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나라의 명재상인 안영(안자 ? ~ BC 500)은 정나라의 자산, 진나라의 숙향, 오나라의 계찰과 더불어 뛰어난 재상들의 시대인 현상시대(BC 6세기 중 ~ 5세기 초)를 이끌었다. 그는 제나라의 재상으로서 3명의 군주(영공, 장공, 경공)를 모셨다. 그와 관련된 많은 일화가 있다. 여기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알아보고 그의 검소한 생활, 군주에게 기탄없이 간언 하는 용기, 그가 추진한 정치나 외교 등을 통해 현대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에 무엇을 배워야 하는 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출생과 상대부 지위
안영(안자 ? ~ BC 500)은 제나라 '래'의 이유 사람이다. 제나라 재상이었던 아버지 안약이 병사하자 그의 뒤를 이어 재상이 된다. 간언과 절약으로 3대(영공, 장공, 경공)에 걸쳐 군주를 모셨다. 사서에 의하면 안영의 키가 육 척(약 140Cm) 단신으로 왜소한 체구로 알려져 있다.
절약과 검소함
안영은 명재상임에도 불구하고 절약과 검소한 생활을 하였으며, 아내에게 비단옷을 입히지 않았다. 또 자신의 부와 권력을 뽐내거나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낭비와 부패를 멀리하였다.
· 안영호구(晏嬰狐裘)
안영은 재상임에도 불구하고 여우털로 만든 한 벌의 옷을 30년이나 입었다. '높은 사람이 매우 검소하게 생활한다'라는 말에서 유래된 고사성어이다. 사마천은 안영의 검소함을 높이 평가하였다.
· 안영의 마부
재상 안영을 모시고 다니던 키가 팔 척이나 되고 잘생긴 마부가 있었다. 그 마부가 안자의 위세를 믿고 뽐내고 다니자 많은 사람들이 그를 재상 안자로 잘못 알게 된다. 그 소문을 들은 마부의 아내가 이를 경계하여 조심하라고 남편에게 말한다. 마부는 잘못을 고친다. 나중에는 재상 안자의 행동을 닮아 겸손하게 되어 관직에도 오르게 된다.
직언(면절정쟁 面折廷爭)
안영은 군주의 잘못을 면전에서 기탄없이 솔직하고 정직하게 표현한다. 그리고 자기 부하들의 요구를 잘 수용하여 왕에게 간언을 하였다.(면절정쟁 : 제나라의 재상 관중이 임금 제환공 면전에서 기탄없이 직간하고 쟁론하는 데에서 유래한 고사성어), 그 결과 군주의 신임을 받았으며 40여 년동안 나라의 근본을 바로 잡아 국력을 강화하였다.
· 양두구육(羊頭狗肉)
제영공은 궁녀가 남장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자 민간에서도 여자가 남장하는 것이 유행하게 되었다. 이것을 막기 위해 영공은 남장 금지령을 내렸으나 잘 지켜지지 않는다. 이를 이상하게 여겨 그 이유를 안영에게 묻는다. 이에 안영은 "양머리를 내놓고 개고기를 파는 것과 같다."라고 말하며 "궁궐에서부터 남장을 금하라."라고 직언한다. 여기에서 "양두구육(羊頭狗肉) 겉은 번지르하지만 속은 그렇지 못하다."라는 뜻의 고사성어가 유래되었다.
· 장공과 대부 최저
안영은 제나라 장공이 대부 최저의 반역으로 죽었을 때 장공의 시신 앞에서 엎드려 소리 높여 울고 군신의 예를 다하고 떠난다. 이를 보고 사마천은 "그는 의로운 사람이다."라고 칭찬을 한다.
· 기나라 금항리 속의 죽간
놀기 좋아하는 경공에게 금항리 속의 죽간에 "물고기를 먹되 뒤집지 말고, 질 나쁜 말은 타지 않는다."라는 말이 적혀 있는데, 이는 '세금을 가혹하게 거두지 말고 절반정도만 거두어야 백성이 편하여지고, 비열한 간신을 기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기나라는 이를 이행하지 않고 금항아리 속에 넣어 깊이 보관하였기에 망하였다고 직언을 함.
