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문황후 두씨는 중국 한고조 말 여태후가 집권하고 있을 때 조나라 청하의 두씨 집안에 태어나 조실부모하고 가난하여 형제들과 헤어져 궁녀로 들어가 살다가 대나라로 보내진다. 뛰어난 미모로 대나라 왕 유항(문제)의 눈에 띄어 그의 후궁이 된다. 나중에 그녀는 문제의 황후가 되고, 그녀의 아들 유계가 한 경제가 되고, 손자 유철이 한 무제가 된다. 이렇게 두씨는 가난한 집안의 딸로 태어나 인생 역전에 성공하여 황제의 부인, 어머니, 할머니가 되어 권력의 중심에 서게 된다. 여기에서는 효문황후 두씨(두의방, 두태후)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효문황후 두씨
· 어린 시절의 두씨
효문황후 두(竇)씨(두의방, 두태후 ? ~ BC 135)는 전한 문제의 황후이자 경제의 어머니이며 한 무제의 할머니이다. 그녀는 조나라 청하(지금의 하북성) 사람으로 조실부모하여 가난 때문에 오빠 두건(장군)과 남동생 두광국(소군)과 어릴 때 헤어진다. 미모가 뛰어난 두씨는 한나라의 궁녀로 입궁하여 여태후를 섬기게 된다. 후에 한고조가 죽자 여태후는 궁녀들을 제후왕들에게 하사한다. 이때 두씨는 고향에서 가까운 조나라를 생각하여 환관에게 "저를 반드시 조나라 왕에게 보내주십시오."라고 부탁을 한다. 그러나 환관은 실수로 대나라(代)로 가는 궁녀의 명단에 올린다. 그것이 나중에는 새옹지마가 된다. 만약 소원대로 조나라로 갔다면, 자기 어머니 척부인이 사람돼지가 되고 자기는 여태후에게 독살되는 은왕 유여의나, 여태후가 굶겨 죽인 유왕 유우의 후궁이 되었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대나라로 간 두씨는 대나라왕 유항(劉恒)의 눈에 들어 그의 후궁이 된다. 왕의 총애를 독차지하게 된 두씨는 딸 표(관도공주)와 두 아들 계(경제)와 무(양왕)를 낳는다.
· 황후가 된 두씨
BC 180년 여태후가 죽자, 대왕 유항이 황제의 자리를 계승하여 한 문제(文帝)가 된다. 이즈음 대나라의 왕후는 이미 중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왕후가 낳은 네 명의 아이들도 모두 병으로 죽었다. 문제가 즉위한 지 몇 달이 지나자 문제의 아들들 가운데 두씨가 낳은 계가 태자가 되고, 모후 두씨는 황후가 된다. 두황후는 사람을 보내 가난으로 헤어진 형제인 오빠 장군을 찾아내지만, 동생 소군은 찾을 수가 없다. 두씨가 집을 떠나 입궁하자 동생 소군은 10여 차례 팔려 다니다가 선양에서 숯을 굽는 일을 한다. 그곳에서 산사태로 죽을 고비를 넘긴 소군은 장안으로 들어와 소문을 듣고 찾아온다. 소군은 어렸을 때 누나와 함께 뽕나무에서 놀다가 떨어져 다친 흉터와 헤어지기 전 누나가 목욕시킨 후 밥을 준 사실을 기억해 내어 서로 상봉하게 된다. 이후 두건과 두광국은 누이 덕에 부귀영화를 누리게 된다. 이들은 성품이 공손하고 겸손하여 두광국은 장무후에, 두건의 아들 두팽조는 남피후에 봉해진다. 조카 두영(竇嬰)은 오초칠국의 난에 대장군으로 공을 세워 위기후로 봉해졌으나 무제 때 모함을 당해 처형되고 만다.
태황태후 두씨
· 말년의 두씨의 황로사상
BC 157년 문제가 죽자, 태자 유계가 황위에 올라 경제(景帝)가 되고 두황후는 황태후가 되었다. 경제는 어머니 두태후에 대한 효심이 깊었으나, 두태후는 맏아들 경제보다 막내인 양왕(梁王) 무를 더 아끼고 사랑하여 양왕으로 하여금 경제의 후사를 잇게 하려고 하였으나, 조카인 두영의 반대로 계획은 무산된다. 그 후 BC 141년 경제가 죽고, 16세 태자 철(무제)이 황제가 되자 두태후는 태황태후(太皇太后)가 된다. 한편 여태후나 문제는 무위(無爲)를 주장하는 도가사상을 중시하였으며, 경제는 법률 만능인 법가사상을 주장하는 조착(晁錯)을 등용하였다. 그러나 무제는 즉위하자마자 곧바로 정치 쇄신을 도모하여 유학자들을 본격적으로 등용한다. 때문에 유학으로 정치 쇄신을 하려는 황제 무제와 "황제(黃帝)와 노자(老子)의 술(術)"인 황로(黃老) 사상의 신봉자였던 할머니 두태후는 정치적으로 충돌하게 된다. 어린 황제가 당대의 저명한 유학자들을 초빙하자, 두태후는 크게 노하여 황제가 등용한 유학자들을 모두 죽인다. 그러나 같은 해 두태후가 시력을 잃고 노환으로 세상을 떠난다. 그녀의 시호는 효문황후(孝文皇后)이다. 두씨가 죽은 후에야 동중서 등을 위시한 유학이 관학으로 뿌리내릴 수 있게 된다. 드디어 무제는 친정을 선포하고 한나라의 최전성기를 열게 된다.
맺음말
우리는 여기에서 효문황후 두씨(두의방, 두태후)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그녀의 삶을 살펴보면 "인생만사 새옹지마(人生萬事 塞翁之馬)"라는 말이 꼭 들어맞는다. 여태후가 궁인을 각 태후들에게 5명씩 보낼 때 그녀가 원하던 조나라로 가게 되었다면 그녀는 필시 유여의나 유여의 후궁이 되어 여태후의 미움을 받아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였을 것이다. 당시 그녀는 환관의 실수로 대나라로 가게 되자 눈물을 흘리며 슬퍼한다. 그러나 대나라에서 후에 한 문제로 즉위하게 되는 유항을 만나게 되었으며, 또한 그녀는 경제의 어머니, 무제의 할머니가 되어 죽을 때까지 권력을 누리게 된다. 이것을 보면 지금 일이 안 좋게 풀린다고 슬퍼하거나 절망에 빠질 필요가 없다. 나중에 그것이 더 좋게 되어 어떻게 바뀔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후세에 이러한 두씨의 인생역전의 이야기를 다룬 중국 드라마가 많이 만들어졌으며 대표적인 것으로 주연 임심여, 아역 이묘가 출연한 미인심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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