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가 죽고 나자 위나라는 조비, 촉나라는 유선, 오나라는 손권으로 천하는 2세들인 젊은 영웅들의 시대가 열린다. 제갈공명은 오나라의 손권과 손을 잡고 위나라의 조비를 치는 여섯 차례의 북벌을 감행하는 출사표를 황제 유선에게 올린다. 여기에서는 마지막 영웅인 사마의와 제갈공명의 출사표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마지막 영웅 사마의
· 사마의와 제갈공명
한편 제갈공명과 사마의는 한 스승 밑에 동문수학한 사이이며 사마의가 제갈량보다 두 살 더 많다. 사마의의 자는 '중달'이며 형제는 팔 형제이다. 이들 팔 형제 모두 다 재능이 뛰어나며 이름에 '달'자가 들어가 사람들은 '사마팔달'이라 한다. 사마의는 좋은 가문 출신이나 제갈공명은 평민 출신이다. 이들의 고향은 남양으로 같은 고향이다.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남양 군의 뛰어난 인재'로 제갈공명, 사마의, 백하강을 꼽으며 이들을 '남양삼절'이라고 부른다. 제갈공명은 전적으로 자기를 믿는 유비를 만나 유비의 책사가 되어 이름을 날리지만 사마의는 끊임없는 조조의 의심과 견제를 받게 된다. 심지어 조조는 죽기 전에 아들 조비에게 "절대 사마의에게 병권을 주지 마라."라고 유언을 한다.
· 사마의의 등장
과거 조조가 한중을 차지할 때 사마의는 곧바로 서천까지 치라고 조언을 하였지만 조조는 받아들이지 않은 적이 있다. 조조는 계속 사마의를 의심하고 견제한다. 그런 조조가 죽자 아들 조비는 아버지의 유언대로 병권을 주지 않지만 사마의의 의견을 받아들이게 되고 사마의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된다. 유비가 죽었다는 소식에 위나라의 조비와 사마의의 귀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자 사마의는 조비에게 "폐하 때를 놓치지 말고 제갈량이 나라를 정비하기 전 아직 혼란할 때 익주땅을 쳐야 합니다."라고 간한다. 그러자 조비는 익주를 치기로 한다.
· 사마의의 익주 정벌
먼저 사마의는 오랑캐인 남만과 요서에 보물과 함께 사람을 보내 각각 10만의 군사를 일으키게 한다. 그리고 오나라의 손권에게 사신을 보내 10만의 군사를 일으켜 익주를 치라고 한다. 그러자 손권은 고민 끝에 일단 출병을 준비한다. 결국 사마의는 위나라 20만, 두 오랑캐 남만에 10만 요서에 10만, 오나라 10만으로 총 50만의 군사를 일으켜 5 방면에서 촉나라를 치기로 한다. 즉 다섯 방향에서 쳐들어 오는 위나라와 위나라 동맹군 50만을 '오로대군'이라 한다.
제갈공명과 손권과의 동맹
· 제갈공명의 대응
한편 사사로운 복수심으로 인해 유비가 죽자 제갈공명은 복수심을 버리고 평정심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먼저 목숨을 잃은 75만 대군의 위령제를 지내고 백성들의 마음을 달랜다. 그리고 오로대군이 쳐들어 오자 걱정하는 황제 유선에게 조치하였다고 말하며 안심을 시킨다. 먼저 북방 오랑캐에게는 북방 출신인 마초를 보내고 그리고 위나라 군대가 쳐들어 오는 두 갈래 길에는 위나라에서 투항한 장군을 보낸다. 이렇게 4갈래 길을 막는다. 그리고 오나라의 손권에게는 마속을 보낸다. 손권은 성 앞에 커다란 솥에 기름을 끓이며 마속을 위협한다. 그러자 마속은 "동오, 촉, 위는 솥의 다리와 같아서 다리 하나가 사라지면 솥은 무너진다. 지금 위가 가장 강성한 나라이니 약한 촉과 동오가 힘을 합쳐야 한다."라고 말하며 기름이 끓는 솥으로 걸어간다. 그러자 손권은 촉과 화합하고 동맹을 맺는다. 이렇게 제갈공명은 사마의의 오로대군을 다 막고 난 후 군사를 양성하고 군량미를 비축하는 등 내실을 다지며 전쟁 준비를 하게 된다.
