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고조 유방은 성품이 인자하고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사귄다. 따라서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른다. 이에 반해 항우는 성격이 포악하고 자기 본위적이며 의심이 많다. 결국 천하를 두고 두 사람이 자웅을 다툴 때에 항우는 8년 동안 70여 차례 전쟁에서 이겼고 딱 한번 졌지만 그 한 번을 견디지 못하고 자결을 한다. 결국 유방이 천하를 차지하게 된다.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건국하는 데에 크게 기여한 3명의 인물을 건한삼걸(소하, 장량, 한신)이라 한다. 초한전쟁 부분은 지면관계상 문제로 다음에 알아보고 여기에서는 천하 통일한 한고조 유방의 기의와 천하통일한 후 그의 행적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유방의 생애
한고조 유방(BC 247 ~ BC195)은 현재 강소성 패현사람으로 전한의 초대 황제이며 자는 '계'이다. 그는 진나라 수도 함양이 함락될 때 관중 땅을 지배하여 한때 함양왕으로 불리기도 하였는데 이때 항우가 함문관으로 진격해 옴에 겁을 먹고 항복하였다. BC 206년에 한왕으로 봉해졌으며 BC 202년 해하전투에서 항우를 물리치고 전한을 세우게 된다. 그리고 한 고조로 불리워진다. 한고조 유방은 노자의 도교사상을 받아들인다. 특히 도교 사상가 '육가'의 영향을 받아 '무위'를 숭상하고 황제와 노자를 중시하는 '황로사상'으로 나라를 다스린다.
유방의 성품
천하를 두고 자웅을 다투었던 항우는 자의식이 지나치게 강하고 집착성을 띠고 있으며, 인자하지 않고 폭력적이었으며 자기를 높이려는 자만심이 강하였다. 반면에 한고조 유방은 욕설을 많이 하고 무례, 허풍이 심하고 일하지 않고 놀기를 좋아하며, 공부하는 유생을 싫어하고 술과 여자를 좋아하였다. 그러나 백성을 편하게 하려고 최선을 다하는 인자한 사람이었다. 유방의 롤 모델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인재를 폭넓게 사귀는 협객 정신의 상징인 신릉군이다. 그리고 유방은 친화력이 강하고 강한 리더십을 가진 사람이다. 또 유방은 항상 문제가 발생하면 비굴한 방법이라도 풀어 나가는 문제해결형의 사람이며 결과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결과 공유형의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유방 주위에는 항상 인재가 모여들게 된다. 그는 얼굴이 용안이라고도 전해져 내려온다.
· '중국 3대 악녀' 폐후 여씨
유방이 여공의 환영 잔치에 가서 "일 만전의 선물을 가져왔다."라고 큰소리로 허풍은 친다. 많은 사람들은 '그가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여공은 그의 관상을 보고 환대하며 상석에 앉히면서 나중에 자기 딸 여치를 유방에게 시집을 보낸다. 그녀가 바로 나중에 폐후 여치(여태후)가 된다. 폐후 여치는 한고조의 황후이며 혜제의 어머니로 중국최초의 정식 황후이다. 나중에 유방이 한고조 황제가 되어 척부인의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려 하자 여태후는 척부인을 잡아 사지를 자르고 온몸의 구멍에 수은을 붓고 돼지우리에 던져 놓는다. 그 모습을 본 여치의 아들이 정신병을 앓기도 한다. 그녀는 당의 측천무후, 청의 서태후와 같이 '중국 삼대 악녀'로 평가된다. ※ 상세한 것은 다음을 참고하세요! 중국삼대악녀 여태후(여치, 폐후 여씨)와 인간돼지 '척부인', 혜제 유영
· 하우 영과 칼싸움 장난
관아의 마부 하우 영이라는 사람과 유방은 서로 신분, 나이에 관계없이 친분을 쌓고 있었다. 하루는 둘이서 칼싸움 장난을 치다가 하우영이 다치게 된다. 이를 본 사람이 관아에 유방을 상해죄로 고발을 하게 된다. 당시 진나라는 군사나 관리를 귀하게 여겨 이들을 다치게 하면 강한 처벌을 하는 법이 시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평소 유방을 사람됨을 잘 알고 있던 하우 영은 관아에서 1년간 감옥을 살고 곤장 200대를 맞아도 끝까지 유방을 고발하지 않는다. 그 결과 유방은 무죄로 풀려나게 된다. 나중에 유방이 군사를 일으키자 하우영은 그의 부하가 되어 큰 활약을 하였으며 마지막에는 한나라의 개국공신이 된다. 이 사례를 보면 유방은 얼마나 사람을 깊이 사귀며 폭넓게 사귀는지 잘 알 수 있다.
