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우가 죽고 난 후 삼국의 정세에는 큰 변화가 생긴다. 동오의 손권은 전쟁을 피하려고 외교적으로 화친을 요구하나 유비가 거절하자 다시 위나라의 조비를 찾아가 지원병을 요청한다. 그러나 위나라의 조비는 유비와 손권이 서로 싸워 힘이 약해지면 어부지리를 얻을 생각으로 중립을 취한다. 결국 유비는 복수심에 사로잡혀 손권과 전쟁을 벌인 결과 패하여 죽게 된다. 여기에서는 관우가 죽은 후 유비가 75만의 군사를 일으켜 벌이는 전쟁인 이릉대전과 유비의 죽음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유비의 거병과 전투
· 유비의 거병
유비가 221년 황제에 올라 촉한을 세우고 관우가 오의 손권의 손에 죽게 되자 복수를 위해 제갈량과 진복, 조자룡 등 여러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군사를 일으켜 손권을 정벌하려고 한다. 그러던 중에 장비도 허무하게 자기 부하 범강과 장달에게 죽게 된다. 그러자 유비는 마초와 동생 마대로 하여금 위연을 도와 한중을 지키게 하고, 조자룡을 후방 지원으로 군량과 마초를 담당하게 하고, 황충을 선봉으로 풍습, 장남, 장익, 요순에게 뒤를 맡기고 만왕 사마가의 5만 병력들까지 합쳐 무려 군사 75만을 일으켜 동오로 출정한다.
· 손권의 화친 노력
한편 손권은 제갈근을 사신으로 "손부인을 돌려보내고 형주 땅도 돌려주며, 장비를 암살한 범강과 장달을 보내주겠다."라고 제안하며 유비를 설득하려고 한다. 그러나 유비는 더 이상 예전의 유비가 아니라 이성을 잃고 오직 관우와 장비의 복수에만 매달려 거절한다. 할 수 없이 손권은 중대부 조자를 위나라로 보내 조비에게 속국이 되기를 청하며 구원병을 요청한다. 그러나 조비는 손권을 오왕으로 봉하고 지원병을 보내지는 않는다. 조비는 구경만 하다가 둘 중 하나가 망하면 다른 쪽을 손쉽게 차지할 생각이다.
· 전투의 시작
형주의 땅은 원래 유비의 고향이라 유비의 촉군이 맹렬하게 공격하자 대부분의 성들은 저항하지 않고 항복하여 촉의 선봉장 오반은 의도에 다다른다. 결국 손권은 조카 손환과 장군 주연에게 수군과 육군 5만 명을 주어 촉군과 대치하게 한다. 그러나 관흥과 장포가 손환의 장수 이이, 담웅, 사정 등을 죽인다. 그리고 오반, 풍습, 장남들이 주연의 부장 최우를 유인하여 포로로 잡자 손환은 3천의 군사와 함께 이릉성으로 후퇴하고 촉군이 의해 포위당한다. 이 소식을 들은 손권은 한당을 대장으로 주태를 부장으로 삼고 반장을 선봉으로, 능통에게 후군을 맡기고 감녕에게 지원군을 맡기는 10만 대군을 일으킨다.
· 노장 황충의 죽음
한편 한당을 대장으로 한 동오의 군이 이릉성을 지원하러 오자 황충은 군사 7명만 데리고 나가 반장의 부장 사적을 죽인다. 다음날 전투 중 적을 추격하다가 매복한 마충의 화살을 어깨에 맞고 부상으로 사망한다. 유비는 슬피 울면서 황충의 시신을 성도로 보내고 후하게 장례를 치른다.
· 동오의 패퇴
유비는 효정에서 군사를 나누어 수군은 황권에게 맡기고 나머지 군사는 유비가 직접 이끌고 나간다. 전투 중 관흥과 장포에게 하순과 주평이 죽고, 감녕은 후퇴하던 중 사마가의 화살에 맞아 숨진다. 그리고 관흥은 아버지 관우의 말에 고리를 걸어 관우가 말에서 떨어지게 한 공으로 청룡도를 받았던 반장을 추격하여 죽이고 청룡언월도를 다시 찾는다. 이에 손권에 항복했던 옛 부하 미방과 부사인이 마충을 죽이고 항복하지만 유비는 이들을 처형한다. 이처럼 동오의 군은 분노한 유비의 촉군에게 계속 밀리고 패퇴한다.