· 칠종칠금
AD 225년 촉나라는 남쪽으로 영토를 넓히는 지금의 윈난성에서 미얀마 지역인 남만 정벌을 시작한다. 이때 남만의 왕 맹획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촉의 국경을 침략한다. 이때 제갈공명은 직접 나아가 진심 어린 항복을 받아내기 위해 맹획을 7번 사로잡았다가 놔주는 것을 반복한다. 나중에는 맹획의 부인인 축융부인까지도 나서나 다시 잡히자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제갈량에게 항복한다. 여기에서 '상대방을 마음대로 다룬다'는 의미로 칠종칠금(七縱七擒)이라는 고사성어가 유래하게 된다. ※ 참고로 맹획은 실존인물이 아니라 나관중이 창작한 가상의 인물이다.
· 사마의의 병권 장악
위가 오로대군을 일으킨 지 3년 동안은 전쟁 없이 그대로 잘 지내다가 위나라에서 조비가 황제 등극 7년 만에 죽는다. 그러자 20살인 아들 조예가 황제에 오르게 된다. 이때 사마의가 조예에게 "군사를 내어 주면 신이 촉나라와 경계인 옹량 지방의 방비를 굳건히 하겠다."라고 한다. 조예는 사마의에게 병권을 주지 말라는 경고를 들은 적도 없어 그에게 2만의 군사를 준다. 사마의는 서둘러 옹량으로 간다. 드디어 사마의는 병권을 잡아 날개를 달게 된다.
제갈공명의 출사표
· 사마의의 유배
사마의가 옹량으로 왔다는 소식을 접한 제갈공명은 마속이 제안한 '싸우지 않고 이기는 계략'을 사용한다. 마속은 "폐하! 역적 사마의를 당장 처형하시옵소서! 역적 사마의가 2만의 군사로 반란을 일으켰다."라는 내용의 방을 조예의 궁 앞에 붙이라고 밀정을 보낸다. 황제 조예는 진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10만의 군사를 직접 이끌고 사마의가 주둔하는 서량으로 출발한다. 이 소식을 들은 사마의는 무장한 군사 수 만을 대동하고 황제의 부대를 마중하려 나간다. 황제는 이것을 반란이라고 더욱 믿게 된다. 황제가 반란을 의심한다는 것을 알게 된 사마의는 무기를 버리고 눈물을 흘리며 제갈량의 이간질이라고 말하였으나 황제는 믿지 않고 사마의를 고향 남양 군으로 유배를 보낸다.
· 제갈공명의 출사표
사마의가 유배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제갈공명은 드디어 위나라를 정벌할 때가 되었다는 장문의 글인 '출사표(出師表)'를 황제 유선에게 올린다. 제갈공명의 출사표는 전쟁의 명분, 싸워야 하는 이유, 자기가 없는 동안의 조언 등을 장문의 글로 적은 명문장으로 '이를 읽고 울지 않는 자는 충신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오늘날에는 '경기나 시합, 선거 등에 용감하게 나가겠다'는 의미로 '출사표를 던진다'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제갈공명의 출사표는 "한나라를 재건하려는 선제의 유지를 받들어 북벌을 하고자 하오니 허락해 주시고 이루지 못하면 문책해 주십시오. 떠나기 전 눈물로 표문을 올리니 받아 주시옵소서"라는 내용이다. 출사표를 받은 황제 유선은 북벌을 허락한다. 드디어 제갈공명은 30만의 군사를 이끌고 7년간 여섯 번에 걸친 북벌 중 첫 번째 출정을 시작한다(AD 227).
맺음말
우리는 여기에서 마지막 영웅인 사마의와 제갈공명의 출사표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유비가 죽고 나자 조비는 사마의의 계략을 받아들여 오로대군을 구성하여 촉한으로 공격한다. 이에 제갈공명은 사사로운 복수심을 버리고 오나라의 손권에게 마속을 보내어 동맹을 이끌어 낸다. 그 후 남만의 맹획을 칠종칠금하여 진정한 항복을 받아낸다. 그리고 위나라의 사마의를 이간책으로 제거하고 난 후 드디어 제갈공명은 황제 유선에게 장문의 글 출사표를 올린다. 황제의 허락을 받은 제갈공명은 7년 동안에 여섯 차례에 걸친 북벌을 단행하게 된다.
※ 제갈량의 6차 북벌에 대하여- 자오곡 계책 읍참마속 목우유마 견벽거수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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