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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사마천 사기

최초 전국 통일한 진시황(영정, 여정)의 분서갱유, 간축객서, 지록위마

by 이야기마을촌장 2023. 12. 11.

전국시대 7개 나라 중 하나인 진나라 31대 왕이며 최초로 전국을 통일한 황제인 진시황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먼저 지난번 여불위 편에서 진시황의 어린 시절과 13세 때 왕으로 등극한 후 여불위의 섭정과 노애의 반란, 여불위의 죽음 등에 대하여 알아보았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진시황의 출생과 전국을 통일하는 과정 그리고 그의 업적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진시황

생애

진 시황제(영정, 여정 BC 259 ~ BC 210)는 성은 영이요 이름은 정이다.  그는 조나라에 볼모로 잡혀간 자초(장양왕)의 아들로 나중에 진나라의 31대 왕이자 최초의 전국을 통일한 제1대 황제인 진시황이 된다. 그는 13세에 왕으로 등극하여 22세에 여불위의 섭정에서 벗어나 직접 친정을 하게 되고 40세에 중국을 통일하여 최초의 황제가 된다. 그리고 50세 전국 순행 중에 병으로 죽게 된다.

 

그의 출생에 대하여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자초가 조나라에 볼모로 있을 때 여불위는 자기 아들을 임신한 첩인 주희(조희)를 자초에게 바친다. 그녀가 아들 정(政 : 진시황, 영정, 여정)을 낳고 정식으로 자초의 부인이 된다. 그리고 그녀는 나중에 황후가 될 수 있다는 약속을 받아낸다. 이 정이 자라서 진시황이 된다. 따라서 진시황은 강성 여씨인 여불위의 아들로 역사서 반고의 <한서>, 배사의 <사기집해>, 사마광의 <자치통감> 등에 모두 '여정'이라고 적고 있으므로, 이것이 사실이라면 진시황은 영정이 아니라 여정이 맞다.

 

 

통일 과정

먼저 아버지 장양왕 때부터 통일을 위한 전쟁이 시작되었다. 장양왕은 BC 250 주나라정벌하였다. BC 230년부터 진시황은 통일을 위한 본격적인 준비를 시작하여 먼저 가장 약한 한나라를 정벌하고,  BC 229에  조나라를 공격하여 조나라에는 이목장군과 간신 곽개가 있었으나 진나라는 곽개를 조종하여 한단을 점령하고 공자 조천을 사로잡아 조나라를 멸망시킨다. BC 227년에는 연나라 사신으로 자객 '형가'가 찾아와 진시황을 암살하려고 하였으나 실패로 끝난다. 이에 진시황은 연나라를 공격하여 연나라 왕 '희'를 사로잡아 연나라를 멸망시킨다(BC 222). 즉 진나라는 BC 225년 위나라, BC 223년 초나라, BC 222년 연나라, BC 221년 마지막 남은 제나라를 멸망시킴으로써 진시황 나이 40세에 중국 전체를 통일하여 최초의 황제가 된다.

 

· 자객 형가

진시황을 시해하려한 자객은 형가, 고점리, 장량이 있었다. 여기에서는 형가에 대하여 알아보자. 연나라 태자 '단'은 어린 시절 진나라에 인질로 잡혀 있었다. 그는 어린 진왕 정(政)과 서로 친구로 지냈다. 시간이 지나 정이 자라 진시황이 되고 조나라를 정복한다. 이 것을 보고 어릴 적부터 진시황의 성품을 잘 알고 있었던 태자 단은 진시황이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는 것을 짐작하고 자객 형가를 보낸다. 한편 형가는 위나라 사람으로 연나라에 들어가 방약무인으로 행동하다가 고점리(악기 축을 잘 연주하는 음악인)를 만나 그의 사람이 된다. 암살 사주를 받은 형가는 독항 지방의 지도, 번오기의 목, 조부인의 칼 이 세 가지를 조건으로 건다. 이때 번오기는 진시황에 의해 피해를 입은 사람으로 스스로 자결을 하여 목을 내어 준다. 그리고 형가는 연나라 땅 마지막 강인 역수에서 역수가를 부르고 진나라로 떠난다. 진시황을 만나 연나라 단이 보냈다고 말하며 그를 시해하려고 하였으나 결국 실패하고 죽고 만다. 

