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혜왕이 즉위한 초기에 위나라는 주변 나라(조, 제, 진, 송, 한)들과 끊임없이 전쟁을 하였다. 따라서 국력이 강해질 안정된 시기가 없고 늘 혼란에 빠져 있었다. 그 해결책으로 재상 공손 좌는 위혜왕에게 상앙을 추천한다. 그러나 인재를 알아보지 못하는 위혜왕은 그를 놓치게 된다, 그 후 후회하고 인재를 구하나 또 손빈 같은 인물을 놓치고 의리가 없고 욕심이 많은 방연을 장군으로 기용한다. 상앙은 진나라로 손빈은 제나라로 도망가게 된다. 그 결과 위나라는 서서히 패망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이와 같이 한 나라의 흥망성쇠는 인재를 알아보고 어떻게 기용하느냐에 달려있다. 상앙은 진나라의 개혁에는 성공하나 인생에서는 실패하여 비참하게 죽게 된다. 여기에서는 법가사상가 상앙(공손앙)의 변법개혁과 죽음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출생과 초기생활
공손 앙(BC 390 ~ BC 338)은 중국 전국시대 위나라 사람이며 정치가이다. 이름은 '앙'이다. 본명은 '공손 앙'이나 나중에 진(秦) 나라 '상'지역을 식읍으로 받아 이름을 '상앙'이라 불리어진다. 상앙은 후기 법가사상가(상앙, 신불해)이며 철저한 법지상주의자이다. 그는 전기 법가사상가(오기, 이회)의 영향을 받았다. 이들 4명을 4대 변법가라고 한다. 공손 앙은 양명학에 관심을 가지고 자라 성인이 되어 위나라 재상 공숙 좌의 가신이 된다. 위혜왕 즉위 초기 위나라는 주변 나라(조, 제, 진, 송, 한)들과 끊임없이 전쟁을 하였다. 따라서 전쟁으로 인하여 국력이 약해지고 늘 혼란에 빠져 있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고 재상 공숙 좌는 상앙의 유능함을 알아보고 그를 위혜왕에게 추천한다.
진나라로 도망
재상 공숙 좌는 위혜왕에게 " 공손 앙을 재상으로 등용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위나라를 강대국으로 만들어 줄 것입니다. 만약 등용하지 않으려면 당장 이 자를 죽여 후환을 없애야 합니다."라고 유언을 남긴다. 그러나 위혜왕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공손 앙을 등용하지도 않고 죽이지도 않았다. 이에 실망한 공손 앙은 공숙 좌의 장례를 마치고 진나라 효공을 찾아가 재상이 된다. 그는 2차에 걸쳐 변법 개혁을 추진하여 약소국인 진나라를 강대국으로 만든다. 세월이 흘러 공숙 좌의 예언대로 진나라는 위나라를 침공하여 영토를 빼앗아 간다. 서서히 위나라는 패망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상앙의 변법 개혁
상앙은 진효공을 만나 법가사상에 기초를 둔 부국강병책을 추진하여야 한다고 설득한다. 그 결과 진효공은 그를 정치개혁을 할 수 있는 총책임자인 대량조의 직위를 준다. 상앙은 법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많은 기득권 세력의 반발을 사게 된다. 이때 진효공은 상앙의 편을 들어준다. 그러나 백성들의 마음을 잡기에는 쉽지가 않았다. 이에 상앙은 도성 저잣거리에 기둥을 세우고 "이 기둥을 옮기는 사람에게는 상을 주겠다."라고 말한다. 아무도 옮기는 사람이 없었다 상앙은 다시 상금을 올려 "이 기둥을 옮기는 사람에는 50 금을 주겠다."라고 말한다. 이에 한 사람이 반신반의하면서 기둥을 옮기자 그에게 정말로 50 금을 주었다. 여기에서 고사성어 "이목지신(移木之信)"('나무를 옮기는 믿음' 즉 '남을 속이지 않고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이 유래되었다. 그 후 상앙은 10년에 걸쳐 2차의 변법 개혁을 추진하여 약소국인 진나라를 강대국으로 만든다.
