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우가 번성에서 죽자 손권과 조조는 유비의 복수에 대한 걱정으로 전전긍긍한다. 손권은 조조의 계략으로 관우가 죽었다고 관우의 목을 조조에게 보낸다. 그러자 조조는 손권의 의도를 파악하고 유비의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 관우의 장례를 성대하게 치룬다. 이렇듯 관우의 죽음은 삼국의 판세에 큰 영향을 주게 된다. 유비는 관우의 원한을 갚으려고 점점 개인적인 감정에 빠져 이성적인 사리판단을 하지 못하게 된다. 결국 그것이 손권과의 전투인 이릉 전투가 벌이지게 되는 원인이 된다. 여기에서는 이릉전투가 벌어지기 직전에 일어나는 영웅 조조와 장비의 죽음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간웅 조조의 죽음
· 화타의 두통 치료
관우가 죽자 조조는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며 동시에 지병인 두통이 심해져 간다. 부하들은 수소문 끝에 관우의 팔을 수술한 명의 화타를 찾아낸다. 화타는 진맥을 한 후 조조의 두통은 우울과 화병으로 생긴 것이니 "두개골을 반으로 쪼개어 독기를 빼내야 한다."라고 말한다. 그러자 조조는 과거 길평이 탕약에 독을 타서 암살하려고 한 일이 생각나서 화타를 의심하고 감옥에 가둔다. 결국 조조는 유일한 치료방법을 스스로 거절한 것이다.
· 조조의 죽음
한편 손권은 조조에게 "위왕 전하 황제의 자리에 오르시고 남방의 역적 유비를 치옵소서."라는 서신을 보낸다. 서신을 받은 조조에게 책사 사마의는 "손권에게 벼슬과 작위를 내려 유비와 싸우게 하십시요."라고 간한다. 시간이 지나 두통이 심해진 조조는 아들 조비에게 왕위를 물려 주고 사마의에게 보좌를 부탁한다. 첩들에게는 "바느질과 여자의 일을 부지런히 하시오."라고 말하고, 그리고 "나의 무덤은 도굴을 당하지 않게 최대한 작게 만들어 금은보화를 넣지 말고 주위에 똑같은 71개 무덤을 만들어라."라고 유언을 하고 죽는다. 이때가 관우가 죽은 다음해인 AD 220년 조조의 나이 66세이다.
삼국(위, 촉, 오)의 황제들
· 황제가 된 조비
조비가 조조를 이어 위왕이 되자 신하들은 무너져 가는 한나라 황제 헌제에게 황제 자리를 조비에게 양위할 것을 위협한다. 그러자 사마의는 백성들의 비판을 잠재우기 위해 세 번에 걸친 사양한 후 받아들이라고 한다. 그러자 조비는 세번째 양위의 청은 받아들여 커다란 단을 쌓고 양위식을 거행하고 황제의 인장(옥새)을 받는다. 결국 명맥만 유지하던 한나라는 망하게 되고 헌제는 아무도 모르게 멀리 귀양을 가게 된다.
· 황제가 된 유비와 손권
한편 유비는 황제 헌제가 조비에 의해 쫓겨나 귀양길에 죽었다는 헛소문을 듣고 신하들에게 상복을 입히고 낙양을 향해 제사를 지낸다. 제사를 마친 후 신하들의 추대를 받아 "황실의 후손인 유비가 황제가 되어야 한다."는 말을 여러 번 거절한 끝에 결국 받아들여 유비는 한나라의 황제가 되어 한나라를 계승한다고 선포하고 제갈공명은 승상이 된다(AD 221). 후세 사람들은 유비의 한나라를 촉, 촉한이라 한다. 한참을 지나 오나라의 손권도 추대를 받아 오나라의 황제가 된다. 드디어 진정한 위, 오, 촉의 삼국시대가 열리게 된다.