 

· 간축객서

노애의 반란 이후 위나라 출신 여불위가 정치에서 물러나게 된다. 진시황은 기려지신(외국에서 온 떠돌이 신하)인 여불위를 싫어하게 되어 그에게 독주를 내려 죽게 한다. 그리고 진시황은 축객령을 내려 기려지신을 추방한다. 이에 이사가 '간축객서'를 진시황에게 올린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옛날 진(秦)나라 목공은 융에서 유여, 완에서 백리해, 송에서 건숙, 진(晉)나라에서 비표, 공손 지를 받아들여 서융의 패자가 되었으며, 효공은 상앙의 변법 개혁을 받아들여 나라를 부강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혜왕은 장의를 받아들여 6국의 합종을 깨뜨리고 연횡으로 나라를 강성하게 하였으며, 소왕은 범저를 얻어 원교근공책으로 진시황이 황제가 되는 기초를 닦았습니다. 만약 기려지신인 이들을 쓰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강대국은 되지 못하였습니다."이다. 그러자 진시황은 당장 축객령을 취소하고 이사의 관직을 회복시킨다. 

 

 

진시황의 업적

· 인재 등용

진시황은 병법가로 율료, 법률가 전략가로 이사, 장군으로는 몽씨 형제(몽염과 몽의) 그리고 왕전을 기용하였다. 그리고 그는 요가, 돈약으로 하여금 여러 나라를 주유하고 다니며 뇌물로 로비 활동을 하도록 하고 또 자객을 전국으로 보내어 활동하게 하였다.

 

· 화폐, 문자와 도량형 통일

화폐는 구리로 만든 진나라 반량전으로 통일, 문자와 도량형을 통일하여 정확한 의사 전달과 상인들의 유통을 원활하게 하여 상업을 발달시킨다.

 

· 군현제, 관료제 실시

전국을 36개 군으로 나누어 군에 수, 위, 감을 두어 지방을 잘 다스릴 수 있게 행정조직체계를 정비하고, 관료제를 실시하여  중앙집권체제로 왕권을 강화한다.  

 

· 분서갱유

분서 : 신하 주청신이 '군현제'에 대해 좋은 점을 찬양하자 이에 반해 순우월은 '봉건제'로 돌아가자고 주장한다. 이에 이사가 나서서 "나라의 사상을 하나로 통일시키려면 중요한 역사, 농업 등에 관한 서책 이외의 모든 서적을 불태워버려야 한다."라고 왕에게 간언을 한다. 그 후 모든 서적을 불태워 버린다. 나중에 이사는 진시황이 죽은 후 간신 조고에 의해 모함을 받아 죽게 된다.

 

갱유 : 진시황은 '불로장생의 꿈'을 꾸며 도교에 빠져 도교의 방사인 '서불'에게 많은 재물과 동남동녀 3천 명을 주어 불로초를 구하러 동쪽나라로 파견한다. 그러나 그는 제주도를 거쳐 일본에 정착하게 된다. 이를 의심하는 진시황에게 방사(불로장생을 추구하는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인 후생과 노생은 엉터리 거짓을 고하고 난 후 생명에 위험을 느껴 도망친다. 그러자 화가 난 진시황은 460여 명의 방사(유생)들을 땅에 파묻어 죽여 버린다. 그리고 진시황은 불로장생을 염원하여 많은 불로초나 약을 먹게 된다. 그것이 대부분 수은으로 만들어진 것이어서 결국 50세 나이로 수명을 단축하게 된다.

 

· 대규모 토목 공사

진시황은 몽염장군을 시켜 흉노족을 몰아내고 인부 150만으로 만리장성을 건설한다. 이때 진시황의 장자 부소가 대규모 토목공사의 부당함에 대해 간언을 하자 그를 만리장성을 건설하고 있는 몽염에게 보내고 나중에 사약을 내려 죽게 한다. 그리고 폭 50m에 달하는 황제 전용도로 건설, 아방궁 건설, 함양 근처 여산을 진시황의 능묘로 건설하는 등 이러한 대규모 토목공사는 결국 나라의 재정을 망치게 된다. 

