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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고려사

제9대 덕종 - 어린 시절과 등극 및 업적, 가족과 사망, 천리장성, 국자감시

by 이야기마을촌장 2025. 3. 8.

고려 제9대 국왕 덕종(德宗, 1016 ~ 1034)은 현종과 원성왕후 김씨 장남로 이름은 연경군 흠(欽)이다. 재위기간은 1031년 6월부터 1034년 11월까지 3년 5개월이다. 덕종은 15살의 어린 나이로 즉위하여 아버지 현종을 이어 태평성대를 잘 유지하였지만 병약하여 재위한 지 3년 만에 병석에 눕게 되어 왕위를 동생인 정종에게 물려주고 19살의 나이로 요절한다. 

덕종

 

출생과 등극

· 출생과 어린 시절

덕종(德宗, 1016 ~ 1034)은 현종과 원성왕후 김씨 사이의 2남 2녀 중 장남로 이름은 연경군 흠(欽)이다. 덕종은 어릴 적부터 총명하고 결단력이 있어 1022년 7살에 태자로 책봉된다.

 

· 등극

1031년 6월 아버지인 현종이 사망하자 연경군 왕흠은 15세의 어린 나이로 즉위한다. 그가 바로 고려 제9대 국왕 덕종이다. 덕종은 너무 총명하여 즉위 후 서눌이 1개월간 대리청정을 한 후 바로 친정을 한다. 그는 아버지 현종을 이어 태평성대를 잘 유지한다.

 

 

덕종의 치세

· 거란에 강경 외교

거란과의 전쟁을 물리친 이후 덕종대에 이르러, 고려는 동아시아 강대국으로써의 위치를 차지한다. 한편 거란의 성종이 사망하고 흥종이 즉위하자, 덕종은 거란에 사신을 보내어 압록강 유역에 가설한 부교 및 보성을 파괴할 것과 전쟁 포로가 된 고려인의 송환을 요구한다. 거란의 흥종이 이를 거부하자 고려는 하정사의 파견을 중지하고, 거란의 연호인 흥종을 사용 중지한다. 또한 1032년 거란 사신의 입국을 거부하고, 거란과의 전쟁에 공이 많은 김거, 수견 등에게 포상하고, 거란의 침략에 대비하여 국경 지대인 삭주, 영인진, 파천에 성을 쌓는다.

 

· 천리장성 축성
덕종은 1033년 북쪽 경계지역인 북계에 유소를 보내 관성을 설치한다. 1033년 10월 거란은 정주를 소규모의 병력으로 침략하기도 하였으나, 과거 강감찬에 의해 대패하였던 거란은 감히 더 이상 고려와의 대규모 전쟁을 감행할 수 없었다. 또한
거란과 여진족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1034년 8월 평장사 유소에게 명하여 압록강 하구에서 동해안의 도련포까지 천리장성을 축성시작하여 10년 만인 1044년 정종10년에 완성한다. 그 결과 축성에 도움을 준 동여진인과 거란인들이 고려의 관작을 받고 대거 투항한다. 

 

· 국자감시 실시

1031년 덕종은 처음으로 국자감에서 치러진 예비시험인 국자감시(진사과)를 실시하여 인재 등용의 체계를 마련한다. 국자감시는 제술과 명경 두 과목으로 구성되었으며, 고려 말까지 유지되다가 조선 건국 직후에 폐지되었다가, 문종 때 다시 진사시로 부활하게 된다. 또한 왕가도와, 황주량으로 하여금 현종 때 시작한 국사편찬사업인 <7대 실록>을 완성하게 한다.

 

 

가족과 사망

· 가족

덕종은 3명의 왕비(제1비 경성왕후 김씨, 제2비 경목현비 김씨, 제3비 효사왕후 김씨)와 2명의 후궁(이씨, 유씨) 사이에 자녀는 경목현비와의 사이에 상회공주가 있었으나 일찍 죽고 만다.  

 

· 사망
덕종은 총명하여 아버지 현종의 치세를 이어받아 태성성대를 유지한다. 그러나 병약하여 병석에 누운 지 3개월 만인 1034년 11월, 덕종은 슬하에 아들이 없었으므로 동생 평양군 왕형(정종)에게 양위하고 19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한다. 그의 능은 개경 북쪽 교외에 위치한 숙릉(肅陵)으로 현재 개성시 해선리 소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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