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제24대 국왕 헌종(1827 ~ 1849)의 이름은 이환(李烉)으로 순조의 손자이자 효명세자(익종)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조만영의 딸 신정왕후이다. <헌종실록>는 총 17권(부록 1권)으로 구성되며 그의 재위기간 1834년 11월부터 1849년 6월까지 14년 7개월 동안 일어난 역사적인 사실을 편년체로 적은 역사서이다. 실록의 편찬은 1849년 11월에 시작하여 1851년 윤 8월에 완성되었다.
헌종의 등극과 수렴청정
· 헌종의 시대
순조시대부터 시작한 세도정치가 점점 심해져 그 여파로 과거제도 및 국가 재정의 기본이 삼정(전정, 군정, 환곡)의 문란해졌으며, 9년에 걸친 수재 등 자연재해의 발생으로 민생이 파탄되었다. 계속된 천주교의 탄압으로 기해박해가 일어나 나중에 프랑스와의 외교분쟁으로 비화된다. 또한 이양선의 출몰로 민심이 소란해지는 등 외우내환의 시기로 조선 사회의 붕괴의 조짐이 일어난 시기이었다.
· 헌종의 등극
헌종은 순조의 손자이자 효명세자(익종)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풍은부원군 조만영의 딸인 신정왕후이다. 순조는 1830년 아버지 효명세자가 22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하자 손자인 환(헌종)으로 하여금 왕통을 잇도록 왕세손에 책봉한다. 4년 후 1834년 11월 순조가 사망하자 8세인 왕세손 환이 왕이 된다. 그가 바로 조선 제24대 국왕 헌종이다.
· 순원왕후 김씨의 수렴청정
8살의 어린 나이로 헌종이 즉위하자 할머니인 순원왕후 김씨는 순조가 15세가 되는 1840년 12월까지 약 6년 동안 수렴청정을 한다. 먼저 순원왕후 김씨는 홍경래의 난을 수습하고 민심을 달래기 위해 서북인 차별을 철폐하고 관리로 등용한다. 그리고 헌종이 10살이 되던 1837년 3월 영흥부원군 김조근의 딸을 왕비로 맞이하였으나 병으로 사망하자, 다시 1844년 10월 익풍부원군 홍재룡의 딸을 계비로 맞이한다. 그리고 1836년 충청도에서 '남응중 역모사건'이 발생한다. 남응중, 남경중, 남공언 등이 정조의 아우 은언군의 손자를 왕으로 추대하고 청주성을 점령하는 역적모의를 계획하다 이석의 고변으로 사전에 발각된다. 결국 남응중 등은 체포되어 능지처참을 당하고 계획은 실패로 돌아간다. 그녀는 1838년 다시 천주교를 탄압하여 '기해박해'를 일으킨다. 이때 앙베르, 샤스탕, 모방 등 프랑스 신부와 유진길, 정하상 등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죽거나 탄압을 받는다. 헌종은 그해 11월 천주교를 공식적으로 금한다는 '척사윤음'을 반포한다.