· 1차 변법 개혁
다섯 집을 하나로 묶어 납세와 징병의 단위로 하는 십오제를 시행하여 연좌제를 적용하였다. 기존의 봉건 신분제를 폐지하고, 수급(전쟁에서 적의 목)으로 벼슬을 20 등급으로 나누어 주었다. 따라서 농사나 전쟁 이외에는 벼슬을 받을 수 없게 하였다. 곡식과 포를 바치면 노역을 면하게 해 준다. 한 집에 2명 이상 일하지 않는 남자가 있으면 세금을 두배로 거둔다. 법을 지키면 반드시 그 대가를 준다.
· 2차 변법 개혁
상앙은 함양을 건설하고 천도하여 중원 진출의 발판으로 삼는다. 31개 현의 군현제를 실시하여 지방통치를 원할이 하였다. 그리고 농지를 정리하고, 도량형을 통일하였다. 상앙은 법의 시행에 태자도 예외 없이 적용하였다. 한 번은 태자 영사(혜문왕)가 법을 어기자(사형선고를 받은 왕족을 숨겨줌), 스승인 공자 건을 잡아 코를 벤다. 이 일로 인하여 태자는 상앙에게 증오를 품는다. 상앙의 변법 개혁으로 양인의 수가 많아지고 재정이 확충되어 나라가 부강하여진다. 그 결과 주나라 천자가 진효공을 패자로 인정하고 고기를 보내온다.
서하 지역 회복
위나라와 제나라의 전쟁인 마릉전투(BC 340)에서 제나라가 승리를 하여 위나라의 국력이 약해지자, 기회를 놓치지 않고 상앙은 위나라 문후 때 오기장군에 의해 빼앗겼던 서하지역을 공격한다. 상앙은 위나라 대장 공자 앙을 속여 포로로 잡고 대승을 거둔다. 결국 위나라는 '안읍'에서 '대량'으로 천도를 하게 된다. 그 결과 위나라를 완전하게 동쪽으로 밀어내고 서하 지역을 회복한다.
상앙의 죽음
상앙은 10년에 걸쳐 2차의 변법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 많은 기득권 세력(왕실, 외척)의 반발을 사게 된다. 그러던 중에 상앙은 유학자 조량을 만나게 된다. 조량은 상앙에게 백리해의 어진 정치(덕으로 다스림)에 대해 설명한다. 그리고 "사람을 얻는 자는 흥하고, 사람을 잃는 자는 망한다."라는 <시경>에 나오는 말을 하면서 상앙에게 '자리에서 물려날 것'을 충고한다. 그러나 상앙은 조량의 충고를 듣지 않는다. 5개월 후 진효공이 죽고 과거 원한이 있던 태자 영사(혜문왕)가 왕이 된다. 진효공이 죽은 후 상앙은 반역자로 몰려 야반도주를 한다. 위나라로 도망가나 거절을 당하고 결국에는 자기가 만든 법에 의해 함양까지 압송되어 거열형(사지를 찢어 죽이는 형벌)에 당한다.
※ 이 글과 관련있는 글입니다. 법가사상 집대성한 '한비자', 미자하, 신상필벌, 도상무위이무불위
맺음말
우리는 위에서 법가사상가 상앙(공손앙)의 변법개혁과 죽음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상앙은 진나라의 효공을 만나 10년 동안 2차에 걸쳐서 변법 개혁을 시행한다. 그 과정에서 자기에게 원한을 가진 사람을 많이 만들게 된다. 자기의 권력이 영원하리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상앙을 보고, 나는 '화무십일홍'이란 말을 떠올린다. 권력을 가지거나 높은 직위에 있을 때 항상 자기를 낮추는 자세가 필요하다. 도덕정치를 펼쳐야 한다. 그리고 물러나야 할 때에 물러나야 한다. 상앙은 권력을 믿고 힘으로만 제압하였다. 그리고 그는 조량의 충고(물러나야 할 때 물러 나는 것)를 받아 들이지 않는다. 즉 상앙은 " 공을 세운 다음에 물러나는 것이 하늘의 도이다, 功遂身退 天之道(공수신퇴 천지도)"<도덕경 7장>라는 말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결국 그는 자기에게 원한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반역죄로 모함을 받아 쫓겨 다니다가 마지막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자기가 만든 법에 의해 거열형(사지를 찢어 죽이는 형벌)을 당한다. 그러나 상앙의 변법개혁의 사상은 살아남아 그가 죽은 후 진시황의 통일 국가 완성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우리 현대인들은 상앙의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많은 것을 배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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