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가 서천을 차지하게 되었다는 소식이 손권에게 전해지자 손권은 제갈근을 보내 형주를 차지하려고 하나 결국 실패한다. 그리고 다시 유비와 동맹을 하여 합비를 공격하나 패하고 조조의 공격이 두려워 더 이상 형주를 탐하지 못하고 강동을 지키는 데에 몰두하게 된다. 한편 유비는 노장 황충의 활약으로 조조를 물리치고 한중땅까지 차지하게 되어 형주, 서천, 한중을 차지한 명실상부한 유비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여기에서는 유비가 서천을 차지한 이후 동오의 손권과 유비의 한중 정벌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동오의 손권
· 동오의 사신 제갈근
유비가 서천을 차지하였다는 소식을 들은 동오의 손권은 지난번 노숙과의 담판에서 서천을 차지하게 되면 형주를 돌려주겠다고 한 약속을 지켜라고 하면서 제갈공명의 형 제갈근을 서천으로 보낸다. 유비는 제갈공명과 짜고 울면서 형주를 돌려달라는 제갈근을 보고 화를 내면서 지난번 손권이 유비의 부인 손상향을 속여 아들을 납치하려 했던 일을 말한다. 그러자 제갈근은 유비의 말이 이치에 맞아 더이상 할 말이 없으며 기가 죽는다. 이때 제갈공명은 형님이 빈 손으로 돌아가면 온 가족이 죽임을 당할 것이라며 읍소한다. 유비는 할 수 없다는 듯 서찰을 써주면서 "형주에 가서 관우를 만나면 알아서 형주의 절반을 줄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에 제갈근은 뛸 듯이 기뻐하며 관우를 만나러 형주로 간다. 형주로 간 제갈근은 관우가 "이 모든 것이 동오의 계략인 줄 모를 줄 아시오!"라고 하면서 청룡언월도로 바닥을 쿵 치자 놀라 줄행랑을 치게 된다. 소식을 들은 동오의 손권은 군사를 일으키고 싶지만 형주를 치러 가면 비어있는 강동을 조조가 노리고 있어서 결국 강동을 굳건히 지키기로 할 수밖에 없었다.
· 위나라 왕이 된 조조
한편 조조는 허창을 중심으로 북방이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자 한중의 장로를 공격해 차지하게 된다. 이때 사마의가 유비가 차지하였지만 아직 불안한 서천을 치자고 간하였으나 조조는 더 이상 남하하지 않고 한중에 머무른다. 이에 유비는 위협을 느껴 동오의 손권에게 "형주의 일부를 줄 터이니 다시 동맹을 맺어 조조를 막자"라고 제안한다. 형주의 일부를 차지한 손권은 합비를 공격하였으나 실패한다. 이후 조조는 궁궐을 짓고 국호를 위나라로 칭하며 스스로 왕에 오른다.
유비의 한중 정벌
· 노장 황충의 교병지계
조조의 한중과 유비의 서천 사이에 몇 차례 전투가 벌어져 장비가 성을 빼앗자 위나라 5천 명 군사가 가맹관으로 진군한다. 이때 노장 황충(75세)이 자원하여 엄안 장군과 같이 특전사 3백 명을 이끌고 가맹관으로 간다. 다음날 황충은 천탕산에서 가맹관으로 들어어는 좁은 길목에 세 개의 영채를 만든 후 위군이 쳐들어 오자 하나씩 차례로 싸우지 않고 후퇴하여 내어 준다. 그러자 위군은 점점 기세가 오르고 교만해진다. 그러자 승리감에 도취된 위군이 술에 취해 잠을 자고 있을 때 황충은 1만의 군사를 이끌고 삽시간에 위군을 도륙하여 군마와 군량미를 획득하고 승리한다. 이렇게 '일부러 패하는 척 후퇴하여 적을 교만하게 만들어 공격하는 병법'을 교병지계(驕兵之計)라 한다. 그 후 황충은 기세를 몰아 장수 하우연과 10만의 위군이 주둔하고 있는 천탕산으로 공격한다. 이미 황충은 엄안이 이끄는 3백의 특전사 매복병을 닷새 전부터 천탕산 정상에 숨겨 두고 있었다. 하우연은 노장 황충이 공격해 오자 노인이라고 얕잡아 보다가 크게 당황한다. 엄안의 매복병과 황충의 군사들에 의해 하우연의 군사들은 도륙되고 결국 하우연은 황충의 칼에 목이 떨어진다.
· 계륵 한중 땅
조조는 하우연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40만 대군을 이끌고 직접 남하한다. 이에 유비는 한중을 평정하기 위해 10만 대군을 일으켜 조조의 영채와 군량미 보관소인 미창산, 정군산을 함락시킨다. 조조는 한중의 중심지 남정에 도착하여 한수를 건너 영채를 세우고 유비의 황충, 조자룡과 일진일퇴의 공방을 벌이다가 조자룡이 후퇴를 하자 추격한다. 도망가던 조자룡이 혼자 버티고 길목을 지키자 깜짝 놀란 조조는 매복을 의심하면서도 지난번 장판교에서 장비에게 속은 생각이 나 더 이상 속지 않는다고 그대로 공격을 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진짜 매복이 있어 조조의 군사들은 한수에 빠져 죽고 화살에 맞아 죽고 하여 대패하고 조조는 겨우 도망친다. 그 후 조조의 지병이 두통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제갈공명은 조조의 영채 부근에 있는 토산에 병사를 보내 밤마다 북을 치고 피리를 불지만 공격하지는 않는다. 그러자 조조는 정신착란을 일으킬 정도로 예민해진다. 계속 잠을 못 자게 하자 조조는 완전히 지쳐 공격해 오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지쳐 잠에 빠진다. 이번에는 정말로 황충, 마초, 엄안이 군사를 끌고 들이닥친다. 결국 조조는 큰 피해를 입고 멀리 30리 밖으로 도망간다. 그날 저녁 조조는 군량이 떨어져 닭곰탐을 먹는데 뼈만 앙상한 닭갈비를 보고 "한중을 버리자니 아깝고 갖자니 희생에 비해 얻는 것이 너무 작다. 마치 계륵처럼"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큰 이익이 없으나 버리기는 아까운 것'이라는 의미로 계륵(鷄肋)이란 말이 유래하게 된다. 결국 조조는 마지막 전투에서 영채는 마초에 의해 불타고 유비의 군사들이 쏜 화살에 인중을 맞아 앞니가 두 개가 부러져 수레에 실려 수도 허창으로 도망을 간다. 드디어 유비는 노장 황충의 활약으로 한중 땅까지 얻어 형주, 서천, 한중까지 차지하게 되는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맺음말
여기에서 유비가 서천을 차지한 이후 동오의 손권과 유비의 한중 정벌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아무런 인맥과 손바닥만 한 땅도 없이 단지 무너져 가는 한나라를 재건하겠다고 도원결의 한 의형제 유비, 관우, 장비가 여기저기 유랑생활과 도망을 반복한 끝에 드디어 형주, 서천, 한중까지 차지하게 되어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 책사 방통이 죽기도 하였지만 장군 황충, 엄안, 마초를 얻는다. 이러한 유비에게 신하와 백성들은 한중왕이 되어 주기를 간청한다. 유비는 세 번이나 고사한 끝에 한중왕으로 추대된다(219년). 그리고 이 사실을 허창에 있는 황제에게 표문을 올린다. 황제에게 보낸 유비의 표문을 본 조조는 분노하여 표문을 갈기갈기 찢어 버린다.
※ 관우의 번성 공격 및 손권의 형주 탈환, 방덕, 화타, 여몽의 괄목상대, 육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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