· 경공과 새 관리인 촉추
제나라 경공은 새 사냥을 좋아했다. 그런데 촉추가 실수해서 새들이 모두 도망가고 말았다. 화가 난 경공은 촉추를 죽이라고 명했다. 이때 안영은 "촉추의 죄가 세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관리를 소홀히 하여 새들을 놓친 죄, 둘째는 임금이 새 때문에 사람을 죽이게 한 죄, 셋째는 이 일로 다른 나라 군주들이 제나라 군주가 사람보다 새를 더 중히 여긴다고 생각하게 만든 죄"라고 말한다. 이 말을 듣고 부끄러워진 경공은 결국 그를 풀어준다.
외교와 정치에서 조화와 협력(촌철살인 寸鐵殺人)
안영은 외교와 정치에 능통하여 진나라와의 관계를 조율하고 다른 제후국들과의 연합을 이끌었다. 또한 명장 사마양저를 추천하여 제나라의 국력을 강화하였다. 그는 조화를 중시하고 동조를 멀리하였다. 조화와 협력을 중시한 리더로 제후국들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해결하였다. 여러 나라를 두루 다니며 핵심을 찌르는 한마디 말(촌철살인)로 초 영왕을 감동시키는 많은 일화가 전해진다.
· 초 영왕과 안영
안영이 초나라에 사신으로 갔는데, 안자의 키가 작은 것을 보고 초나라 사람들이 큰 문 옆에 있는 작은 문으로 들어오게 하였다. 안자가 들어오지 않고 말하길, “개의 나라에 사신으로 간 사람은 개가 들어가는 문으로 들어가지만, 지금 나는 초나라에 사신으로 왔으니 마땅히 이 문으로 들어갈 수는 없소.”라고 말했다. 그러자 할 수 없이 사신을 접대하는 자가 길을 바꾸어 큰 문으로 들어오도록 하였다. 안자가 초왕을 알현하자 초왕이 말하길, “제나라에는 인물이 없소? 그대를 사신으로 보내다니요?”라고 하자, 안자가 답하기를 “제나라의 수도 임치는 300여 리나 되며 옷소매를 펼치면 그늘이 이루어지고, 땀을 뿌리면 비가 됩니다. 어깨가 마주 닿고 발꿈치가 연이어지는데, 어찌하여 인물이 없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초왕이 말하기를 “그런데 그대가 어떻게 사신이 되었소?”라고 하니, 안자가 답하길, “제나라에서는 사신을 임명할 때 각각 그 군주에 맞추도록 합니다. 현명한 자는 현명한 군주에게 사신으로 가고, 현명하지 못한 자는 현명하지 못한 군주에게 사신으로 갑니다. 저는 가장 현명하지 못하므로 마땅히 초나라에 사신으로 왔습니다.”라고 했다.)
· 남귤북지(橘化爲枳) , 귤화위지(南橘北枳)
초 영왕이 도둑질을 한 제나라 사람을 보이며 말하길, “제나라 사람은 원래 도둑질을 잘합니까?”라고 묻는다. 안자는 자리를 피하며 말하길, “이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귤은 회수 남에서 자라면 귤이 되지만, 회수 북에서 자라면 탱자가 된다고 합니다. 단지 잎은 서로 비슷하지만 그 과실의 맛은 같지 않습니다. 그리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물과 땅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백성들이 제나라에서 자라면 도둑질을 하지 않다가 초나라에 들어오면 도둑질을 합니다. 이는 초나라의 물과 땅이 백성들로 하여금 도둑질을 하게 만드는 것 아니겠습니까?”라고 했다.
교훈과 배울 점
제나라의 명재상 안영은 처에게 자기가 행해온 가법을 바꾸지 말도록 유언을 하며 BC 500경에 죽는다. 사마천은 " 안자가 오늘날 살아있어 말채찍을 잡고 그의 수레를 몰 수 있다면 그 일은 내가 기뻐하고 흠모하는 바가 될 것이다."라며 그를 칭찬하였다. 이와 같이 안영은 절약과 검소함, 간언의 중요성, 조화와 협력을 중시하고, 동조를 경계하였다. 대화와 타협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의 주장만 내세우고 대립과 투쟁을 일삼고 있는 현재 우리나라 정치인과 정치 지도자에게 그의 간언과 행동은 좋은 본보기가 된다. ※ 다음은 진니라 명재상으로 참고가 됩니다. 진나라 재상 '오고대부 백리해' 생애와 업적, 순망치한, 진혜왕, 진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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