· 헌종의 치세
1840년 12월 순원왕후의 수렴청정이 끝나자 안동 김씨 세력은 다소 약해지고 풍양 조씨의 세력은 강해진다. 풍양 조씨의 세력은 헌종의 어머니 신정왕후였던 조대비의 가족으로 조대비의 아버지 조만영, 그의 동생 조인영, 조카 조인영, 아들 조병구 등이다. 이들은 5~6년간 정권을 잡다가 1846년 조만영이 사망하자 다시 안동 김씨 세도정치가 펼쳐지게 된다. 헌종이 친정이 시작되자 정권을 잡은 풍양조씨 세력들은 정치혁신 대신 안동김씨와의 정권 경쟁에만 급급하여 민생과 사회 문제에는 멀리하여 부정부패는 물론 삼정의 문란과 신분 질서의 붕괴가 가속화된다. 대표적인 사례로 1844년 헌종 10년에 발생하는 '민진용 역모 사건'으로 안동 김씨에서 풍양 조씨로 권력이 넘어가는 과도기에 왕실의 권위가 실추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의원 출신 민진용이 이원덕, 박순수, 박시응 등과 정조의 아우 은언군의 손자인 원경을 왕으로 추대하여 역모를 일으킨 사건으로 민진용 등은 능지처참을 당하고 은언군의 손자인 원경은 사사된다. 헌종 11년 영국 군함 사마랑 호가 제주도와 서해안을 불법 측량하고 돌아가는 일이 발생한다. 헌종 12년 5월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 김대건이 체포되어 사교를 퍼뜨렸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어 효수형에 처해진다. 그리고 6월 프랑스 세실 제독 천주교 탄압을 구실로 군함 3척을 몰고 충청도 외연도에 들어와 조정을 긴장시킨다. 헌종 14년 이양선들이 경상, 전라, 황해, 강원, 함경도 등지에 빈번하게 출몰하여 문호개방과 통상을 요구한다. 이에 헌종은 14년에 걸친 재위기간 동안 세도정치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권력투쟁에 휘말린다. 또한 정치력이 부족하여 급변하는 국내외 정세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한다. 또한 조선에 입국한 서양인 신부와 최초의 조선인 신부인 김대건을 처형하는 등 천주교에 대하여 강경하게 대응을 한다.
헌종의 사망과 가족들
· 헌종의 사망
헌종은 1849년 23세의 젊은 나이로 후사 없이 사망하여 정조의 직계 자손이 단절되고 만다. 그의 능은 경릉으로 경기도 구리시에 소재하고 있다.
· 헌종의 가족들
헌종은 4명의 부인(효현왕후 김씨, 효정왕후, 경빈 김씨, 궁인 김씨)에게서 궁인 김씨에게서 1명의 딸을 낳는데 그 딸마저 일찍 사망한다. 헌종 시대에는 헌종의 어머니인 신정왕후 조씨(조대비)가 6년간 수렴청정을 하여 풍양조씨가 세도정치를 하게 된다.
· 신정왕후 조씨(1808 ~ 1890)
효명세자(익종)의 부인인 동시에 헌종의 어머니로 풍은부원군 조만영의 딸이다. 12세에 세자빈이 되고 1834년 헌종이 왕이 되자 남편 효명세자는 익종으로 자신인 왕대비로 추존된다. 이때부터 풍양조씨 가문이 요직에 배치되고 세도정치를 펼치게 된다. 1857년 순조비 순원왕후가 죽자 대왕대비가 된다. 그 후 철종이 재위 13년 만에 후사가 없이 사망하자 왕실의 전권을 쥐게 된다. 이때 조대비는 안동김씨의 세도정치에 불만을 품고 흥선군 이하응과 조카 조성하와 손을 잡고 1863년 흥선군의 둘째 아들(고종)로 왕위를 잇게 한다. 그리고 고종을 아들 삼아 익종의 뒤를 잇게 하여 1866년 2월까지 수렴청정을 하였으나 실제 권력을 흥선대원군이 잡도록 하였다. 그 후 조대비가 기용한 친정 세력들이 정변에 희생되어 조씨 가문에 쇠락하여지자 그것을 슬퍼한다. 1890년 8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그녀의 능은 수릉으로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소재하고 있다.
· 효현왕후 김씨(1828 ~ 1843)
안동 김씨 영흥부원군 김조근의 딸로 1837년, 10세의 나이에 헌종의 왕비로 책봉된다. 그녀는 온화하고 효심이 깊은 성격으로 알려져 있으며, 헌종과의 사이에서 자녀를 두지 못하고, 안타깝게도 1843년, 16세의 젊은 나이에 병으로 창덕궁 대조전에서 사망한다. 철종 때는 경혜, 정순의 휘호가 내려지고, 다시 단성, 수원의 존호가 더해진다. 그녀의 능은 경릉으로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소재하고 있다.
· 효정왕후 홍씨(1831 ~ 1903)
판동녕부사 익풍부원군 홍재룡의 딸로 1844년 왕비로 책봉되고 슬하에 딸 하나를 두었으나 그마저 일찍 사망한다. 1849년 철종이 즉위하자 대비가 되었으며, 1857년 순조의 비 순원왕후가 사망하자 왕대비가 된다. 그녀의 능은 경릉으로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소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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