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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조선왕조실록

제4대 세종실록 2 - 세종의 가족들 소헌왕후 심씨, 안평대군, 금성대군

by 이야기마을촌장 2024. 7. 26.

조선의 제4대 국왕 세종(1397 ~ 1450) 충녕대군의 이름은 도(祹)이고 자는 원정(元正)으로 태종 이방원의 셋째 아들이며 어머니는 원경왕후 민씨이다. 세종실록은 총 163권 154책으로 구성되며 그의 재위기간 1418년 8월부터 1450년 2월까지 31년 6개월 동안 일어난 역사적인 사실을 편년체로 적은 역사서로 원명은 '세종장헌대왕실록'이다. 실록의 편찬은 세종이 죽자 김종서, 황보 인, 정인지가 1452년 시작하여 편찬도중 김종서, 황보 인이 계유정난으로 피살되자 정인지 혼자 감수하여 완성한다. 여기에서는 지난 시간에 이어서 지면 부족으로 못하였던 세종의 가족들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세종1

 

세종의 가족들

세종은 평생 정비 소헌왕후를 비롯하여 6명의 부인과 18남 4녀의 자녀를 둔다. 정비 소헌왕후 심씨가 8남 2녀, 영빈 강씨 1남(화의군), 신빈 김씨 6남(계양, 의창, 밀성, 익현, 영해, 담양군), 혜빈 양씨 3남(한남, 수춘, 영풍군), 숙원 이씨 1녀(정안옹주), 상침 송씨 1녀(정현옹주)를 낳았다. 세종은 1450년 54세의 나이로 사망하였으며 그의 능은 영릉으로 1446년에 사망한 소헌왕후와 함께 합장된 조선 최초의 합장릉으로 경기도 여주군 능서면에 있다. 

 

· 소헌왕후 심씨(1395 ~ 1446)

세종의 정비로 본관은 청송으로 문하시중 심덕부의 손녀이고 영의정 심온의 딸이다. 1408년 충녕군과 혼례를 하여 빈이 되고 경숙옹주에 봉해진다. 충녕대군이 왕세자가 되자 경빈에 봉해지며 세종이 즉위하자 왕후로 책봉된다. 심씨의 아버지가 명나라 사은사로 갔다가 귀환하던 중 아우 심정이 군국대사를 상왕인 태종이 처리한다고 불평하다가 옥사가 일어나 아버지 심온은 수괴로 몰려 수원으로 쫓겨갔다가 사사된다. 이 사건으로 왕비 심씨를 폐하자는 논의가 있었으나 내조의 공이 인정되어 폐비는 면하게 된다. 소헌왕후는 슬하에 8남 2녀의 자식을 둔다. 아들은 향(문종), 수양(세조), 안평, 임영, 광평, 금성, 평원, 영응대군이고, 딸은 정소, 정의공주가 있다. 그녀는 54세의 나이로 사망을 하여 그녀의 능은 세종이 승하한 뒤 세종과 합장하여 모신 영릉이다.

 

· 안평대군(1418 ~ 1453)

세종과 소현왕후의 셋째 아들로 이름은 용, 호는 비해다, 낭간거사, 매죽헌이다. 1428년 안평대군에 봉해졌으며 이듬해 좌부대언 정연의 딸과 결혼을 한다. 그는 함경도에 6진이 설치되자 야인들을 토벌하였으며, 권신인 김종서, 황보인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수양대군과 맞서 인사행정인 황표정사를 장악하여 조정의 배후 실력자로 부상한다. 1452년 단종이 즉위한 후 수양대군이 황포정사를 폐지하자 이에 반발하여 회복에 주력한다. 그러나 1453년 계유정난에 연루되어 김종서 황보인이 살해되자 강화도로 귀양 갔다가 교동으로 옮겨 36세의 나이로 사사당한다. 안평대군은 시, 서, 화에 모두 뛰어나 '능해삼절'이라고 불렸으며, 현존하는 그의 작품으로 안견의 <몽유도원도 발문>, <세종대왕 영릉신도비>의 비문이 있다. 

 

· 임영대군(1419 ~ 1469)

세종과 소현왕후의 넷째 아들로 이름은 구, 자는 헌지이다. 1428년 대광보국 임영대군으로 봉해졌으며 세종의 총애를 받아 1442년 원윤이 되었다. 그는 세종의 명을 받아 총통 제작을 감독하였으며, 문종의 명으로 화차를 제작하였다. 세조가 정권을 잡자 그를 보좌하여 신임을 받는다.  

 

· 광평대군(1425 ~ 1444)

세종과 소현왕후의 다섯째 아들로 이름은 여, 자는 환지이다. 1432년 광평대군에 봉해지고 1436년 신자수의 딸과 결혼한다. 그는 <효경>, <소학> 등에 능통하였으며 시, 음률, 산수에 밝았다. 1437년 태조의 일곱째 아들인 방번의 봉사손으로 입양된다. 성품이 너그럽고 총명하였으나 20세의 나이로 요절한다. 

 

· 금성대군(1426 ~ 1457)

세종과 소현왕후의 여섯째 아들로 이름은 유이다. 1433년 금성대군에 봉해지고 1437년 참찬 최사강의 딸과 혼인을 한다. 1437년 태조의 여덟째 아들인 방석의 봉사손으로 입양된다. 1452년 단종이 즉위하자 단종을 모실 것을 약속하였으나 수양대군이 정권을 탈취하자 이에 반발하여 삭녕으로 유배를 당한다. 그 후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봉 되어 강원도 영월로 유배를 당하자 금성대군은 유배지인 순응에서 부사 이보흠과 함께 단종복위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관노의 고발로 실패하고 32세의 나이로 처형을 당한다.

 

· 평원대군(1427 ~ 1445)

세종과 소현왕후의 일곱째 아들로 이름은 임, 자는 진지이다. 1434년 8세 나이로 평원대군에 봉해지고 1437년 호군 홍이용의 딸과 결혼을 한다. 그 후 학문에 열중하다가 천연두로 사망하게 된다. 그 결과 세종의 마음에 고통을 주어 병을 악화시키게 한다. 아들의 죽음으로 세종이 불교를 숭상하기도 하여 조선의 억불정책이 한동안 누그러지기도 한다. 

 

· 영응대군(1427 ~ 1445)

세종과 소현왕후의 여덟째 아들로 이름은 염이다. 세종의 총애가 지극하여 1450년 세종은 영응대군의 저택인 동별궁에서 사망한다. 그는 글씨와 그림에 능하고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다.

 

※ 지면관계상 이어지는 내용은 다음 시간에 계속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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