복수심에 사로잡힌 유비와 장비
· 이성을 잃어가는 유비
유비는 황제가 된 후 관우의 죽음에 대한 원한에 사로잡혀 점점 이성적인 판단력을 잃어 간다. 황제를 시해한 위나라를 먼저 공격하여 대의명분을 지키는 것이 우선인데 제갈공명과 모든 신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관우의 복수를 위해 오나라를 정벌할 것을 선포한다.
· 포악해진 장비
한편 한중과 서천의 길목인 낭중을 지키는 장비는 관우가 죽은 후 매일 술통에 빠져 지내면서 분노가 조절되지 않아 점점 포악해 진다. 공사를 돌보지 않고 매일 술을 먹고 큰 소리로 울어 대다가 부하가 걱정이 되어 술을 가져오지 않으면 곤장을 50대 치는 등 행패만 부린다. 그러다가 황제가 된 유비를 찾아가 형님이 가지 않으면 혼자라도 동오를 치러가겠다고 한다. 결국 유비는 "군대를 정비하여 나흘 후 동오로 가는 길목에서 만나자."라고 약속을 한다.
· 장비의 죽음
낭중으로 돌아간 장비는 "관우 형님에게 예우를 갖추기 위해 삼일 안에 모든 군사가 입을 흰 갑옷을 만들어라."라고 물품 조달을 맡은 장수 범강과 장달에게 명령한다. 이일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여서 그들은 삼일 밤낮으로 만들었지만 반의 반도 못 만들었다. 그러자 술만 먹고 취한 장비는 둘의 머리채를 잡고 끌면서 곤장 50대씩 직접 때린다. 그리고 출정일인 내일까지 만들지 못하면 죽이겠다고 말한다. 그날 밤 관우가 죽은 지 1년 동안이나 장비의 포악함에 시달린 범강과 장달은 결국 술에 취해 자고 있는 장비의 목을 베어 들고 동오로 도망을 간다. 이 때가 AD 221년 장비의 나이 55세이다.
· 유비의 동오 출정
유비는 75만의 군사를 일으켜 장비와의 약속장소로 간다. 장비는 나타나지 않고 장비의 아들 장포가 나타나 장비의 죽음을 알린다. 사실 유비는 전날 밤 서쪽하늘에서 별하나가 떨어지는 꿈을 꾸게 되어 불안한 마음으로 출정에 나선 것이였다. 유비는 며칠째 아무것도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울기만 한다. 그러자 신하들은 "폐하 옥체를 보존하셔야 두 장군의 복수를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라고 하자, 유비는 복수를 하기 위해 일어나 다시 음식을 먹고 기운을 차린다. 그리고 유비는 관우의 아들 관흥과 장비의 아들 장포를 선봉장으로 하여 손권을 처단하기 위해 동오로 출정한다.
맺음말
우리는 여기에서 이릉전투가 벌어지기 직전에 일어나는 영웅 조조와 장비의 죽음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아우인 관우가 죽자 도의와 명분을 중요시하던 유비는 관우의 복수를 하기위해 개인적인 감정에 치우쳐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황제 헌제를 쫓아내고 죽게한 위나라의 조조를 정벌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동오의 손권에게 관우의 복수만 하려고 한다. 결국 이것으로 인해 동오와 이릉 전투가 벌어지게 된다. 두 아우가 죽었다는 사실에 이성을 잃고 개인적인 감정에 치우친 유비는 산속 숲에 진영을 꾸리다가 동오의 화공으로 대패하고 겨우 목숨만 건져 도망간다. 이렇듯 도원의 결의로 한나라의 재건을 꿈꾸었던 유비형제들은 하늘의 별이 되어 하나둘 떨어지고 있었다. 다음 시간에는 유비와 손권과의 싸움인 이릉전투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 유비의 거병과 이릉 대전 및 황충과 유비의 죽음, 육손 한당 주태 사마가
유비의 거병과 이릉 대전 및 황충과 유비의 죽음, 육손 한당 주태 사마가
관우가 죽고 난 후 삼국의 정세에는 큰 변화가 생긴다. 동오의 손권은 전쟁을 피하려고 외교적으로 화친을 요구하나 유비가 거절하자 다시 위나라의 조비를 찾아가 지원병을 요청한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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