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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사마천 사기

처세의 달인 유방의 책사 진평, 걸해골, 문경지치

by 이야기마을촌장 2024. 1. 7.

한고조 유방에게는 두 명의 책사가 있었다. 장량과 진평이다. 장량은 전체적인 큰 그림을 그리고 천하의 대세를 살펴 유방에게 조언을 하는 반면에 진평은 눈앞에 보이는 잔수 즉 임기응변에 강한 사람으로 항상 유방의 곁에서 참모로서 현실적인 계책을 유방에게 말한다. 한 왕조가 건립되어 안정되자 장량은 스스로 정계에서 물러나 은둔생활을 하였으나 진평은 끝까지 남아 24년 동안 고위직에서 정치를 한다. 그야말로 "끝까지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이다."라는 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여기에서는 처세의 달인 유방의 책사 진평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진평

초기 생애

진평(? ~ BC 178)은 위나라 출신으로 초한쟁패기 전한의 정치가이며 유방의 책사이다. 한고조를 도와 전한을 건국하는 데 큰 공을 세웠으며 나중에 호유후에서 곡역후로 봉해진다. 

 

· 진백의 지원

진평의 집안은 가난하였으나 진평은 어릴 때부터 독서를 좋아하였으며 형제간의 우애가 남달라 형 진백이 농사를 지어 동생을 공부시킨다. 하루는 형수가 기골장대하고 잘생긴 진평이 돈은 벌지 않고 공부만 하니까 "차라리 없는 것이 낫겠다."라고 투덜거린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형 진백은 자기 부인을 집에서 쫓아낸다. 

 

· 과부의 여섯 번째 남편

그 후 진평은 '장부'라는 부자의 손녀딸인 과부와 결혼을 하여 그녀의 여섯 번째의 남편이 된다. 이 결혼은 처가의 경제적인 도움을 받으려고 진평이 의도적으로 계획한 것이다. 진평은 아직 젊고 잘생긴 그 녀가 다섯 번이나 남편과 사별을 하고 집에 와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녀의 집안에 초상이 나자 아침 일찍부터 찾아 가 하루종일 열심히 도와준다. 결국 장부의 눈에 띄게 되며 그는 진평을 뒷조사를 하여 집은 가난하지만 집 앞에 수레바퀴 자국이 많이 나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수레바퀴 자국은 '진평이 공부를 열심히 한다'는 증거라는 것을 알고 난 후 손녀딸을 진평에게 준다. 여기에서 보면 진평은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 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나서 목표를 정하고 행동으로 옮겨 성공한다.

 

· 제물 분배

진평이 지방의 토지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제주가 되어 제사를 집행하고 난 후 제물을 분배할 때 공평하게 나누어 주어 아무도 불평을 하지 않는다. 이를 보고 사람들이 칭찬을 하자 진평은 "천하를 나에게 주면 잘 경영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이때부터 진평은 천하를 경영하는 데에 큰 뜻을 두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유방을 만나기 전

진승과 오광의 난이 일으나 진섭(진승)이 장초국을 세워 주불로 하여금 위나라를 공격한다. 주불은 위구를 왕으로 세운다. 이 때 진평은 위나라 왕 위구를 찾아가 그의 신하로 있다가 모함을 받아 도망가서 항우에게로 간다. 항우는 진평을 신무군으로 봉하고 위구의 부하들을 이끌고 은나라를 쳐 은왕의 항복을 받아낸다. 그러나 항우의 편에 있던 은왕 사마앙이 항우를 배반하고 유방의 편을 든다. 이에 화가 난 항우가 은의 정벌에 관계된 사람들을 죽이자 위협을 느낀 진평은 모든 재물을 두고  칼 한 자루만 가지고 도망을 간다. 황하에 이르러 나룻배를 타고 도적과 같이 건너게 될 때 그들은 진평의 잘생긴 용모를 보고 재물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때 이상한 낌새를 느낀 진평이 옷을 벗고 노를 젓는 것을 열심히 도와준다. 그러자 도적들은 그가 아무것도 가지지 않다는 것을 알고 그를 살려준다. 이와 같이 진평은 순간 상황판단을 잘하여 임기응변이 좋다.

