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제23대 국왕 순조(1790 ~ 1834)의 이름은 이공(李玜)으로 정조의 둘째 아들이며, 어머니는 수빈 박씨이다. <순조실록>는 전 32권 부록 2권 총 36책으로 구성되며 그의 재위기간 1800년 7월부터 1834년 11월까지 34년 4개월 동안 일어난 역사적인 사실을 편년체로 적은 역사서이다. 순조실록의 첫 부분은 '순종대왕실록'이라고 되었다가 후에 '순조실록'으로 개칭한다. 실록의 편찬은 1835년 5월에 시작하여 1838년 윤 4월에 완성되었다. 편찬에는 총재관 이상황, 심상규, 홍석주, 박종훈, 이지연 등을 비롯하여 많은 인원이 편찬 작업에 투입되었다.
순조의 등극과 수렴청정
· 순조시대
순조시대는 17, 18세기 상품 화폐경제의 발달로 농민층의 사회의식이 성장하였으나, 세도정치의 폐단으로 정치의 기강이 무너져 정국이 혼란하였다. 삼정(전정, 군정, 환곡)의 문란으로 민생은 도탄에 빠지고 각종 비기와 참설이 유행하여 사회 혼란이 일어난 시기이다. 벽파인 정순왕후가 수렴청정을 맡으며 시파와 남인을 제거하기 위해 신유박해, 을해 박해 등으로 수많은 천주교인들을 탄압한다. 안동김씨의 세도정치가 시작되었으며, 홍경래의 난을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끊임없이 민란이 일어나던 시대였다.
· 순조의 등극
순조는 정조의 둘째 아들로 수빈 박씨의 소생이다. 정조와 의빈 성씨 사이에 태어난 문효세자가 일찍 죽자, 순조는 1800년 1월 왕세자로 책봉된 후, 그해 6월 순조가 사망하자 왕위에 오른다. 그가 바로 조선 제23대 국왕 순조이다. 이때 그의 나이 11세이다.
· 정순왕후 수렴청정
순조는 11세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영조의 계비이자 대왕대비인 정순왕후 김씨가 수렴청정을 한다. 곧바로 정순왕후는 벽파의 김귀주의 누이로 6촌 오빠인 김관주를 이조참판에 앉히고 벽파를 대거 등용한다. 한편 천주교는 교인이 1만 명에 이를 정도로 교세가 확장된다. 천주교는 가부장적인 권위와 유교적인 의례를 거부하고,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유일신을 주장한다. 이에 정순왕후는 벽파인 공서파와 결탁하여 시파인 신서파의 대신들을 모함하고, 신서파 남인이 많이 관여한 천주교 금지령을 내려 천주교도들을 색출하기 위해 오가작통법을 실시한다. 이 과정에 시파와 남인계의 인물인 이가환 등은 옥사당하고, 정약종 등은 처형당하였으며, 정약전, 정약용 형제는 전라도로 유배당한다. 그리고 종친 은언군과 부인, 며느리 등은 같은 이유로 사사당한다. 500여 명 희생자를 내게 된 이 사건을 신유사옥이라 하며, 그 결과 조정은 벽파가 완전히 장악하여 일당독재인 외척 세도정치가 시작된다. 한편 1802년 김조순의 딸이 순조의 왕비인 순원왕후 김씨로 책봉된다. 순조가 15세가 되는 1804년, 정순왕후는 수렴청정을 거두고 순조의 친정이 시작된다. 천주교의 탄압은 순조의 친정 이후에도 계속된다.
· 안동김씨 세도정치
1804년 순조의 친정이 시작되자 순조, 헌종, 철종에 걸친 60여 년간에 이르는 안동김씨 세도정치는 정조의 부탁을 받은 영안부원군 김조순에 의해서 시작된다. 김조순은 원래 시파이었으나 탕평을 건의하는 등으로 당색을 드러내지 않아 정순왕후 수렴청정 기간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1805년 벽파의 기둥인 정순왕후가 사망하자 김관주는 귀양 가서 병사하고, 김귀주는 이미 죽고 없었으나 역적으로 다스려져 경주 김씨 벽파계는 몰락하게 된다. 국왕의 장인인 국구가 된 김조순은 나이 어린 왕을 모시고 세도정치를 하면서 벽파가 물려간 자리를 김이익, 김이도, 김달순, 김명순 등 안동 김씨로 채운다. 그 결과 경주김씨 벽파는 몰락하고 안동김씨가 조정의 전권을 잡게 된다. 안동김씨 세력들은 온갖 전횡을 일삼으며 매관매직을 하여 신분질서가 문란해지고 탐관오리가 횡행한다. 그 결과 농민에 대한 수탈이 심해져 농민들의 민란이 일어나 1811년 홍경래의 난이 발전하게 된다.
