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제15대 국왕 광해군(1575 ~ 1641)의 이름은 이혼(李琿)으로 선조의 둘째 아들이며, 어머니는 공빈 김씨이다. 광해군일기는 총 64권으로 구성되며 그의 재위기간 1608년 2월부터 1623년 3월까지 15년 1개월 동안 일어난 역사적인 사실을 편년체로 적은 역사서이다. 일기의 편찬은 1624년 2월에 시작하여 1627년 정묘호란으로 중단되었다가 1632년 12월에 완성한다. 광해군일기 중초본만 유일하게 남아 있으며 인조반정을 주도한 서인세력에 의해 많은 부분이 왜곡 조작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여기에서는 지난 시간에 이어서 혁명가 허균과 홍길동전 및 명의 허준과 동의보감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혁명가 허균과 홍길동전
· 가족들
허균(許筠 1569 ~ 1618) 은 강릉에서 태어난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문인으로 자는 단보이고 호는 교산, 학산, 성소, 백월거사이다. 허균의 아버지는 동인의 영수인 학자와 문장가 허엽이며, 어머니는 예조판서 김광철의 딸로 명문출신이지만 허엽의 두 번째 부인이 된다. 따라서 어린 시절 서출은 아니지만 서얼의 고통을 알게 되어 <홍길동전>에 서얼출신의 주인공이 나오게 되는 배경이 된다. 또한, 허균은 불교와 도교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으며, 당시 사회의 모순을 비판한다. 그의 이복형 허성과 친여동생 허난설헌은 당대의 뛰어난 문장가로 이름을 날린다. 특히 허난설헌은 황진이와 더불어 한국 여류 문학의 양대산맥이 된다.
· 생애와 업적
허균은 어려서부터 문재가 뛰어나 9세에 이미 시를 지을 줄 알았고, 학문은 유성룡에게, 시는 이달에게 배웠다. 1597년 29세에 문과 중시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이듬해 황해도사가 되었지만 기생을 가까이했다는 탄핵을 받아 부임 6개월 만에 파직한다. 그 후 형조정랑을 거쳐 수안군수를 지내다가 불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다시 탄핵을 받자 스스로 관직을 내놓고 불교에 몰두한다. 1606년에 명나라 사신을 영접하는 종사관이 되었다가 삼척부사가 되었다가 불상을 모시고 참선을 하였다는 이유로 세 번째 탄핵을 받아 관직에 쫓겨난다. 그러나 그의 학식을 높이 평가하여 다시 공주목사로 임명되었다가 서얼출신과 가까이한다는 이유로 다시 네 번째 탄핵을 받아 파직당한다. 그러자 허균은 부안으로 내려가 기생 계생과 시문을 주고받으며, 천민 출신 시인 유희경과도 교분을 쌓아간다. 그 후 1609년 명나라 책봉사가 오자 종사관이 되어 영접하고, 첨지중추부사를 거쳐 형조참의가 된다. 그러나 과거 시험관이 되었을 때 조카와 사위를 합격시켰다는 이유로 다섯 번째 탄핵되어 전라도 함열로 유배를 가게 된다. 그 뒤 태인에 은거하였다가 1613년 계축옥사 때 친분이 있던 서얼인 서양갑, 심우영 등이 처형당하자 신변 안전을 위하여 정인홍, 이이첨 등의 대북파에 가입한다. 그후 이이첨의 추천으로 형조참의가 되고 1616년에 외교문서를 담당하는 승문원의 책임자로 천추사가 되어 두 번이나 중국을 다녀온다. 그 후 광해군의 총애를 받아 형조판서를 거쳐 좌참찬이 되어 인목대비 폐모론을 주장하여 성사시킨다.
· 비운의 혁명가
그러나 허균은 서얼 차별과 신분제도를 철폐하고 붕당을 혁파해야 한다는 이상을 가지고 혁명을 꿈꾸고 있었다. 그는 먼저 한성을 장악하기 위해 '북방의 오랑캐가 쳐들어 왔고, 남쪽에서 왜구가 쳐들어와 섬을 점령하고 대군을 상륙하려 한다.'라는 헛소문을 퍼뜨리고, 이 내용의 방을 남대문에 붙인다. 그러자 도성에는 황급히 피난을 가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 혼란한 틈을 노려 한성을 점령할 계획을 세운 것이다, 그러나 그의 부하 현응민이 불심검문에 걸려 거사 계획을 폭로한 것이다. 그 결과 이이첨은 군사를 끌고 허균의 집에 쳐들어와 그와 반란 핵심인물들을 모두 체포한다. 결국 허균은 20년 동안 준비하여 온 혁명이 수포로 돌아가고, 50세의 나이로 능지처참 당하여 생을 마감한다.
