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불위(? ~ BC 235)는 위나라 북양의 최고의 상인으로 조나라로 볼모로 잡혀간 진나라 왕자인 자초에게 투자한다. 그 투자가 성공하여 그는 진나라의 승상이 되어 섭정을 하면서 많은 권력을 잡게 된다. 그러나 그는 권력 욕심에 빠져 적당한 시기에 물려나지 않아 결국 진시황에 의해 죽게 된다. 오늘 여기에서는 최고의 투자자 '여불위'와 자초, 진시황 사이에 그들의 관계와 권력을 잡게 되는 과정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여불위의 투자
· 여불위의 투자결정
진소왕 때 자초의 아버지인 안국군은 자식이 20여 명이 있었다. 그중 둘째가 자초이며 진나라의 태자이다. 자초는 이름이 이인이며 조나라에 볼모로 잡혀가 있게 된다. 이때 여불위는 상인으로 여러 나라를 다니며 부를 축척한 재력가이다. 한편 화양부인은 자식이 없으나 안국군의 애첩으로 사랑을 받고 있으며 후계를 결정하는 데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따라서 여불위는 화양부인의 관심을 끌면 자초가 왕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하여 자기 전재산 일천 금을 자초에게 투자하기로 결정한다. 그러면서 자초에게 그중 반인 오백 금을 주어 인재를 많이 사귀어라고 말한다.
· 여불위의 계략
여불위는 화양부인의 언니를 통해 화양부인을 만나서 "자초는 아버지 안국군과 화양부인을 그리워하며 사모하여 매일 밤마다 눈물을 흘린다."라고 말하며 자초를 추천한다. 그리고 자초를 장자로 삼아 후일을 도모하면 나중 늙어도 자초가 왕이 되므로 진나라의 권력을 유지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 결과 여불위는 진소왕의 신표를 받아 "자초가 조나라를 탈출하여 진나라로 돌아오면 태자가 될 수가 있다."라는 약속을 받아오게 된다. 한편 여불위에게는 아름다운 주희(조희)라는 첩이 있었다. 하루는 자초가 주희에게 반하자 여불위는 자기 아들을 임신한 주희(조희)를 자초에게 바친다. 그 후 그녀는 아들 정(政 : 진시황, 영정, 여정)을 낳고 정식으로 자초의 부인이 된다. 그리고 그녀는 나중에 황후가 될 수 있다는 약속을 받아낸다. 이 '정'이 자라서 진시황이 된다. 이러한 이야기는 정사가 아닌 야사에 기록된 이야기이다.
· 자초의 장양왕 등극
한편 진소왕 50년 진나라가 조나라 도읍 한단을 공격하자 자초는 혼자서 조나라를 탈출하여 진나라로 돌아간다. 그리고 여불위의 지시에 따라 자초는 초나라 사람인 화양부인을 만날 때 초나라 복장을 하고 만난다. 이에 화양부인은 감복을 하고 그를 양아들로 삼고 이름을 '자초'라고 부르게 된다. 그 후 1년 만에 진소왕이 죽고 아버지인 안국군이 효문왕으로 즉위하게 된다. 효문왕은 즉위 2년 만에 죽게 되자 자초는 장양왕으로 등극하게 된다.
여불위의 섭정
그 후 자초(장양왕)는 조나라에서 부인 조희와 아들 영정(9살)을 데리고 온다. 그리고 화양부인을 화양 태후로 친엄마는 하태후로 임명한다. 또 여불위는 승상으로 등용하고 낙양에 10만 호의 식읍을 준다. 4년에 지나 장양왕(자초)이 죽자 영정(여정, 진시황)은 13살에 왕으로 즉위하게 된다. 이때 여불위는 상국으로 '중부'라고 불리어지며 어린 왕을 대신하여 섭정을 하며 권력을 잡게 된다. 여불위는 나라를 발전시키기 위해 인재를 모은다. 한때 여불위의 집에 3천 명이나 되는 식객이 있었다. 그는 식객들과 같이 역사책인 <여씨춘추>를 쓴다. 그리고 "이 책의 글에서 한자라도 더하거나 뺄 수 있는 자가 있으면 천금을 주겠다."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일자천금(一字千金)"이라는 고사성어가 유래하게 된다.
· 가짜 내시 노애
한편 과거 여불위의 첩이었으며 진왕 정의 생모인 조태후(조희)는 음란하고 남자 편력이 있어 과거 남편이었던 여불위를 찾는다. 이에 어쩔 수 없이 여불위는 계속하여 밀통을 하지는 못하고 여자를 잘 후리고 바람쟁이 카사노바인 '노애'를 가짜 내시로 변장시켜 소개시켜 준다. 조태후의 정인이 된 노애는 아들을 2명이나 놓게 되자 식객을 모으고 여불위를 흉내 내며 권력을 농단하기 시작한다. 심지어는 술자리에서 "내가 진시황의 양아버지이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러한 사실이 진시황에게 알려지게 되자, 두려움을 느낀 노애는 반란을 일으킨다. 결국 반란은 진압되고 노애와 두 아들은 처형을 당하게 되고 조태후는 응주로 귀양을 가게 된다.
여불위의 죽음
한편으로 영정(진시황)은 노애의 반란 반란을 진압하여 엄하게 처벌하는 등 국정을 강력하게 이끈다. 이에 여불위는 두려움을 느끼고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 집으로 간다. 그러나 여불위의 집에는 여전히 벼슬과 권력을 위하여 찾아오는 식객들이 계속 모여든다. 그러자 진시황은 이를 알고 대로하여 여불위에게 독주를 내려 자결하게 만든다. 그리고 진시황은 어머니 조태후를 미워하여 "조태후와 관련된 일을 간하는 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죽이겠다."라고 말하고 실지로 27번이나 전령을 죽인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28번째 간하였던 '모초'는 살게 된다.
맺음말
우리는 여기에서 최고의 투자자 '여불위'와 자초, 진시황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상인으로써 여불위는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혜안과 슬기로운 계책들을 가지고 있어 높이 평가된다. 또 그는 인생 최고의 투자를 하였다. 그러나 인간의 삶으로써 여불위는 적당한 시기에 물러나지 않아 실패를 하고 마지막에는 죽게 된다. 즉 적당한 시기에 물려 날 줄 아는 범려는 미련 없이 물러나 생명을 보전하게 되는데, 권력에 욕심이 많아 물려 날 줄 모르는 여불위는 결국 진시황으로부터 독주를 받아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오늘날 현대에 살아가는 우리도 "功遂身退 千之道(공수신퇴 천지도), 공을 이루면 물러나는 것이 도리이다."라는 <도덕경 7장>에 나오는 글귀를 잘 명심하고 여불위의 경우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세상을 현명하고 슬기롭게 살아나가야 할 것이다.
※ 이 글과 관련된 다음 글입니다. 최초 전국 통일한 진시황(영정, 여정)의 분서갱유, 간축객서, 지록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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