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 없다. 단지 두려움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나에게만은 죽음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살아간다. 우리는 숙명적으로 죽음을 피할 수 없다면 그 본질을 명확하게 파악하여야만 한다. 그래야만 훗날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당황하지 않고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다. 또 "죽음을 염두에 둔 사람은 삶에 대한 성찰이 가능하다."라고 말한 '하이데거'처럼 삶을 정확히 성찰하기 위해서라도 죽음이란 무엇인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작가 셸리 케이건은 미국 예일대 철학교수이다. 그는 <죽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기독교의 신학적 영생과 부활에 반하는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죽음의 본질에 대하여 여러 가지 면에서 고찰하고 있다.
· 죽음의 정의
죽음이란 사전적인 의미로는 '사람이 목숨을 잃는 일이나 현상 즉 생명체의 삶이 끝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또 죽음이란 '육체적 사망으로 인하여 비물질적인 정신과 육체가 영원히 분리되는 현상'이라고도 한다. 한편 소크라테스는 "죽음이란 육신의 굴레를 벗어나는 자유이다."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인간 무엇인가? 이원론에 따르면 "인간은 육체와 영혼으로 영혼은 육체를 조정하고 명령을 내린다."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일원론(유심론, 물리주의자)에 따르면 "인간의 몸이 제기능을 할 때에만 올바른 정신상태가 가능하다."라고 말한다. 즉 비물질적인 영혼인 육체로 되어 있다고 한다. 죽음의 박탈이론에 따르면 '살아 있다면 얻을 수 있는 삶의 좋은 것'들을 박탈해 버리기 때문에 죽음은 나쁜 것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작가는 일원론적 관점에서 물리주의자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살아 있다는 것은 '나와 비슷한 인격을 유지하면서 생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죽음은 나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 '죽음'이란?
일반적으로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태도는 부정, 인정, 무시, 두려움의 대상으로 본다. 그러나 작가 셸리 케이건은 죽음의 존재요건으로 "우리가 존재할 때 무언가가 우리에게 나쁜 것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죽고 나면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죽음을 우리에게 나쁜 것이 될 수 없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죽음은 '필연성(죽음은 반드시 필연적으로 온다), 가변성(얼마나 살지 모른다), 예측 불가능성(언제 죽을지 모른다), 편재성(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두려움의 대상은 나쁜 것이어야 하고, 벌어질 가능성이 무시 못할 만큼 높아야 하며, 그리고 그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어야 한다. 그러므로 "죽음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리스 철학자 '에피크로스'도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죽음은 내 곁에 없고, 내가 죽는다면 내 자신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두려워할 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즉 죽음은 '깊은 잠에 빠진 상태', '아무런 의식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겨울이 가면 봄이 오는 것처럼 해가 서쪽으로 지는 것처럼 죽음도 당연히 오는 것이므로 실망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 '자살'이란?
작가는 자살에 '도덕성', '합리성'이란 관점에서 희생자의 동의가 있고, 그 사람이 심사숙고를 했고, 타당한 이유를 갖고 있으며, 충분한 정보와 조언을 얻었고, 자발적으로 행동하고 있다고 확신이 든다면 그 사람이 자살을 선택하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선택을 존중하는 것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즉 삶과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인 '존엄사'를 인정하는 입장이다.
· '삶'이란?
'줄리언 반스'의 <꿈>이란 책에서 "최고의 삶은 자신이 원하는 만큼 충분히 오래 사는 삶이다."라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969년 동안 살았던 성경에 나오는 므두셀라처럼 오래 장수하는 삶이 아니라 '나와 비슷한 인격을 유지하면서 생존하는 삶' 즉 '양이 아니라 질적인 삶'을 말한다.
· '인간의 본질'이란?
일반적으로 인간의 본질(정체성)을 결정하는 세 가지 이론이 있다. 1. 영혼 관점, 2. 육체 관점(뇌), 3. 인격 관점 이러한 세 가지 관점은 모두 영혼과 육체는 분열불가하다는 조건을 추가한 상태에서 동일한 육체를 가지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런데 작가는 철저히 일원론적 물리주의자의 관점에서 인간의 본질을 보고 있다. 따라서 "영혼은 없다. 그리고 영생은 절대 좋은 것만은 아니다. 두려움은 죽음을 대하는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다. 특정 상황에서는 자살도 이성적, 도덕적 바람직한 선택이 될 수도 있다."라고 작가는 주장한다.
※ 티벳 사자의 서(바르도 퇴톨)와 대승불교의 핵심 교리는? 파드마삼바바
셸리 케이건의 주장
작가 셸리 케이건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1. 인간은 육체와 영혼이 아니라 육체만 존재한다. 2. 영혼은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고차원적 기능을 말하는 도구이다. 3. 죽음은 끝이므로 죽음 이후 영생은 불필요하다. 4. 죽음을 인정하고 신중하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와 같이 그는 <죽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기독교의 신학적 영생과 부활에 반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 다음은 이 글과 관련된 글입니다. 알베르 까뮈의 <페스트>읽고 - 인간의 본성과 삶에 대한 탐구
맺음말
우리는 위에서 작가 셸리 케이건의 <죽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살펴보았다. 그는 죽음에 대해 본질적으로 파악하여 "죽음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심지어 특정상황에서는 '존엄사'를 인정하고 있다. 또 우리는 우주의 수많은 원자가 육체로 뭉쳐지고 거기에 정신이 깃들어 기적적으로 나란 존재가 만들어졌다. 그래서 죽음으로써 원래 원자로 되돌아가는 것이므로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어차피 죽어야 할 숙명이라면 지금 살아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재를 충실하게 살아야 한다. 헤르만 헤세의 작품 <크놀프>에서 주인공 크놀프는 마지막 순간에 "나의 삶이 허무하고 덧없었던 것만은 아니었다."라고 말하며 죽음을 맞이한다. 우리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히 받아들이며, 크놀프처럼 마지막 순간에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잠자듯이 죽음을 맞이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 죽음의 본질이란? 티벳 사자의 서(바르도 퇴톨)와 대승불교의 핵심 교리는? 파드마삼바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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