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사마천 사기

위대한 사상가 공자와 육경, 유가사상 논어, 군자삼락, 극기복례

by 이야기마을촌장 2023. 11. 13.

공자(孔子BC 551~BC479, 공부자)는  유교의 시조이자 문학가, 정치가, 사상가로 활동하였다. 그 살았던 시기는 춘추시대이다. 이 시기는 약육강식 전쟁의 혼란한 시기이며, 주나라 중심의 봉건제도에서 중앙집권제도로 넘어가는 과도기이다. 그는 무너져 가는 주나라의 예법(주례)을 회복하여 세상을 구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그는 당시의 군주들에게는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우리는 여기에서는 공자의 생애, 공자의 사상, 그리고 <논어>에 나오는 공자의 가르침 그리고 후세사람들의 평가를 통하여 '위대한 사상가 공자와 유가사상'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공자

공자의 생애

 그는 노나라에서 서자로 태어났다. 이름은 구, 자는 중니이다.  3살 때 아버지가 죽은 후 어머니 마저 눈이 멀어버려 어려운 가정형편에서 어린 시절을 지낸다. 공자가 16세에 어머니가 죽자 3년상을 지냈으며 어린 시절 제사 흉내를 내며 놀기를 좋아했다. 19세에 결혼하여 20세에 아들 리를 낳는다. 공자에게는 특별한 선생이 없고 모든 사람으로부터 배우기를 좋아한다. 30대가 되자 노나라에서 가장 위대한 학자가 되었으며 그는 학원을 열어 <시경> <서경> <주역> 등의 경전을 학생들에게 가르쳤다. 50대에 노나라의 사법권을 관장하는 대사구에 임명되었으나, 다른 사람의 질투로 왕의 신임을 잃게 되자 그는 노나라를 떠나 유랑생활을 14년간 한다. 68세에 다시 노나라로 돌아온다. 공자는 무너진 노나라 주공의 종법제를 회복하여 천하를 구하고자 하였다. 공자의 도덕정치는 당시 군주들에게는 잘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따라서 관직에는 오랫동안 있지 못하고 교육에 전념하였다. 그 결과 그를 따르던 제자는 3,000명이나 되었다. 그는 유가의 경전인 육경(시경, 서경, 역경, 악경, 예기, 춘추)을 정리하였으며, 공자가 죽은 후 제자들은 그의 말을 모아 <논어>를 편찬한다.

 

 

공자의 사상 

사람이 가야하는 길(도)이란 시대에 따라 달라져 왔다. 고대 중국 상나라, 은나라 시대에는 "짐이 곧 길이다."라고 했으며, 춘추전국시대에는 "왕은 하늘의 명을 받은 사람이다"라는 천명사상이 지배한 시대이다. 공자는 천명이 아닌 인도를 적극적으로 추구한 사람이다. 공자는 ‘인(仁)이 무엇인지’ 묻는 제자 안연에게 극기복례(克己復禮)를 가르쳤다. 먼저 자신을 바르게 하는 극기와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예의를 갖추라는 것이다. 그는 인(仁)예(禮)를 중요시 하며 그 실천방법으로 중용(中庸)을 주장하였다. 이와 같이 인과 예가 중용으로 잘 실천된 화목한 사회가 공자가 바라는 이상사회이다.  

 

· 인(仁)

인이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愛人)"이다. 위나라의 자공이 공자에게 "제가 평생 동안 실천할 수 있는 한마디 말이 있습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其恕乎, 己所不欲勿施於人(기서호, 기소불욕 물시어인)"라고 말하였다. 그것은 바로 용서의 '서(恕)'이다. 자기가 싫어하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도 하지 않는 것이다. <논어 위령공편>, 이와 같이 인은 내심의 도덕성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상호 존중과 배려, 인간의 선량한 행동에 대한 가치를 강조한 것이다.

