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제13대 국왕 명종(1534 ~ 1567)의 이름은 이환(李峘)이며, 자는 대양(對陽)이다. 중종의 아홉째 막내아들로 태어났으며, 어머니는 문정왕후 윤씨이다. 명종실록은 총 34권 34책으로 구성되며 그의 재위기간 1545년 7월부터 1567년 6월까지 22년 동안 일어난 역사적인 사실을 편년체로 적은 역사서이다. 실록의 편찬은 1568년 8월 춘추관에 실록청을 두고 편찬을 시작하여 약 3년 만인 1571년 4월에 완성한다. 여기에서는 지난 시간에 이어서 명종 시대의 끝없는 혼란과 사건들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끝없는 혼란과 사건들
· 을사사화
기묘사화 이후 사림이 물러나자 심정, 이항 등의 세력과 김안로의 세력의 세력다툼에서 심정의 탄핵으로 김안로는 쫓겨 귀양에 갔다가 심정 일파가 경빈박씨를 왕비로 책립 하려는 음모를 꾸민다고 탄핵하여 처형시키고 다시 정계로 복구한다. 김안로 일파는 문정왕후를 몰아내려고 음모를 꾸미다가 문정왕후의 숙부 윤안임의 밀고로 발각되어 유배되어 사사된다. 이때 처형된 김안로, 허황, 채무택을 '정유삼흉'이라 한다. 그 후 정권은 척신들 간의 왕비와 세자책봉 문제로 대윤 윤임 일파와 소윤 윤원형 일파 간에 대립이 생겨 극단을 치닫게 된다. 중종이 죽고 인종이 즉위하자 윤임 일파 주위의 사림파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그러나 9개월 만에 인종이 죽고 문정왕후의 소생 경원대군(인종)이 즉위하자, 1545년 섭정을 하는 문정왕후는 동생 윤원형 일파(소윤)에게 전권을 준다. 윤원형은 윤임 세력 제거 작업에 착수한다. 윤원형은 '윤임이 중종의 여덟째 아들 봉성군에게 왕위를 주려고 했다'라고 무고하며, 인종이 죽을 당시에는 '윤임이 성종의 셋째 아들 계성군을 옹립하려 했다'라고 소문을 퍼뜨린다. 이러한 윤임이 역모를 꾀한다는 무고를 하여 인종의 외척인 장경왕후의 오빠 윤임 일파(대윤)를 몰아내고 정권 장악에 성공한다. 이때 윤임, 유관, 유인숙, 계림군, 이휘 등을 사사하고, 윤임 일파에 있던 사림세력들이 참변을 당한다. 이 사건을 을사사화라고 한다.
· 양재역 벽서 사건과 정미사화
을사사화가 일어난 후 2년 뒤 윤원형 일파는 을사사화로 정권을 장악한 후에 남아있던 나머지 사림 세력과 윤임 세력의 잔당을 제거하기 위해 '양재역 벽서 사건'을 기화로 다시 정미사화를 일으켜 조정을 완전히 장악한다. 사건은 1547년 9월 부제학 정언각과 산전관 이로가 경기도 과천 양재역에 붙어 있는 '위로는 여왕, 아래로는 간신 이기가 권력을 휘두르니 나라가 곧 망할 것'이라는 내용의 익명의 벽서를 명종에게 보고한다. 이를 기회로 정치적으로 이용하여 윤원형 일파는 윤임 일파에 대한 처벌이 약하여 생긴 사건이니 그 잔당을 척결할 것을 주장한다. 그 결과 중종의 아들 봉성군 완, 송인수, 이약수를 사사하고, 이언적, 정자, 노수신, 권응창 등 20여 명의 사림 세력들을 유배시킨다. 그러나 1565년 문정왕후가 사망하고 소윤 일파가 몰락하자 이 사건은 무고로 처리되어 희생자들은 모두 신원되고, 유배되었던 노수신, 유희춘, 백인걸 등은 다시 등용된다.
· 임꺽정의 난
명종시대는 외척인 윤원형, 이량 일파가 온갖 부정부패를 저질러 백성들은 학정과 흉년에 시달리며, 사회가 혼란하고 민심이 흉흉하여 도적이 들끓었다. 1559년 의적으로 통하던 양주의 백정 출신인 임꺽정이 세력을 키워 황해도 구월산을 본거지로 노략질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경기도, 황해도 일대 관아를 습격하여 창고를 털어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는 의적으로 둔갑했다. 그러자 백성들은 관아를 기피하고 그들을 숨겨주거나 도와주게 된다. 1560년에는 한양에도 출몰하기도 한다. 그러자 조정에서는 1560년 8월 임꺽정의 아내를 잡아 형조의 노비로 삼는다. 그 후 임꺽정 무리가 평안도 성천, 강원도 이천, 황해도 개성 등 전국에서 활동하며 심지어 한양에도 근거지를 마련하여 약탈을 일삼는다. 조정에서는 전 병력을 동원하여 그해 12월 엄가이라는 두목을 잡는다. 그는 임꺽정의 참모인 서림이었다. 서림을 통해 임꺽정의 아내구출 계획과 임꺽정 무리를 토벌하는 데 공이 세워 영전한 봉산 군수 이흠례를 죽일 계획을 알게 된다. 그러나 조정에서의 파견된 관군이 오히려 전투에 패하여 도망가고 부장 연천령이 죽고 군마를 모두 빼앗긴다. 조정에선 본격적인 도적 토벌작전에 나서 그해 12월 임꺽정의 형 가도치를 잡는다. 그리고 1561년 9월 의주 목사 이수철이 임꺽정을 잡았다고 보고하였으나, 그는 가짜 임꺽정이어서 파직당한다. 그 후 1562년 1월 군관 곽순수와 홍언성이 진짜 임꺽정을 잡는다. 임꺽정은 체포령이 내린 지 3년 만에 체포된 지 15일 만에 처형당한다.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임꺽정, 홍길동, 장길산을 '조선의 3대 도둑'이라고 기록한다. 아무튼 임꺽정은 자신만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일어난 것이 아니라, 평민과 몰락한 양반에게는 의적으로, 양반에게는 도적으로 평가되었다.
· 을묘왜변
명종 이전 왜구와의 외교는 1544년 사량진 왜변으로 조선은 왜인의 내왕과 통상을 금지하자, 대마도주의 사죄와 간청으로 1547년 정미약조를 맺어 왜인들의 통상은 허용하나 엄격한 통제를 가하였다. 그 후 명종 때 나라가 혼란에 빠져 국방이 허술해지자 1555년 5월 왜구는 70여 척의 배를 이끌고 전라도 강진, 진도 일대에 왜구가 침입하여 약탈과 노략질로 백성에게 엄청난 피해와 고통을 준다. 이 사건이 을묘왜변이다. 이에 조선은 이준경을 도순찰사로, 김경석, 남치훈을 방어사로 임명하여 토벌대를 급파하여 왜구를 섬멸한다. 그러자 대마도주는 사과하며 세견선을 증가하여 줄 것을 간청하자 조선은 세견선 5척을 허용한다. 그 후임진왜란이 일어나기까지 조선과 왜와의 통상은 거의 중단되고 만다. 조선은 비변사를 상설기구화하여 국방력을 강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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