 

 

초한 전쟁

· 유방의 책사

진평은 친구 위무지의 천거로 팽성으로 진군하는 한왕 유방을 만나게 된다. 유방은 진평의 인물됨을 알아보고 진평을 참승(지금의 감찰관)으로 임명한다. 그러자 강후, 주발, 관영이 찾아와 "왕께서는 보지도 듣지도 못한 초나라 도망병에게 수레를 같이 타며 우리를 감찰케 하십니까?"라고 따진다. 그러나 유방은 그들의 말을 듣지 않고 진평을 중용한다. 그러나 진평이 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 팽성대전에서 유방은 대패를 하여 도망을 가게 된다. 그리고 다시 광무에서 대치하게 된다. 그런 도망과 대치 중에서 진평은 유방에게 현실에 맞는 조언을 한다.

 

· 중상모략의 대처

그러자 주발과 관영이 다시 진평을 유언비어로 중상모략한다. 그들은 진평이 위왕과 초왕 항우의 도망병이고 그리고 형수와 간통을 하였고 또 뇌물을 받아 자리를 팔고 있다는 등의 말을 유방에게 간한다. 계속되는 항의에 유방이 위무지를 불러 묻자 그는 "제가 진평을 천거한 것은 그의 재능이지 품행이 아니다."라고 대답한다. 그 후 유방은 다시 진평을 불러 직접 물어본다. 그러자 진평은 "제가 위왕과 항우를 떠나 왕에게 온 것은 그들은 나를 알아주지 않고 계책을 받아들이지 않아 나를 알아주는 왕에게로 온 것이고 뇌물을 받은 것은 나는 칼 한 자루만 들고 온 사람이기 때문에 생활을 하기 위해 받은 것이다. 원하시면 다 국고로 내놓겠다."라고 대답을 한다. 그러자 유방은 사과를 하고 오히려 많은 상을 내린다. 즉 진평은 중상모략에 일일이 대처하지 않고 누구의 신뢰를 받아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의연하게 대처한다.

 

· 진평의 계략

유방이 형양(영양)성에서 항우에게 포위되었을 때 진평은 한왕 유방에게 "황금 수만 근을 주면 초나라의 항우와 신하 범증, 종리매, 용저, 주은의 사이를 이간책(반간계)으로 갈라놓아 서로 의심을 하게 만들겠습니다."라고 말한다. 이에 유방은 그에게 황금 사만 냥을 내준다. 그러자 그 돈을 공작금으로 하여 유언비어를 퍼뜨린다. 그 소문을 들은 항우가 사실 확인을 위해 사신을 보내오자 진평의 계략을 알고 있는 유방은 성대한 잔치상을 초라한 상으로 바꾸라고 말하며 "난 범증이 보낸 사신인 줄 알았는데 항우가 보낸 사신이구나."라고 말한다. 사신이 돌아가서 이 사실을 항우에게 그대로 고해바친다. 그러자 항우는 범증을 의심하게 된다. 이간책이 성공하여 항우는 범증이 내놓은 형양성 총공격하여 함락시키는 계책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에 화가 난 범증이 "걸해골(乞骸骨)"이라는 글을 써 사직을 청하자 유방은 바로 사직을 받아들인다. 여기에서 '늙은 재상이 나이가 많아 임금에게 그만두기를 청원한다'는 의미로 쓰이는 걸해골이 유래하게 된다. 사직하여 고향으로 가던 중 범증은 등창이 나서 죽게 된다. 그 후 진평은 야음을 틈타 기신으로 하여금 부녀자 이천 명을 갑옷을 입혀 동문으로 보내 기신은 화형을 당해 죽고 항우의 군이 그녀들을 겁탈하는 사이에 유방은 서문으로 도망을 치게 하는 계책을 써 형양성을 아슬아슬하게 탈출을 한다.

 

 

한고조 때

· 한신에 대하여

한신이 제나라의 가왕을 요청할 때 장량과 같이 "지금은 한신을 자극하면 안 된다."라고 충언을 하여 유방을 말려 정식 제나라왕으로 봉하게 한다. 그리고 한신이 모반을 하였다는 고변이 있자 다른 장수들은 당장 군사를 일으켜 한신을 쳐야 한다고 말하였으나 진평은 "왕께서 초나라 국경인 운몽지역에 사냥 간다고 연락을 하고 제후들을 오게 하면 한신이 참석할 것이다. 그때 잡으면 된다."라고 계책을 말하여 준다. 과연 한신이 참석하자 그를 잡아 낙양으로 압송을 한다. 그리고 초나라 왕으로 강등시킨다. 나중에 회음후로 격하시킨다. 이때 유방이 그 공을 인정하여 상을 주러 하자 진평은 사양을 하고 자기를 천거한 위무지의 공으로 돌린다. 그 결과 둘 다 상을 받게 된다. 이렇듯 진평은 다른 사람을 배려하여 같이 가려고 처신한다.

