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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사마천 사기

사기(史記) 백이열전 백이와 숙제, 서백 희창, 주 무왕, 채미가

by 이야기마을촌장 2023. 11. 8.

여기에서는 사마천의 입장에서 '<사기(史記) 백이열전> 속의 백이와 숙제'를 통하여 그가 무엇을 주장하고 말하고 싶어 하는 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백이와 숙제와 같은 의로운 사람이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굶어 죽어간 사실, 그리고 요순시대 '허유'와 탕임금 시대 '무광'이 공자의 책 6경에 포함되지 않은 사실 등 이러한 것들은 "현실이 삶의 다양한 생각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배척하기 때문이다."라고 사마천은 주장한다. 또한 그는 이러한 현 시대상황을 빗대어 조롱하면서 자신도 그러한 처지에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의롭고 착한 사람은 왜 곤경에 빠지게 되는가?'라는 화두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마천은 "천리마의 꼬리에 붙어야 천리길을 갈 수 있다."라고 말한다. 즉 자신도 현실세계에 진출하여 출세하고 싶다는 뜻을 은근히 암시하고 또 그런 생각을 합리화시킨다.

백이숙제

백이와 숙제 고사 줄거리

고죽국 왕 묵태조가 삼남 숙제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하자, 숙제는 '장남인 형이 있는데 내가 할 수는 없다'라고 생각하여 장남 백이에게 양보를 하였으나, 백이는 아버지의 명을 거역할 수는 없다고 달아나자, 삼남 숙제도 역시 도망을 치게 되어 이남 아방이 왕이 된다. 백이와 숙제는 주나라의 서백 희창이 어질다는 소문을 듣고 몸을 의지하려고 찾아가나 이미 서백 희창은 죽고 없고 그의 아들 무왕이 왕위에 있었다. 그가 아버지의 상중에 상나라(후에 은나라) 주왕을 정벌하려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아 “아버지가 죽어서 장례도 치르지 않았는데 창칼을 드는 것을 어찌 효(孝)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신하로서 군주를 죽이는 것을 어찌 인(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비난을 하자 이에 무왕은 대로하여 이들을 죽이려 한다. 이때 강태공은 "이들은 의로운 사람들입니다"라고 말을 하며 이를 말린다. 그 후 무왕이 은나라를 정벌하게 되자 이를 부끄럽게 생각하여 이들은 수양산에 들어가 '주 무왕의 땅에 나는 곡식은 먹지 않겠다.'라고 하며 고사리를 캐 먹고살다가 굶어 죽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백이 이름의 기원

일설에 의하면 백이와 숙제는 사람 이름을 뜻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숙제(叔齊)는 모르지만 백이(伯夷)는 한족 하나라의 중심인 중국에서 伯은 최고, 夷는 오랑캐를 의미하므로 즉 백이(伯夷)는 이민족인 오랑캐 중에 최고라는 뜻을 가진다. 또 그들은 동이족이라는 설도 있다. 아무튼 백이가 살았던 지역은 산동성 태산으로 강태공 강상은 강성 여씨로 역시 백이라고 알려져 있다. 따라서 백이가 찾아왔을 때 같은 지역 출신인 강태공이 그를 의로운 사람이라고 말하며 주 무왕의 화를 막아 주어던 것도 그러한 이유였을 것이다. 백이(伯夷), 숙제(叔齊)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삼촌들을 백부, 숙부로 부르는 것처럼 백이와 숙제 관련 이야기는 아마 사기를 쓴 '사마천의 상상에서 만들어진 소설이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사마천이 본 백이와 숙제

<논어> 술이편에서 제자 자공이 '이들은 과연 원망이 없었겠는가?'라고 질문을 하자 공자는 '구인득인'으로  인(仁)을 구하기 때문에 원망이 없다고 공자가 대답을 하나 사마천은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 먹고살던 <채미가>를 보면  "저 서산(西山)에 올라 그 고비를 뜯는다. 폭력을 폭력으로 바꾸고도 그 잘못을 알지 못하는구나! 신농, 우, 하는 이미 사라졌으니 우리는 어디로 돌아갈까나? 아~ 우리는 죽음의 길로 간다. 가련한 운명이여!"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백이와 숙제는 주나라 무왕을 원망하는 마음이 있다. 그렇게 사마천은 자기의 생각을 감정이입하여 말하고 있다. 즉 사마천 자신도 궁형을 받은 것과 '이릉의 화'에 대하여 한무제를 원망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은근히 보여주고 있다