· 정장(간수) 시절 유방
유방이 군사를 일으키기 전에 정장(지금의 죄수를 지키는 간수)으로 있었을 때 여산에서의 일이다. 당시 진나라에는 죄수 호송이 늦거나 죄수의 옷이 맞지 않으면 간수까지도 죽이는 법이 있었다. 호종 중에 죄수가 도망을 치자 유방은 나머지 죄수들도 다 도망가라고 풀어 주며 앉아서 술만 먹는다. 이를 본 죄수들은 감복하여 도망을 가지 않고 유방과 같이 망탕산의 산적이 된다. 이때 앞장 선 사람이 구렁이를 보고 겁을 먹고 돌아서자 유방은 구렁이를 두 동강 낸다. 얼마 후 노파가 나타나 "내 아들은 백제인데 적제가 나타나서 내 아들을 죽였다."라고 말하고 사라진다. 그 이야기를 들은 유방은 이를 좋은 징조로 생각한다.
· 항우의 기의
진승과 오광의 난은 진나라 말 BC 209년 중국 역사상 천민 최초의 반란으로 진승과 오광이 봉기를 일으킨 난이다. 이들의 난은 6개월 만에 진나라 장군 장함(장한)에 의해 진압된다. 항우는 진승과 오광의 란이 일으나자 항우는 회계 군수 '온통'을 죽이고 군사를 일으킨다. 이때 그의 나이는 24세이다. 세력을 키운 항우는 작은 아버지인 '항량'과 같이 진나라를 향해 공격한다. 진나라 장군 장함에게 '항량'이 죽은 후 장함의 군사가 조나라의 거록성을 공격하여 포위하자 항우는 상장군 송의를 죽이고 스스로 상장군이 된다. 그리고 거록성에서 전투에 대승을 거두어 중원의 패자가 된다, 이때 항복한 진나라 20만 군사를 신안에서 땅에 묻어 죽이는 신안대학살을 저질런다. 이후 여러 제후국들은 항우를 중원의 패자로 섬기게 된다. ※ 상세한 내용은 지난번 항우 편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유방의 기의
한편 진승과 오광의 난이 일으나자 패현 현령은 향후 거취에 대해 소하에게 묻자 "유방 일행에게 몸을 의지하는 것이 좋다."라고 결정한다. 그래서 그는 번쾌를 유방에게 보낸다. 그러나 뒤에 번쾌의 태도를 보고 마음이 변하여 패현 현령은 성문을 굳게 닫아 버린다. 얼마 후 성안 백성들이 현령을 죽이고 유방이 현령이 되기를 간청한다. 이에 유방은 현령이 되고 현을 장악한다. 그 후 사람들이 계속 모여들어 세가 늘어나자 유방은 진나라의 폭정에 대항하는 군사를 일으키게 된다. 이때 그의 나이는 37세이다. 그리고 개고기 장수 출신 번쾌, 역상, 노관, 마부 출신 하우영, 비단장수 출신 관영, 주발 등의 도움을 받아 점점 세력을 키워 나가게 된다.
유방 한왕에 책봉
· 유방의 한왕에 책봉
한편 유방은 별동대를 이끌고 부하 '역이기'의 도움으로 전쟁을 하지 않고 진류성을 얻게 된다. 그 후 장량을 도와 한을 재건하게 된다. 또 전투를 하지 않고 하남성 남양을 포위해 얻게 된다. 그는 항복을 하면 그들을 살려주고 그대로 보전해 주었다. 그 후 책사 장량의 도움으로 진나라 남부 관문인 무관을 차지한다. 한편 항우도 조나라에서 진의 주력군을 격파한다. 당시 진나라는 환관 조고가 패전사실이 알려질까 두려워 진나라 2세 황제를 죽이고 권력을 잡고 있었다. 결국 조고는 진나라 3세 황제 자영에게 피살된다. 그 후 유방은 요관을 차지하자 진왕 자영이 옥쇄를 바치고 항복한다. 유방은 그를 살려 준다. 그리고 패상으로 물려난다. 그러자 관중의 사람들은 유방을 한왕으로 책봉하여 모신다. 한왕이 된 유방은 "약법삼장"("사람을 죽이면 사형하고 다치게 한 자는 처벌하며, 물건을 훔친 자는 처벌한다."의 세 가지 조항)을 선포한다.