· 홍경래의 난
1811년(순조 11년) 홍경래의 난은 몰락 양반, 유랑지식인, 서민 지주층, 대상인들이 서북인의 차별대우 철폐와 세도 정권의 가렴주구 혁파, 정도령의 출현 등을 기치로 내세우며 반란으로 이는 단순한 농민반란이 아니라 체제 변혁을 도모하는 정치적인 반란이기도 하다. 이들은 빈농, 광산노동자, 유랑민들을 주력부대로 삼고 평안도 용강 출신 홍경래를 평서대원수로 하여 거병한 10일 만에 가산, 정주 등 청천강 이북 10개 지역을 점령한다. 그 후 관군의 추격으로 세력이 약해져 정주성으로 퇴각한 후 4개월간 대치하다가 1812년 4월 관군에 의해 진압되고, 홍경래를 비롯한 농민군 2천여 명은 잡혀 처형된다. 홍경래의 난은 농민층의 자각을 불러오게 되었으며 그 결과 조선 후기 사회의 붕괴를 가속화시키게 되는 반봉건 농민전쟁이었다. 그 이외에도 크고 작은 민란과 역모가 일어났으며 순조 재위 34년 동안 19년이나 수재가 일어나는 등 천재지변도 끊이지 않았다.
· 순조의 노력
순조는 안동김씨 세도정치의 폐해를 인식하고 이를 막기 위해서 풍양 조씨 조만영의 딸을 세자빈으로 맞이하고 풍양조씨 일가를 중용한다. 그리고 1827년 효명세자로 하여금 대리청정을 하게 하여 풍양조씨 일가를 대거 등용하여 안동 김씨 세도정치를 견제한다. 그러나 이는 또 다른 외척 풍양 조씨 세도정치를 만들어 내었을 뿐 균형과 견제가 이루어지는 정계 개편을 이루는 데는 실패한다. 한편 순조는 20권 20책에 이르는 개인문집 <순재고>를 남기고, <양현전심록>, <대학유의> 등을 간행하게 한다.
순조의 사망과 가족들
· 순조의 사망
순조는 1834년 11월 13일에 45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묘호는 '순종'에서 '순조'로 개정되었으며, 그의 능은 인릉으로 현재 서울특별시 서초구 내곡동에 위치하고 있다. 순조는 효명세자가 22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하자 손자인 환(헌종)으로 하여금 왕통을 잇게 한다.
· 순조의 가족들
순조는 순원왕후 김씨를 비롯하여 2명의 부인에게서 2남 4녀의 자식을 둔다. 순원왕후 김씨에게서 2남 3녀(효명세자(익종), 아들(일찍 죽음), 명온, 복온, 덕온 공주), 숙의 박씨에게서 1녀(영온 옹주)를 낳는다.
· 순원왕후 김씨(1789 ~ 1857)
안동 김씨 세도정치를 시작한 영안부원군 김조순의 딸로 1800 삼간택을 앞두고 정조가 갑자기 죽자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의 외척 김관주의 방해로 받았지만 1802년(순조 2년) 10월 마침내 왕비가 된다. 순조가 왕이 되자 순원왕후 김씨는 수렴청정을 하면서 아버지 김조순에서 오빠 김좌근으로 이어지는 안동김씨 세도정치에 큰 역할을 한다. 한때 풍양조씨 조만영 일가에 권력을 빼앗기기도 하였지만, 헌종이 즉위하여 순원왕후 김씨의 수렴청정 때 다시 안동김씨 세력들이 정권을 잡는다. 헌종이 후사가 없이 23세 젊은 나이로 사망한다. 그러자 순원왕후 김씨는 조대비 일가가 손을 쓰기 전에 사도세자의 증손자인 강화도령 원범(철종)을 지목하여 왕위를 잇게 하고, 자신의 외가 김문근의 딸로 왕비에 책봉함으로써 안동김씨 세도정치의 절정기를 맞는다. 그 후 안동김씨 세도정치는 김좌근의 양자 김병기에게로 이어져 대원군이 등장하기까지 60여 년 간을 이어간다. 그녀는 순조와의 사이에 2남 3녀를 낳았으며 1857년 창덕궁에서 사망한다. 그녀의 능은 인릉으로 서울 강남구 내곡동에 소재하고 있다.
· 효명세자(1809 ~ 1830)
순조와 순원왕후 사이에 태어난 맏아들로 이름은 영이고, 1812년 왕세자에 책봉되었으며, 1819년 영동녕부사 조만영의 딸과 가례를 올린다. 그는 어릴 적부터 너무 총명하여 순조의 명으로 19살인 1827년 대리청정을 하게 된다. 어진 인재를 등용하는 등 백성을 위한 정책을 구현하는 데 노력하였지만 22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이때 그가 외척인 풍양조씨 일가를 대거 등용하여 나중에 안동 김 씨와의 외척 간의 권력 투쟁이 벌어지게 되어 더욱 정국이 혼란해지고 민생은 도탄에 빠지게 된다. 그의 아들 헌종이 왕이 된 후 '익종'으로 추존되었으며, 고종에 의해 다시 '문조익황제'로 추존된다. 그의 능은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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