 

 

진시황의 죽음

진시황은 전국 순행을 다섯 번에 걸쳐하게 된다. 많은 협객들과 자객들이 폭군 진시황을 시해하려고 한다. 목숨에 위협을 느낀 진시황은 군사들이 호위하는 5개의 수레 중에 하나의 수레로 전국 순행을 한다. 하루는 장량이라는 사람이 장사를 구해 철퇴로 마차를 습격하였으나 같은 마차가 5개나 되어 결국 실패를 한다. 그 후 장량은 도망가서 유방의 책사가 된다. 그러나 진시황은 전국 순행 중에 50세 나이로 수레에서 병으로 죽게 된다. 그러자 승상 이사, 환관 조고와 왕자 호해는 시황제의 죽음을 숨긴다. 시신 썩는 냄새가 들키지 않도록 시황제 수레 옆에 절인 생선을 같이 운반한다. 조고는 시황제의 유서를 조작하여 황태자 부소와 대장군 몽염에게 자결을 명령한다. 그러자 부소는 자결하였으나 몽염은 의심을 품어 자결하지 않고 감옥에 갇히게 된다. 얼마 뒤 시황제의 26번째 아들 어린 '호해'가 두 번째 황제가 된다.

 

조고의 간언으로 연좌제가 실시되어 왕의 형제와 공주들은 모두 죽게 되고 몽의도 자리에서 물러난다. 결국 간신 '조고'와 기회주의자 '이사'만 이세 황제 곁에 남게 된다. 이사가 조고를 탄핵하였다가 오히려 모함을 받아 감옥에 갇혀 죽게 된다. 나중에 조고는 몽염과 몽의를 반역혐의로 몰아 삼족을 멸한다.

 

· 지록위마(指鹿爲馬)

결국 어린 이세 황제 호해의 곁에는 환관 조고만 남게 된다. 그는 승상이 되어 나라의 모든 권력을 쥐고 흔든다. 하루는 조고가 호해에게 사슴을 바치며 “좋은 말 한 마리를 바칩니다”라고 말한다. 그러자 황제 호해는 “어찌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하오”라고 하며 신하들에게 의견을 묻는다. 이때 조고는 사슴이라고 말한 사람들을 기억해 두었다가 나중에 죄를 씌워 모두 죽인다. 여기에서 "지록위마(指鹿爲馬)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한다. 즉 윗 사람을 농락하여 권력을 휘두른다."라는 뜻의 사자성어가 유래하였다.

 

결국 진나라는 민란이 일어나는 등 멸망의 길로 접어든다. 조고는 이세 황제를 정신병자로 몰아 망이궁에서 죽이고 삼세 황제 자영을 등극시킨다. 결국 삼세황제 자영은 유방에게 항복하나 항우가 목을 베어 죽임으로써 진나라는 멸망하게 된다.

 

 

맺음말

우리는 여기에서 전국시대 7개 나라 중 하나인 진나라 31대 왕이며 최초로 전국을 통일한 황제인 진시황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그는 위대한 최초의 황제이지만 그의 주변에 많은 충신들과 장군의 도움으로 나라를 통일하였지만 통일을 완성한 후에 너무 의심이 많아지고 교만하여진다. 그 일례를 살펴보면 환관인 간신 조고의 말을 듣고 진심으로 충언하는 몽염을 멀리 만리장성 건설에 투입한다. 심지어는 무리한 토목공사의 부당성을 간언 하는 장자 부소를 의심하여 멀리 만리장성으로 보내고 사약을 내려 자결하게 한다. 이러한 그를 죽이려고 세 차례나 자객들이 들이닥친다. 그래서 항상 목숨의 위협을 느껴 불안하게 살아간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전국 순행 중에 마차에서 병으로 고독하게 죽어간다. 그러나 장례조차 치르지 못하고 시신이 썩어 들어가도록 숨겨지고 방치된다. 어떻게 보면 한 인간으로서의 진시황은 불행한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귀감으로 삼아 다시 한번 더 자기 인생을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 다음은 이 글과 관련된 글입니다. 최고의 투자가 '여불위'와 자초(장양왕), 화양부인, 진시황, 노애

 

최고의 투자가 '여불위'와 자초(장양왕), 화양부인, 진시황, 노애

여불위(? ~ BC 235)는 위나라 북양의 최고의 상인으로 조나라로 볼모로 잡혀간 진나라 왕자인 자초에게 투자한다. 그 투자가 성공하여 그는 진나라의 승상이 되어 섭정을 하면서 많은 권력을 잡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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