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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사마천 사기

법가사상 집대성한 '한비자', 미자하, 신상필벌, 도상무위이무불위

by 이야기마을촌장 2023. 11. 12.

한비자(韓非子,한비 ? ~ BC 233)는 전국시대 말기 7개 나라(조, 위, 한, 진, 연, 제, 초나라)중 가장 약소국인 한나라 왕족 중 서자로 태어났다. 성악설을 주장하는 순자의 제자가 되기 위해 제나라 수도 임치로 찾아간다. 나중에 한비를 죽이게 되는 이사와 동문수학하게 된다. 그 후 한비는 약 500페이지 총 55편으로 이루어진 <한비자>를 썼으며 법가사상을 집대성하였다. 여기에서는 법가(法家)사상을 집대성한 한비자(韓非子)의 생애와 법가사상에 대해 알아보고, 또 그가 죽은 후 법가사상이 후세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한비자

한비자의 생애

한비는 한나라 군주 안에게 부국강병(富國强兵)의 방법을 여러 번 피력하였으나 그 뜻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한편 순자의 제자로 같이 공부하였던 이사는 여불위의 천거로 진나라에 출사 하여 활약한다. 진시황은 우연히 그의 책 <한비자>의 고분편, 오두편을 읽게 된다. 그리고 한비의 인물됨을 알아보고 그를 얻기 위해 전쟁을 벌여 한나라의 왕을 위협한다. 그러나 한비가 진나라로 오면 뒷전으로 밀려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던 이사는 이를 두려워하여 한비를 모함한다. 이사의 모함으로 결국 한비는 감옥에 갇히게 된다. 진시황은 한비의 인물됨이 아까워 풀어주려고 하자, 이에 이사가 먼저 찾아와 왕이 사약을 내렸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독약을 준다. 한비자는 친구 이사의 말을 믿고 독약을 먹고 자결한다. 결국 위대한 법가사상가인 한비자는 자기 이상을 한 번도 펼치지 못한 채 이슬이 되고만 것이다. 그 후 이사는 진시황을 도와 전국시대를 통일하는데 큰 역할을 하며 나중에는 분서갱유에 관여하여 유생들을 탄압하게 된다. 결국 그의 사상은 그가 죽은 진(秦)나라에서 꽃을 피우게 된다.

 

 

한비자의 법가(法家) 사상

법가사상은 '사회 질서 유지를 위해 엄격한 법과 가혹한 형벌을 필요하다'라는 사상이다. 이러한 법가 사상가에는 상앙, 신도, 신불해, 이회, 이사 등이 있다. 한비자는 춘추전국시대에는 강자생존의 싸움의 시기이기 때문에 유가의 도덕정치만으로는 당시의 혼란한 현실을 극복하고 질서를 회복하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판단하여, 현실적이고 실천적 대안으로 법에 의한 통치를 주장한다.

 

<한비자 세난편>

군주를 설득함에 있어서의 어려움을 말하고 있다. 신하들은 군주의 심리나 상황에 따라 목숨을 걸고 말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따라서 즉 법을 세워 신상필벌(信賞必罰 : 공이 있으면 반드시 상을 주고 죄가 있으면 반드시 벌을 주어야 한다)해야 한다고 말한다.

 

· 미자하의 이야기

임금의 총애를 받는 미자하라는 아름다운 소년이 어머니가 위독하자 임금이 타는 수레를 끌고 집으로 가자 이를 알게 된 임금은 그를 벌하지 않고 오히려 칭찬을 한다. 그 후 미자하가 나이가 들어 임금의 총애가 사라지자 큰 실수가 아닌 데에도 짜증을 내며 혼을 낸다. 즉 임금의 총애가 있으면 그 지혜도 귀중히 여기지만 총애가 사라지면 지혜마저도 무시당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와 같이 임금과 신하, 부부, 친구 등 인간관계는 복잡하여 기분에 따라 변하기 때문에 일정한 기준(법)을 세워야 한다고 말한다.

 

· 신상필벌

유비가 나이가 들어 죽을 때 제갈량에게 "아들 유선이 재능이 없으면 제갈량이 왕이 되고, 재능이 있으면 유선을 도와주라."라고 유언을 남긴다. 그러나 제갈량은 아무 말없이 유선을 섬기다가 죽기 전에 유언을 남기기를 "반드시 신상필벌하세요."라고 말한다. 

 

<한비자 해노편>

한비자는 <도덕경 제37장>에 나오는 "도상무위이무불위(道常無爲而無不爲) 도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하지 않는 것이 없다."라는 노자의 무위사상을 나라의 통치 이념으로 삼고 있다. 백성이 전혀 모르는 어린아이 같을 때는 법가를 적용하여 신상필벌하고, 아이들이 잘 자라 자기 할 일을 잘할 때(성숙한 사회)에는 군주가 무위 하여도 세상이 잘 운영된다. 즉 군주가 무위 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도 나라가 잘 운영되어야 하는 것을 이상적인 사회로 삼고 있다. 왕은 감정표현을 하지 않고 엄숙하여야 하며 백성은 각자 이익을 추구하는 사회를 말한다.

 

 

인간본성과 사회질서 

순자의 성악설에 영향을 받아 인간은 본래 이기적 타락하지 쉬운 존재이므로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법질서와 가혹한 형벌이 필요하다고 한다. '배가 10 필보다 많으면 첩이 생긴다.' 너무 가난하여 없어도 문제이지만 너무 많아도 안 된다는 것, 부족하지도 않고 지나치지도 않는 적당히 알맞은 정도가 가장 좋다. 중도, '타협'을 중시하는 한비자의 인간관을 볼 수 있다. '수레 제조자는 많은 사람이 부자가 되기를 원하나 장의사는 많은 사람이 죽기를 바란다.' 이는 수레 제조자가 인자하고 장의사가 잔인한 것이 아니라 사람은 각자 '이익'에 따라 행동한다. '인간 본성은 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익에 끌려 조정당할 수 있다'라고 한다. 따라서 한비자는 순자의 성악설과는 달리 도덕을 포함한 성악설을 주장한다. 그리고 한비자는 형법과 공적만을 중시하는 상앙의 法개념을 비판하면서 사람들이 따라야 할 보편적인 기준으로서  도(道)가 포함된 법개념을 새롭게 세운다.

법가사상가 상앙(공손앙)의 변법개혁과 죽음, 이목지신, 오기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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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가사상의 영향

한비자의 법가사상을 도입한 진나라는 부국강병을 통한 중앙집권체제를 가장 먼저 완성하여 전국시대를 통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진시황의 지나친 폭정으로 통일된 지 15년 만에 망하게 된다. 안타깝게도 법가(法家) 사상을 집대성한 한비자(韓非子)의 사상은 표면적으로 더 이상 꽃을 피울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직접 실행한 사람은 법가사상가 상앙의 변법개혁이다. 그 후 한나라는 법가사상에 다른 사상 도입하여 약간의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아무튼 법가사상은 진, 한나라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중국 정치철학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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