· 유방의 홍문연(홍문지연) 위기
관중 땅에 유방의 군사 10만이 먼저 들어갔으나 항우는 군사가 40만으로 훨씬 우세하였다. 먼저 도착한 유방이 함양왕으로 행세하려 하자 항우가 유방을 적으로 생각하여 함곡관으로 진격하여 들어온다. 그리고 항우는 유방을 죽여라고 하는 범증의 말을 듣고 홍문에서 잔치를 열면서 유방에게 참석하라고 한다. 책사 장량의 계략으로 유방은 항우에게 항복하며 납작 엎드린다. 이때 항우의 책사 범증이 칼춤으로 유방을 죽이려고 하나 항우는 항복만 받고 유방을 살려주게 된다. 이와 같이 홍문연(홍문지연)에서 유방을 죽일 수 있는 하늘이 준 기회인데 항우는 이것을 놓친다. 그 후 항우는 유방을 죽이지 않아 해하전투에서 패하여 자결하게 된다. ※ 상세한 내용은 지난번 항우 편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항우의 서초패왕 등극
이후 항우는 진나라 도읍 함양에 들어가 아방궁과 건물을 태우고 진나라 삼세 황제 자영을 죽이고 군사를 일으킨 지 3년 만에 진나라를 멸망시킨다. 중국을 18개 제후국으로 나누어 제후왕을 임명하고 자신은 서초패왕으로 등극한다. 항우는 관중을 도읍으로 정하라고 하는 신하 한중의 말을 듣지 않고 고향 초나라 땅 팽성에 도읍을 정한다. 이 일로 말미암아 고향 초나라 팽성으로 돌아간 항우는 결국 유방에게 관중 서쪽 땅인 파, 촉 지방을 근거로 세력을 키워 관중으로 진격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게 되는 것이다. ※ 상세한 내용은 지난번 항우 편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초한전쟁
※ 지면관계상 이후 팽성전투, 영양대치, 광무대치, 마지막 해하전투 등 초한전쟁에 관한 사항은 다음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항우 유방의 천하 자웅 초한전쟁 - 팽성, 해하전투, 광무, 영양대치
유방의 천하통일
· 천하통일
5년 동안 계속된 전투 끝에 항우는 천하를 놓고 유방과 겨루다가 해하전투에서 장량의 계략에 빠져 패하게 되고 강동으로 가는 오강을 건너지 않고 스스로 자결한다. 그 후 유방은 노의 항복을 받아내고 항우의 잔병들을 달래려고 장례를 성대하게 치러 준다. 드디어 BC 202년 유방은 황제 한고조로 등극한다. 그리고 수도를 장안으로 정한다. ※ 상세한 내용은 지난번 항우 편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논공행상
소하를 일등공신으로 삼고, 한신을 초왕, 팽월을 양왕으로 삼고, 옹치를 십방후로 삼는다. 옹치는 한때 유방을 배신하기도 하였고, 거병에도 반대하였다. 그런데 옹치를 벌하지 않고 상을 주는 것은 논공행상의 불만으로 반란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는 장량의 계책이었다. ※ 상세한 내용은 지난번 소하 편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천하를 잡은 이유
유방은 스스로 "나는 장량처럼 교묘한 책략을 쓸 줄 모른다. 소하처럼 행정을 살피고 군량을 보급할 줄도 모른다. 또 한신처럼 병사들을 이끌고 싸움에 이길 줄도 모른다. 그러나 항우는 단 한 사람 범증조차 제대로 기용하지 못했는 데 나는 이들 세 사람을 제대로 기용하였다. 이것이 천하를 잡은 이유다."라고 말한다. 즉 천하를 잡은 이유가 유방은 항우처럼 포악하지 않고 인자하고, 인재를 적재적소에 잘 중용하였다는 것이다.