이릉 대전
· 동오의 화친 제의
그러자 손권이 보즐의 건의로 장비를 살해하고 동오로 도망온 범강과 장달을 잡아 장비의 목과 함께 촉군 진영에 보내고 화친을 청한다. 그러나 유비는 장비의 제사상을 차리고 그 앞에 범강과 장달을 잡아 옷을 벗기고 100포형(죄인의 살을 한점 한점 회를 뜨서 죽이는 형벌)에 처한다. 장비의 아들 장포가 이들의 회를 뜬다. 유비는 화친을 거절하고 기어이 손권을 죽이려고 한다.
· 대도독 육손
한편 대도독 여몽이 관우의 혼령이 씌어 "나는 관우다."라고 소리치며 미치게 되어 일곱 개의 구멍에서 피를 쏟으며 죽어 버린다(정사에는 여몽은 남군 태수로 있다가 42세에 내전으로 사망하게 됨). 이에 손권이 유비를 막을만한 인물을 찾게 된다. 그러자 책사 감택이 '여몽에게 자기를 대도독으로 임명하게 하여 관우를 교만하게 만든 계책'을 낸 육손을 추천한다. 손권은 다시 한번 그를 믿고 육손을 모든 신하와 장군이 보는 자리에서 대도독으로 임명한다. 한편 동오의 장수들은 이릉성 근처 효정에서 촉군과 대치를 하고 있었다. 젊은 책사 육손이 대도독으로 임명되어 오자 그의 능력을 의심하여 부하 장수들은 이릉성에서 포위된 손권의 조카 손환을 구할 계책을 묻는다. 그러자 육손은 이릉성은 견고하니 우리가 촉군은 이기면 포위가 풀릴 것이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라고 말하며 "모든 길목을 지키며 절대 나가 싸우면 안 된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육손은 촉군과 대치만 계속한다.
· 육손의 계략
벌써 전쟁이 시작된 지 1년 가까이 되자 동오 군은 지키는데에 익숙해지고, 촉군은 싸우지 않는데 익숙하여 나태해진다. 한여름이 되어 유비는 군사들이 무더위에 지쳐 먼 거리로 식수를 구하기 어려워지자 물을 구하기도 쉽고 그늘이 있는 강가 숲이 있는 곳에 영채를 치도록 명령한다. 이때 유비는 제갈공명의 조언을 듣자고 하는 신하의 말을 무시하고 동오 군을 얕잡아 본다. 한편 항상 전쟁 상황에 신경을 쓰던 제갈공명은 책사 마속을 통해 계속된 승전 소식과 유비가 강가 숲 속으로 영채를 옮겼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이 소식을 듣고 제갈량은 화가 잔뜩 나서 '이 진을 치라고 명한 자를 당장 처형해라'라고 한다. 그러나 이 진을 친 사람이 유비라는 말을 듣고 통탄한다. 육손이 계속 전투를 미루었던 이유와 적벽대전과 같은 화공으로 공격하면 유비가 패하게 된다는 것을 예측한다. 그는 이미 늦었지만 영채를 옮기라고 말하며, 늦어 패퇴하면 유비를 견고한 백제성으로 모셔야 한다고 마속을 급히 보낸다.