 


사마천이 본 공자의 6경

공자의 6경(시경, 서경, 역경, 춘추, 예기, 악기)에는 요임금에서 순임금으로 왕위가 넘어갈 때 요임금이 왕위를 줄려고 하자 이를 거절한 허유의 이야기나, 탕임금 때 왕위를 거절한 변수, 무광의 이야기는 왜 빠졌을까? 이것은 6경은 공자의 입장에서 유가적인 측면으로 쓴 책으로 변수, 허유, 변수, 무광은 노장사상에 가깝기 때문에 빠진 것이라고 주장하며 삶의 다양성을 한 가지의 편협된 흑백논리로 평가하면 안 된다고 은근히 공자를 비난한다. 

 

 
회의주의에 빠진 사마천

사마천은 '착하고 어진 사람이 곤경에 빠지게 되는 것이 과연 하늘의 도인가?'라는 회의주의에 빠지게 된다. 노자는 "하늘의 도는 사사로움이 없어 늘 착한 사람과 함께 한다"라고 말하였지만 인, 덕을 쌓고 청렴고결하게 살다가 굶어 죽은 백이와 숙제는 어떻게 된 것인가? 또 공자는 학문을 좋아하는 제자 안연을 추구하고 굶어 죽은 제자 회는 뒷전으로 생각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리고 춘추말기에 도적 도척은 나쁜 짓만 했는데 자기 수명을 다하고 죽은 것은 무엇일까?  이러한 생각에 사마천은 공평하지 못한 현실 세상을 비판하며 자기 자신도 처지가 그러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회의주의를 극복한 사마천

사마천은 '천리마의 꼬리에 붙어야 천리길을 갈 수 있다'라고 말하며 다시 공자에로 돌아간다. "군자는 죽은 뒤에 이름이 일컬어지지 않는 것이 가슴 아프다.", "겨울이 되어야 소나무 잣나무의 푸르름을 알 수 있다."라고 하며 한나라 문제 때 가의가 나타나 유가적인 이상으로 흉노를 회유하고 왕권을 강화하며 인의의 정치를 펼치자 이에 사마천은 정치가이며 문인인 가의를 크게 칭찬하여 '성인이 나타나야 세상만물도 뚜렷이 드러나게 된다'라고 말하며 또한 공자 같은 성현을 만나야 후세에 이름을 남길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자기도 이러한 인물을 만나 현실 세계에 진출하고 싶다는 생각을 비추고 있다.

 

 

후대에 미치는 영향

'백이⋅숙제의 이야기'는 유교에서는 임금과 신하사이의 도리와 충절의 상징이며, 불교에서는 백이와 숙제의 죽음을 '세상의 고통을 벗어나는 방법'으로 생각하였으며, 문학가에게는 시와 산문에 많이 인용되었으며, 예술가들에게는 충성과 희생을 상징으로 그림이나 조각에 많이 표현되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충절(忠節)의 상징인 백이⋅숙제 이미지는 사마천의 《사기》<백이열전>에서 비롯된 것이다.  

 

맺음말

우리는 위에서 사마천의 입장에서 '<사기 백이열전>속의 백이와 숙제'를 통하여 그가 무엇을 주장하고 말하고 싶어 하는 지를 살펴보았다. 공자는 백이와 숙제는 주왕을 원망하는 마음이 없다고 말하지만, 사마천은 <채미가>를 보면 백이와 숙제도 원망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즉 사마천 자신도 '궁형을 받은 것과 '이릉의 화'에 대하여 한무제를 원망하는 마음이 있다.'라는 것을 " 백이와 숙제는 주무왕을 원망하는 마음이 있다."라고 자기의 생각을 감정이입을 하여 말한다. 그리고 사마천은 "나도 현시대가 공평하지 못해서 사회 진출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은근히 표현하고 있다. 다음은 제환공의 춘추오패 등극과 관포지교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 제 환공(소백)의 춘추오패 등극과 관포지교, 관중과 포숙아, 문강공주

 

제 환공(소백)의 춘추오패 등극과 관포지교, 관중과 포숙아, 문강공주

우리는 여기에서 '제 환공의 춘추오패 등극과 관포지교'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춘추시대 5명의 영웅을 춘추오패(제환공, 진목공, 송양공, 진문공, 초장왕)라 한다. 그중 제일 먼저 패자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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