· 홍길동전
허균은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로 알려진 <홍길동전>의 작가로 유명하다. 당시에는 누구의 작품인지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식의 <택당지>에 허균이 <홍길동전>을 지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 소설은 신분제도와 서얼 차별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으며, 허균의 개혁적 사상을 고스란히 녹아 있다. 소설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배경은 조선 시대 세종 때로 홍판서의 서얼인 주인공 홍길동은 어려서부터 기상이 높고 무술이 뛰어났지만 신분이 미천하여 한을 가진다. 가족들은 길동의 비범한 재주가 장래에 화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 자객을 시켜 죽이려고 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홍길동은 가출하여 도적 두목이 되고 활빈당을 조직하여 의적 활동을 한다. 홍길동의 소문이 전국으로 퍼져나가 홍길동이라는 이름을 가진 도적이 수백 명에 이르게 된다. 조정에서는 홍길동을 잡으려고 하였으나 체포하지 못하자, 아버지 홍판서를 통해 홍길동을 병조판서로 제수하여 회유하려고 한다. 길동은 병조판서로 지내다가 남경으로 떠나기로 결심한다. 도중에 율도국을 발견하고 요괴를 퇴치한 후 율도국의 왕이 된다. 이후 아버지 홍판서의 사망 소식을 듣고 귀국하여 3년상을 마치고 다시 율도국에 돌아가 왕으로 살게 된다. <홍길동전>은 도교적인 요소를 가미하여 신분제도 철폐를 꿈꾸는 사회소설인 동시에 도적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웅소설이다. 소설은 중국의 <삼국지연의>, <수호전>, <서유기>의 영향을 받았다. 특히 임꺽정의 난, 이몽학의 난 등의 도적 이야기와 율도국 같은 이상향을 꿈꾸는 선비의 정신 등이 소설 속에 녹아 있다. 또한 허균은 문집 <성소부부고>와 소설 <홍길동전>, <엄처사전>, <손곡산인전>, <남궁선생전>, <장생전> 등을 남겼으며, 그의 사상과 문학은 후대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허준과 동의보감
· 생애와 업적
허준(許浚 1539 ~ 1615)은 조선 중기의 의관이자 의학자로, 경기도 장단군 대강면 우근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경상도 우수사 허곤의 손자이며 용천 부사 허윤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양반 가문 출신이었지만 첩실이었기 때문에 허준의 신분은 중인이다.
· 의관으로서의 활동
허준은 29세에 의과에 급제하여 의관으로 내의원에 근무한다. 1571년 내의원이 된 후 왕세자의 천연두를 치료하여 정 3품의 품계를 받는다. 1581년 고양생의 <찬도맥결>을 교정하여 <찬도방론맥결집성> 4권을 편성하여 맥법 진단의 원리를 밝힌다. 임진왜란 때 선조의 피난길에 의주까지 생사를 같이하여 호종공신이 된다. 1596년 왕세자의 난치병을 고친 공로로 중인 신분에서 벗어나 양반 중 하나인 동반에 오른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로는 <동의보감>, <언해태산집요>, <언해구급방>, <언해두창집요> 등의 의서가 있다. 허준은 1615년 7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며, 사후 조정에서는 그의 공을 인정하여 정1품 보국숭록대부를 추증하였다.
· 동의보감
허준은 선조의 명을 받아 유의 정작, 태의 양예수, 김응탁, 이명원, 정예남 등과 함께 내의원에 편집국을 설치하고 조선의 대표적인 의학서인 <동의보감>을 1596년에 편집하기 시작한다.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일시 중단하였다가 다시 시작하여 내장방서 500여 권을 고증하여, 1610년에 25권 25책으로 완성하고 1613년에 출간한다. <동의보감>은 당시 의학 지식을 총망라한 임상 의학 백과전서로 내경, 외형, 잡병, 탕액, 침구의 5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질병에 따라 항, 목을 정하여 해당되는 병론과 약방을 자세히 열거하여 각 병증에 대한 처방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하였다. 따라서 의사가 환자를 대할 때 많은 의서를 참고하지 않아도 이 책 한 권으로 손쉽게 고금의 의서를 열람하는 효과를 얻도록 하였다. 당시에는 세종 때 <향약집성방>, <의방유취>, 선조 때 <의림촬요>, 복희의 <천원옥색>, 신농의 <본초>, <소문> <영추경> 등 83종의 고전 의서들과 <상한경>, <맥경>, <단계심법> 등 한나라, 당나라 이후 편집된 70여 권의 의방책이 사용되고 있었다. <동의보감>은 오늘날까지 중국, 일본, 한국에서 사용되는 귀중한 동양 최고의 임상의학서로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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