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제5대 국왕 문종(1414 ~ 1452)의 이름은 향이고 자는 휘지로 세종의 맏아들이며 어머니는 소헌왕후 심씨이다. 문종실록은 총 13권으로 구성되며 그의 재위기간 1450년 3월부터 1452년 5월까지 2년 3개월 동안 일어난 역사적인 사실을 편년체로 적은 역사서이다. 실록의 편찬은 김종서, 황보 인, 정인지가 1454년 세종실록이 완성되자 바로 편찬을 시작하여 수양대군이 즉위하자 정인지 혼자 감수하여 1455년 11월에 완성한다.
문종의 29년 세자와 8년의 섭정
· 의정부서사제 실시
세종의 재위는 31년 6개월의 오랜 기간으로 세자 향(문종)은 세종 3년 1421년에 그의 나이 8세에 왕세자로 책봉되어 29년을 지나게 된다. 이 기간 중 마지막 8년 동안은 세자 향이 세종을 대신하여 섭정을 한다. 세종은 즉위 초부터 각종 질환으로 고생을 하여 1436년 세종 18년 향의 나이 23세 때 병상에 눕게 된다. 이에 세종은 왕세자에서 서무결재권을 주어 '왕세자의 섭정'을 원하여 실질적으로 상왕으로 물러앉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왕세자의 섭정은 신하들의 반대로 실현되지 못한다. 그러자 세종은 할 수 없이 업무량을 줄이려고 '육조직계제'에서 부분적인 내각제인 '의정부서사제'로 전환한다. 이는 정도전이 주장하였던 재상중심의 왕도정치의 일부분으로 육조에서 올라오는 모든 일을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이 중심인 의정부에서 심의한 다음 결론을 내려 왕의 결재를 받는 제도이다.
· 세자 향의 섭정
세종은 세자가 섭정하기 위해 필요한 첨사원을 설치한다. 이는 고려 충렬왕이후 폐지된 제도인 첨사부 제도를 본뜬 것으로 세자가 섭정을 할 경우 승정원과 편전을 대신 역할을 한다. 세자의 섭정은 국가 중대사를 제외하고 모든 서무는 세자의 결재를 받게 된다. 드디어 세자 향은 나이 29세인 1442년부터 1450년까지 8년간의 섭정을 통해 정치실무를 익히며 여러 가지 치적을 남긴다. 세종의 후반기 8년 동안의 정치 치적은 세자 향의 치적이라고 할 수도 있다.
문종의 치세와 왕권의 약화
· 문종의 등극
1450년 2월 세종이 죽자 세자 향은 8년간의 섭정을 끝내고 마침내 왕으로 등극하여 문종이 된다. 그는 원래 병약하여 세자 시절 과도한 업무로 건강이 심하게 악화되어 있었다. 즉위 후 병세가 더 심해져 재위기간 대부분 병상에서 지내게 된다. 그는 어릴 때부터 학문을 좋아하여 측우기 제작에 참여할 정도로 천문, 산술, 서예에 능하고 성격이 유순하고 침착하였다. 그러나 너무 착하고 어질어서 남의 비난을 받는 일이 없으나 문약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 왕권의 약화
세종은 집권하였던 시기 절반을 병석에 누워 지냈으며 그중 후반기 8년 동안은 세자 향이 섭정을 하였기 때문에 수양대군, 안평대군 등 다른 왕자들의 세력이 점차 비대하여진다. 왕자들의 세력이 강해지자 언관들은 종친들에 대하여 탄핵을 자주 하게 된다. 그 결과 문종 집권기 내내 종친들과 언관들 사이에 긴장된 분위기가 조성된다.
· 문종의 업적
세종 말기에는 세종과 왕실에 의해 내불당이 조성되고 각종 불교행사가 치루어 지는 등 불교융성정책이 활발해진다. 그러나 유생들은 이를 막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문종이 즉위하자 유학중심의 언관들이 왕실의 불교적 경향을 불식하려고 하자 문종은 대부분 받아들인다. 이렇듯 문종은 언관의 언론을 더욱 활성화하여 돌아가면서 왕을 만나는 윤대를 허락하여 낮은 신하들의 말도 경청한다. 병법의 정비와 군정에 관한 <동국병감>, 이전 왕조의 역사를 정리한 <고려사>, <고려사절요>, 임금과 대신, 종친이 알아야 할 내용에 대해 상세한 주석을 달은 책인 <대학연의주석> 등을 편찬하여 역사와 병법을 정리하고 제도를 확립시킨다. 그리고 문종은 총 12사로 분리된 군제를 개편하여 5사로 집약한다. 문종은 이와같이 유연함과 강함을 곁들인 정책을 실시하였다.
문종의 가족들
· 가족들
문종은 어린 나이 8세에 세자로 책봉되었기 때문에 혼인을 일찍 한다. 문종은 3명의 부인과 1남 2녀의 자식을 둔다. 문종은 세자 시절 세 명의 세자빈을 가지는데 첫 번째 휘빈 김씨는 세자의 사랑을 얻기 위해 주술을 사용하고, 두 번째 순빈 봉씨는 폭력적인 성품과 동성애의 기질을 보여, 둘 다 세자빈에서 폐위된다. 순빈 봉씨가 폐위되자 권전의 딸인 현덕왕후 권씨가 세 번째 세자빈이 된다. 자식은 1남 2녀로 현덕왕후 권씨에게서 1남 1녀(홍위(단종), 경혜공주), 후궁 귀인 홍씨, 후궁 사칙 양씨에게서 1녀(경숙옹주)를 낳는다.
· 사망
문종은 8년간의 세자 섭정과 등극 후 과로한 업무로 인해 건강이 더욱 악화되어 재위 2년 3개월 만에 1452년 5월 3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의 능은 '현릉'으로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소재하며, 이곳에 현덕왕후도 함께 묻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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