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제21대 국왕 희종은 신종의 맏아들로 이름은 왕영이며, 24세의 젊은 나이로 왕이 된다. 즉위 초 1211년, 최충헌을 제거하려는 수창궁 사변이 실패하면서 폐위되어 강화도로 유배되었다가 다시 개경으로 돌아왔으나 이후 희종 복위 음모로 인해 다시 강화도 등으로 유배되었다가 생애를 마친다. 또한 고려 제22대 국왕 강종은 명종의 맏아들로 이름은 왕숙이다. 1211년에 최충헌에 의해 희종이 폐위되자 60세의 나이에 왕으로 옹립되었으나, 1213년에 62세의 나이로 사망함으로써 재위기간이 짧다. 두 왕 모두 왕권이 약화된 시기에 재위했던 왕들로 최충헌의 무신정권의 허수아비 노릇을 한 왕들이다.
희종의 생애
· 즉위
희종(熙宗, 1181 ~ 1237)은 신종과 선정왕후 김씨의 2남 2녀 중 장남으로 이름은 처음에 연에서 태자일 때 덕이 되었다가 왕이 된 후 영(韺)으로 개명한다. 재위기간은 1204년 1월부터 1211년 12월까지 8년이다. 1204년 1월 신종은 등창으로 위독해지자 장남 왕덕에게 왕위를 물려주니, 그가 바로 고려 제21대 국왕 희종이다. 이때 그의 나이 24세였다.
· 생애
젊고 영특한 희종은 즉위초부터 최충헌의 전횡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러던 중 1211년 12월 희종은 최충헌을 제거하려고 왕준명 일파와 승려들과 함께 '수창궁 사변'을 일으킨다. 최충헌이 수창궁으로 희종을 알현하려 오자 몰래 숨어있던 왕준명 일파와 승려들은 최충헌을 습격하여 부하들을 죽이고 최충헌마저 죽이려고 찾는다. 그러나 몰래 숨어 있던 최충헌이 겨우 목숨을 건져 도망치자 결국 거사는 실패로 끝난다. 이에 분개한 최충헌의 부하 김약진이 희종을 죽이려고 하자 최충헌은 이를 말린다. 그 결과 최충헌은 희종을 폐하고 명종의 아들이자 사촌형인 한남공 왕정(강종)을 왕으로 옹립한다. 희종은 강화도 등으로 유배되었다가 1219년 4월 딸인 덕창궁주가 최충헌의 아들 최성과 혼인을 하면서 개경으로 다시 돌아온다. 최충헌의 사돈이 된 희종은 1227년 무신 노지정, 금휘 등이 최우를 죽이고 희종을 복위시키려는 음모가 발각되면서 무고로 최우에 의해 다시 강화도 등으로 유배를 당한다.
· 사망
그후 희종은 천수를 누리고 살다가 1237년 법천정사에서 56세의 나이로 자연사한다. 그의 능은 석릉(碩陵)으로 강화도 양도면에 소재하고 있다. 희종은 최씨 무인정권에 대항하였지만 실패하고 유배만 18년 동안 살았던 불운한 삶을 살았던 실권이 없는 왕으로 평가된다.
· 가족
희종은 최충수에 의해 폐위된 왕우의 딸 폐태자비 왕씨와 성평왕후 임씨의 2명의 부인이 있다. 자식은 성평왕후 임씨에게서만 5남(창원공 왕지, 시녕후 왕위, 경원공 왕조, 대선사 경지, 충명국사 각응)과 5녀(고종의 왕비가 된 승복(안혜왕후), 영창, 덕창, 가순, 정희궁주)를 낳는다.
강종의 생애
· 생애
강종(康宗, 1152 ~ 1213)은 명종과 의정왕후 김씨의 1남 2녀 중 장남으로 이름은 처음에 숙에서 태자일 때 정이 되었다가 왕이 된 후 오(祦)로 개명한다. 1173년 강종은 23세의 나이로 왕태자로 책봉되어 이후 태자로서의 삶을 산다. 그러나 1197년, 부왕 명종이 최충헌에 의해 폐위되자, 그도 역시 태자에서 폐출되어 강화도로 유배된다. 1210년 강종은 다시 개경으로 소환되어 이듬해 1211년 한남공에 봉해지자 이름을 정으로 개명한다.
· 즉위
희종이 최충헌을 암살하려고 수창궁 사건을 일으켜 실패하자, 1211년 음력 12월 25일 최충헌은 희종을 폐하고 사촌형인 한남공 왕정을 왕으로 옹립하니, 그가 바로 고려 제22대 국왕 강종이다. 이때 그의 나이 60세로 역대 고려 왕 중에 최고령으로 즉위한 왕이 된다. 재위기간은 1211년 12월부터 1213년 8월까지 1년 8개월이다.
· 사망
강종은 14년 동안 오랜 유배생활로 인한 지병으로 즉위한 지 1년 8개월 만인 1213년 음력 8월 9일, 태자 왕진(고종)에게 선위하고 62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그의 능은 후릉(厚陵)으로 개성특별시 개풍구역 현화리에 소재하고 있다. 강종은 최충헌의 무신정권 아래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하지 못했지만, 정치적 혼란 속에서도 왕실의 적통을 유지하며 고려 왕실의 상징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 가족
강종은 이의방의 딸인 제1비 사평왕후 이씨와 왕성의 딸인 제2비 원덕왕후 유씨라는 2명의 부인에게서 1남 2녀의 자식을 낳는다. 그리고 이름을 모르는 9명의 소군이 있다. 즉 사평왕후 이씨에게서 2녀(수령궁주, 정화택주), 원덕왕후에게서 1남(고종)을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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