및 고종의 사망과 가족, 김윤후

by 이야기마을촌장 2025. 3. 27.

고려 제23대 국왕 고종(高宗, 1192 ~ 1259)은 강종과 원덕왕후 유씨의 장남으로 이름은 철(㬚)이다. 고종은 45년 10개월이라는 고려 역사상 가장 오래 동안 재위한 왕으로, 통치 기간 내내 최충헌 → 최우 → 최항 → 최의로 이어지는 최씨 무신정권이 실권을 장악하였으며, 28년 동안 9차례에 걸친 몽고의 침략으로 전국토가 황폐화되고 약탈과 도륙이 자행되었다. 그러나 고종은 몽고에 대항하기 위해 팔만대장경을 만들고 수도를 개경에서 강화도로 천도를 한다. 고종은 정치적 실권은 없었지만 몽골의 침략 속에서 고려의 존속을 유지하려고 노력한 군주로 평가받고 있다.

홍릉

 

몽고의 침략과 여몽전쟁

· 개요

고려에서는 무신정변으로 정치적 혼란이 거듭할 때 대륙에서는 1188년 몽고 보르지긴족의 후예인 예수게이의 아들 테무친이 부족장이 되어 몽고족을 통일한다. 1206년 테무친은 칭기즈칸이 되어 아시아와 유럽 전역에 걸치는 대제국을 건설한다. 몽고는 1225년 몽골사신 저고여가 압록강에서 피살되는 사건을 빌미로 고려 정벌에 나서고, 1234년에는 금나라를 멸망시킨다. 1231년부터 1259년까지 28년 동안 9차례에 걸친 몽고의 침략으로 고려는 피폐해지고, 1258년 무신정권의 마지막 독재자 최의 죽음으로써 62여 년 간의 최씨 무신정권은 끝이 난다. 1259년 강화도에서 저항하던 고종은 몽고에 항복한다. 그 후 원의 세조 쿠빌라이 체제 속에 안주하면서 고려 원종 이후부터는 원 황실의 부마국이 되어 특권을 부여받는다. 그 결과 고려는 원의 내정 간섭과 수탈을 받게 되지만 한편으로는 대륙의 문화를 직접 받아들이는 특혜를 받기도 한다.

 

· 제1차 여몽전쟁(1231년)
몽골은 사신 저고여의 피살 사건을 구실로 침략을 시작한다. 살리타가 이끄는 몽골군은 압록강을 넘어 귀주성을 공격했으나 박서, 김경손 장군의 항전으로 실패한다. 이후 몽골군은 개경을 포위하며 약탈을 자행하자, 고려는 강화를 맺고 막대한 공물을 바친다.

· 제2차 여몽전쟁(1232년)
최우는 수도를 개경에서 강화도로 옮기고 몽고와의 장기적인 항전을 준비한다. 이에 살리타의 몽골군은 강화 천도에 반발하여 다시 침입한다. 처인성 전투에서 고려 승려인 김윤후가 쏜 화살을 맞고 살리타가 사망하자 몽고군은 철수한다. 이때 부인사의 초조대장경이 소실된다. 

· 제3차 여몽전쟁(1235년)
당올대의 몽골군은 4년간에 걸쳐 전국 각지를 휩쓸며 약탈한다. 이때 황룡사 9층 목탑을 파괴된다. 이에 고려는 불교의 힘으로 국난 극복하고자 1236년에 팔만대장경 조판에 착수하여 1251년에 완성한다. 이는 합천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는 총 81,137매의 대장경으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대장경이며, 2007년에 세계기록유산에 지정된다. 1238년 김보정을 적진에 보내 강화를 제의하자 몽골은 왕의 입조를 조건으로 철수를 한다. 그 후 몽골이 왕의 입조를 독촉하자 고려는 1241년 영녕공 준을 왕자로 가장시켜 몽골에 인질로 보낸다. 