· 이릉 대전
AD 222년 여름 이릉성에 들어간 육손은 유비가 강가 숲 속으로 진영을 옮겼다는 보고를 듣고 드디어 기다렸던 전투를 시작한다. 먼저 육손은 유비의 전력을 탐색하러 말장 순우단, 서성, 정봉에게 군사 5천 명을 주어 공격한다. 그러자 순우단은 크게 패하고 만다. 유비의 군대가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는 그날 밤에 육손은 병사에게 각각 마른 띠풀을 하나씩 준다. 그리고 화공을 펼쳐 불화살을 쏘며 촉군 진영을 불태우고 대공격을 한다. 촉군들은 우왕좌왕 갈피를 못 잡고 방황하고 유비는 풍습의 영채로 피신한다. 그러나 그곳에서 서성과 정봉의 협공을 받고 장포와 관흥의 도움으로 겨우 탈출한다. 도중에 주연을 만나 위기에 빠지지만 조자룡이 구원병을 이끌고 와 주연을 죽이고 유비를 구출한다. 유비는 겨우 남은 군사 100여 명과 함께 백제성으로 들어간다. 한편 부동은 유비를 추격하는 오군을 막다가 정봉에게 포위당해 전사한다. 정기는 강기슭을 따라 수군을 이끌다가 오군에게 포위당하자 자결한다. 이릉성을 포위하던 오반과 장남, 풍습도 유비를 구하기 위해 포위를 풀고 나오다 손환의 협공을 받아 장남과 풍습이 전사하고 오반은 조자룡을 만나 겨우 목숨을 구한다. 이때 만왕 사마가도 도망치다 주태에게 전사한다. 수군대장 황권은 퇴로가 막혀 위나라에 항복한다. 유비가 대패하고 죽었다는 유언비어를 들은 유비의 부인이었던 손권의 누이동생 손상향은 자결한다. 이릉대전의 결과 손권을 정벌하기 위해 일으킨 유비의 75만 군사가 대패하여 겨우 100여 명만 살아남게 된다. 이후 촉군을 추격하던 육손은 어복포에서 제갈량의 석진에 갇혀 익사할 운명이었으나 제갈량의 장인 황승언의 도움을 받고 살아난다.
유비의 죽음
백제성으로 도망온 유비는 화공으로 인해 마신 연기와 울분으로 병이 든다. 병세가 깊어가자 유비는 성도에 사람을 보내 제갈량을 부른다. 유비는 제갈량에게 "30년 전 스승으로 모실 때 어떤 말이라도 따르겠다고 맹세하였는데 초심을 잃고 승상의 말을 듣지 않아 물거품이 되었다. 아들 유선을 잘 부탁한다."라고 유언을 한다. 이때가 AD 223년 봄 유비의 나이 63세이다. 유비가 죽자 아들 유선(아두)이 17세에 황제가 된다.
맺음말
우리는 여기에서 관우가 죽은 후 유비가 75만의 군사를 일으켜 벌이는 전쟁인 이릉대전과 유비의 죽음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위의 이야기들은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를 기초로 한 것이니 역사적인 사실과 다른 사건이 많이 있다. 예를 들면 이미 노장 황충은 이릉대전 전에 사망하였으며, 참전한 적도 없던 관흥과 장포가 활약하기도 한다. 그리고 제갈량은 후방으로 쏙 빠져 전쟁이 패배할 수 밖에 없다는 당위성을 부여하고 있다. 아무튼 위에서 기술된 이야기는 독자들이 흥미 위주로 즐기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우리는 위에서 살펴본 유비의 이야기에서 리더의 중요성을 잘 알 수 있다. 유비가 진정한 리더였더라면 관우가 죽었더라도 감정을 버리고 이성을 찾아 동오의 손권과 화친을 맺고 위나라의 조비를 쳐야 했었다. 손권은 제갈근을 보내 화친을 원하였으나 유비는 복수심과 분노에 사로잡혀 이성을 잃어버린다. 결국 그는 제갈공명과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동오의 손권과 전쟁을 일으킨다. 또한 유비는 교만에 빠져 신하들의 말을 듣지도 않고 강가 숲 속에 진영을 치게 된다. 그 결과 그는 육손의 계략에 빠져 화공으로 대패를 당하여 백제성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결국 정치적인 판단력을 잃은 유비로 인해 촉한은 오나라와의 전쟁에 지게 되고, 위나라의 조비는 가만히 앉아 어부지리를 취하게 된다. 다음 시간에는 유비가 죽고 난 후 벌어지는 위나라의 조비, 촉나라의 유선, 오나라의 손권으로 2세들의 삼국 시대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제갈공명은 한나라의 통일을 위해 출사표를 선언하고 여섯 번에 걸친 북벌을 감행한다. 이에 위나라의 조비와 책사 사마의는 제갈공명의 북벌을 막아낸다.
※ 마지막 영웅 사마의와 제갈공명의 출사표, 남양삼절 오로대군 칠종칠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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