한고조 유방의 업적
유방은 장량, 소하, 한신과 같은 유능한 인재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그들이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였다. '육가'의 영향을 받아 노자사상을 받아들여 '황로정치'를 펼쳤다. 그러나 화폐를 무제한 발행하여 경제에는 실패하였다. 그리고 유방에 관한 기록이 있는 책에는 사마천의 <사기>, 반고의 <한서> 등이 있다.
· '무위 지치'로 민생 안정
한고조는 노자의 '무위' 받아들여 "쓸 데 없는 것을 하지 않고 그냥 내 버려두면 백성들이 알아서 자력갱생하여 자급자족한다."라고 하는 황로사상으로 정치를 펼치고 그리고 법령을 간소화한다. 이러한 '무위'로 나라를 다스리는 정치기조인 무위 지치는 한무제(효무제)까지 계속된다. 그 결과 민생이 안정되고 백성들은 나날이 풍족하게 된다.
· 정치 안정
귀족과 개국공신들을 숙청하거나 억압하여 황제권을 강화시킨다. 고향 패현 출신의 공신인 소하, 조참, 주발, 번쾌, 노관, 왕릉은 같이 지속되나, 제후인 개국 공신들 한신, 팽월, 신, 오예, 임상, 경포, 장도, 장호 등은 죽거나 숙청되어 토사구팽을 당하게 된다. 이들 제후들은 나중에 유방의 자식들로 교체된다.
· 군국제 실시
초기 한나라에서는 봉건제와 군현제의 복합된 형태인 군국제를 실시한다. 즉 한무제 때에 이르러 공자와 맹자사상인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삼아 완전한 군현제가 실시된다.
· 한고조의 반란 진압
유방이 한고조 황제가 된 후 끝임없이 반란과 모반이 일어나게 되자 한고조는 직접 반란을 진압하러 간다. 이러한 반란에는 연왕 장도의 반란, 이기의 모반, 한신의 모반 등이 있었으며 그 후 한고조는 한왕 신이 흉노로 넘어가자 32만의 군대를 끌고 평성을 공격하다 백등산에 칠일 간 포위당해 죽을 뻔할 때 묵돌선우의 아내에게 뇌물을 주어 겨우 탈출하여 도망을 친 후 흉노와 화친을 한다. 그리고 조나라 상국 진희가 대나라에서 모반을 하자 여태후가 한신과 팽월을 죽인다. 또 회남왕 경포가 모반을 일으키자 한고조는 직접 진압하러 가다가 잠시 고향 패현에 들러 아이들 200명에게 대풍가(大風歌)를 지어 가르친다. 그러면서 평생 전쟁터에만 다녀야 하는 신세를 한탄하여 눈물을 흘린다. 결국 한고조는 경포와의 전투중에 화살을 맞고 그 후유증으로 죽게 된다. 다음은 "대풍가(大風歌)"의 내용이다.
- 대풍기혜 운비양(大風起兮 雲飛揚) : 큰 바람이 일고 구름은 높이 날아가네.
- 위가해내혜 귀고향(威加海內兮 歸故鄕) : 위세를 해내에 떨치고 고향으로 돌아왔네.
- 안득맹사혜 수사방(安得猛士兮 守四方) : 어디서 용맹한 군사를 얻어 천하를 지킬까.
맺음말
우리는 위에서 천하통일한 한고조 유방과 장량, 소하, 한신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유방은 스스로 천하를 차지한 이유가 "항우는 단 한 사람 범증조차 제대로 기용하지 못했는 데 나는 이들 세 사람(장량, 소하, 한신)을 제대로 기용하였다."라고 말한다. 이와 같이 항우 자기 개인은 뛰어난 불세출의 영웅이지만 다른 사람을 의심하여 믿고 중용하지 않았다. 그 결과 범증의 말을 듣지 않고 '하늘이 준 기회(홍문지연)'인 '유방을 죽일 수 있는 기회'도 놓치게 된다. 이에 반하여 유방은 성품이 인자하고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사귀어서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른다. 그 결과 유방이 천하를 가지게 된다. 우리는 유방과 항우의 경우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유능한 인재를 잘 알아보아야 하며 또 그들을 적재적소에 기용하는 데에 최선을 다하여야 할 것이다.
※ 다음은 항우와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역발산기개세 서초패왕 '항우'와 홍문지연, 일거양득, 사면초가, 면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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