· 제4~6차 여몽전쟁(1247~1254년)
몽골은 고려 왕의 입조와 강화도에서 나올 것을 요구하며 1247년 4차 침입은 아모간이 이끄는 몽골군이 침입한다. 1253년 5차 침입은 예케가 이끄는 몽골군이 침입한다. 이에 고려는 제1차 충주성 전투에서 김윤후가 방어하고 왕자 안경공 창을 인질로 보내자 몽골군은 철수한다. 1254년 6차 침입은 자랄타이(차라대)가 이끄는 몽골군이 침공하여 제2차 충주성전투와 상주산성 전투가 벌어진 전쟁으로 고려는 포로가 20만 명에 사망한 사람이 셀 수도 없을 정도로 가장 피해가 심한 전쟁이었다.

· 제7~9차 여몽전쟁(1255~1259년)
1255년 제7차 침입은 자랄타이가 이끄는 몽고군이 침입한다. 이때 몽고에 갔던 김수강이 몽케 칸(원 헌종)을 설득하여 몽고군은 철수한다. 1257년 제8차 침입은 몽골에 보내는 세공이 중지되자 자랄타이가 이끄는 몽고군이 침입하여 강화도를 제외한 고려 전역을 초토화한다. 이에 고려는 김수강을 사신으로 보내 설득하자 친조를 하는 조건으로 몽고군은 일단 북으로 후퇴한다. 그 후 몽골은 고려왕의 입조와 강화도에서 나올 것을 끈질지게 요구한다. 고려와 몽골의 강화 교섭이 진척되지 않고 있다가 1258년 최의가 김준, 유경에게 암살되자 강화의 기운이 일어난다. 1259년 3월 고종은 더이상 저항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박희실 등을 사신으로 보내 몽골과의 강화 협상을 하여 항복한다. 이로써 28년에 걸친 몽골과의 전쟁은 끝이 난다. 1959년 6월 고종은 사망하고, 원에 인질로 가있던 태자 왕전이 1960년 6월에 귀국하여 왕이 되니 그가 바로 원종이다. 

 

 

사망과 가족

· 사망과 가족
1259년 음력 6월 30일 고종은 강화도에서 68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그의 능은 홍릉(洪陵)으로 강화도에 위치하고 있다. 강종은 정비인 안혜왕후 유씨에게서 2남(왕전 원종, 안경공 창 영종)과 2녀(수흥궁주, 미상의 공주)를 얻는다. 안경공 왕창은 몽고 5차 침입 때 태자 왕전을 대신해 몽고에 인질로 들어가 몽고군의 철병을 요구한다. 1259년 부왕 고종이 사망하자 너무 슬퍼하다 심신을 다쳐 그 후 지팡이를 짚고 다녔으며, 1269년 무신 임연이 형인 원종을 폐하고 그를 왕으로 옹립하였지만 원의 간섭으로 곧 폐위된다. 그는 사망한 후 영종으로 추증되었다. 

 

 

주요 인물

· 이규보(1168 ~ 1241)

이규보는 고려 고종 시기에 활동한 문신이자 대문장가로 본관은 황려(黃驪)이며, 자는 춘경(春卿), 호는 백운거사(白雲居士)이다. 그는 1189년 국자감시에 장원급제하였으며 거만한 성격으로 미관말직에 머물러고 있었다. 그러나 최씨 무신정권의 최충헌에게 발탁 중용되어 문필가로서 활동하며 많은 작품을 남긴다. 특히 고려의 정통성을 강조하며 민족의 자긍심을 고취시키는 장편서사시 <동명왕편>이 실려있는 시문집 <동국이상국집>을 편찬하여 한국 문학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또한, 가전체 문학의 대표작인 <국선생전>을 통해 서사 문학의 발전에도 기여했다. 또한 <백운소설>은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의 여러 시화를 모아놓은 것인데 고대소설의 전신인 패관문학 작품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 그의 문학적 세계는 독창성과 개성을 중시하는 신의론(新意論)을 바탕으로 당시의 전통적인 문학관과는 대조적이다.

 

제23대 고종 1 - 생애와 즉위 및 거란의 침공, 강동성 전투, 최씨 무신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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