 

· 번쾌에 대하여

경포의 반란을 진압하던 중 한고조 유방이 화살을 맞아 부상을 입는다. 그러던 중 유방의 고향 친구인 연왕 노관이 반란을 일으키자 유방은 번쾌를 상국으로 하여 반란을 진압하러 보낸다. 이때 번쾌와 여태후가 같이 유방의 애첩인 척부인의 아들 유여의를 죽이려 한다는 상소가 올라온다. 유방은 화가 나 당장 번괘를 죽이라고 명을 내린다. 이때 진평은 주발과 상의를 하여 나중을 위해서 번쾌를 죽이지 말고 끌고 와 황제 유방이 결정하도록 하자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를 잡아끌고 압송하던 중 황제 유방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러면 권력은 여태후가 잡게 될 것이고 번쾌의 아내가 여태후와 자매 사이기 때문에 그런 번쾌를 잡아 압송하는 자기는 죽게 된다는 것을 알고도 도망가지 않고 바로 장안으로 달려가서 승부수를 띄운다. 황제의 관을 붙들고 여태후가 들어라고 큰소리로 황제가 번쾌를 당장 죽이라고 했지만 죽이지 않고 그냥 살려왔다고 말한다. 그리고 여태후에게 이세 황제를 위해 옆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하급관리인 숙위직을 간청한다. 그러자 화가 풀린 여태후는 낭중령(황제의 비서실장)에 임명하여 새 황제를 잘 보필하라고 한다. 이와 같이 진평은 탁월한 균형감각을 가지고 순간 판단을 정확하게 하여 권력의 중심부에 남는다. 황제 유방이 죽은 후 여태후는 개국공신 한신과 팽월을 잡아 죽이는 등 15년 동안이나 섭정으로 권력을 쥐고 흔든다. 

 

 

여태후 때

· 여태후의 질문

효혜제 6년 재상 조참이 죽고나자 왕릉이 우승상이 되고 진평은 좌승상이 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효혜제가 사망하자 여태후는 승상에게 여씨를 제후왕에 봉해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는 지를 묻는다. 이에 우승상 왕릉은 한고조 유방이 유언으로 유 씨만 제후가 된다고 말하자 진평은 여씨가 제후가 되어도 어긋남이 없다고 말한다. 이에 항의하는 왕릉에게 "지금은 여태후를 어느 누구도 맞설 수가 없으니 먼저 유씨 후손들을 잘 보전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한다.

 

· 여태후의 사망 후

진평은 여태후 섭정 15년을 기다린 후에 여태후가 BC 180에 죽자 주발과 함께 군권을 쥐고 있는 여태후의 동생 여산, 여록을 속여 병권을 빼앗고 여씨일족을 모두 몰아내고 죽인다. 그리고 고조 유방의 넷째 아들인 유항효문제로 내세워 다시 유씨의 한나라를 만든다. 주발은 우승상 진평은 좌승상이 된다. 이와 같이 진평은 한나라의 초기 나라의 기틀을 잡아 안정화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되다. 그 후 한나라는 태평성대인 문경지치(효문제와 효경제의 태평성대)를 맞이하게 된다. 효문제가 황제가 된 후 이 년이 지나 승상 진평이 죽자 그를 '헌후'라는 시호를 준다.

 

 

맺음말

우리는 여기에서 한고조 유방의 책사 진평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그는 장량과는 달리 눈앞에 보이는 현실적인 임기응변에 능하며 정확하게 상황을 파악하여 처신을 하는 사람이다. 사마천은 "승상 진평은 젊었을 때 황로사상을 즐겨 배워 제사를 주관한 후 고기와 떡을 잘 배분하였고, 고조에게 기묘한 계책을 내어 위기에 구하였으며 여태후의 화를 피해 한나라의 사직을 안정시키고 죽음을 맞이한 어진 재상이다. 어느 누가 진평과 같은 사람이 있겠는가?"라고 그를 높이 평가한다. 오늘날 현대에 살아가는 사람들도 진평의 일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주변 사람들의 욕망을 잘 파악하여 배려할 줄도 알고 그리고 나아갈 때와 물러 설 때를 정확히 구분하여야 할 것이다. 

유방의 책사 장자방 '장량' - 진시황 암살시도, 황석공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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