 

· 예(禮)

공자는 예로써 나라를 다스릴 것을 주장한다. 예는 제례, 혼례, 상례 등이 있다. 공자는 "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비례물시 비례물청 비례물언 비례물동)"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행동하지 말라. <논어 안연편>, 당시 춘추시대는 약육강식 전쟁의 시대로 혼란하였으므로 공자는 주나라 때의 도덕규범을 준수하기를 주장한다. 공자는 예를 통해 사회 질서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강조했다. 이와 같이 예는 외부적인 행동규범이다. 

 

· 중용(中庸)

공자는 인과 예의 실천하는 방법으로 "過猶不(과유불급)", 지나치는 것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 <논어 선진편> 공자는 예와 인을 실천하는 방법으로 극단을 피하고 적절한 균형과 조화를 유지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와 같이 중용은 인과 예를 실천하는 방법이다. 공자의 이러한 중용사상은 후세에 문제 해결하는 방법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공자의 가르침

공자의 가르침은 많은 것이 있으나 여기에서는 <논어>에 나오는 학문과 배움의 기쁨에 대한 문구 중 요즈음에 자주 인용되는 것을 알아보고자 한다. 

 

"十室之邑 必有忠信 如丘者焉 不如丘之 好學(십실지읍 필유충신 여구자언 불여구지 호학야) 집의 작은 마을에도 나처럼 충성과 믿음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있겠지만, 나만큼 배움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논어 공야장편>

 

"學而時習之 不亦說乎(학이시습지 불역열호), 有朋 自遠方來 不亦樂乎?(유붕 자원방래 불역락호),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친구가 있어 먼 곳에서 찾아오면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으면 이 또한 군자답지 아니한가? <논어 학이편>, '공자의 군자삼락'이라고 한다.

 

참고로 '맹자의 군자삼락'은 다음과 같다.

" 父母俱存 兄弟無故 一樂也(부모구존 형제무고 일락야), 仰不愧於天 俯不作於人 二樂也(앙불괴어천 부부작어인 이락야), 得天下英才而敎育之 三樂也(득천하영재 이교육지 삼락야)" : 부모가 모두 생존해 계시고 형제가 무고한 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고, 우러러보아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굽어보아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며, 천하의 영재를 얻어 가르치는 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다. <맹자 진심상편>

 

"發憤忘食 樂以忘憂(발분망식 낙이망우)" 배움의 열정에 빠져들어 공부할 때에 식사까지도 잊고공부하여 알게 되었을 때에 즐거워 걱정을 잊어버린다. <논어 술이편>, 공자는 자기 자신을 "나는 이러한 사람이다."라고 말한다.

 

"古之學者爲己今之學者爲人(고지학자위기, 금지학자위인)" 옛날에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학문을 했는데, 오늘날에는 남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 학문을 한다. <논어 헌문편>

 

 

공자의 평가

우리는 '위대한 사상가 공자와 유가사상'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공자가 살았던 춘추시대는 약육강식의 사회적 혼란시기로 과거 주나라의 예법이 무너지고 새로운 통치제도로 교체되는 과도기이다. 이러한 시기에 주나라의 제도와 예법을 통한 도덕정치를 주장하는 공자의 사상은 군주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후대에 이르러 그의 유가사상은 중앙집권제도 국가의 통치 이념으로 채택되었다. 그의 철학적인 사상은 후세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특히 <논어> 속에 나오는 많은 글구들은 현재에도 좌우명, 격언 등으로 많이 인용되고 있다.

※ 다음은 이 글과 관련이 있습니다. 노자의 <도덕경>과 무위자연사상, 공수신퇴 천지도, 도가도비상도

 

노자의 도덕경과 무위자연사상, 공수신퇴 천지도, 도가도비상도

우리는 여기에서 노자의 과 무위자연사상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먼저 노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존재한다. 사마천의 에 나오는 인물을 보면 3명으로 보인다. 1. 초나라 사람 이이(李

bong3614.tistory.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