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제8대 국왕 현종(顯宗, 992 ~ 1031)은 안종(왕욱)과 헌정왕후 황보씨 아들로 이름은 대량원군 순(詢)이다. 재위기간은 1009년 3월부터 1031년 6월까지 22년 3개월이다. 천추태후와 김치양은 목종에게 아들이 없음을 기회로 자신들의 아들로 하여금 왕위 계승을 하고자 하여 왕순을 죽이고자 하여 생명의 위협을 받기도 한다. 1009년 2월, 강조가 정변을 일으켜 목종을 시해하고 대량원군 왕순(현종)을 왕으로 옹립한다. 두 차례에 걸친 거란(요나라)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이후 130년에 걸치는 황금기를 열게 된 고려 왕조의 중흥을 가져온 성군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는 현종의 어린 시절과 등극 및 고려 거란 전쟁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헌종의 출생과 등극
· 출생과 어린 시절
고려 제8대 국왕 현종(顯宗, 992 ~ 1031)은 안종(왕욱)과 헌정왕후 황보씨 아들로 이름은 대량원군 순(詢)이다. 왕순은 태어나자마자 어머니 헌정왕후가 죽고 아버지 왕욱은 성종이 유배를 보내 고아로 자란다. 천추태후와 김치양은 목종에게 아들이 없음을 기회로 자신들의 아들로 하여금 왕위 계승을 하고하니, 태조 왕건의 유일한 혈통인 대량원군 왕순(현종)이 방해가 되었다. 이에 천추태후는 대량원군 왕순을 강제로 출가시켜 개성 숭경사, 삼각산 신혈사에 머물게 하고 수차례에 걸쳐 자객을 보내고 독살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한다.
· 등극
한편 김치양 일파들이 궁궐에 불을 질러 목종을 시해하려고 하자 이에 놀란 목종이 병이 든다. 목종은 천추태후와 김치양의 음모를 파악하고 서경의 서북면도순검사 강조를 불러들인다. 그러나 1009년 2월, 서북면도순검사 강조는 김치양 일파를 제거하기 위해서 목종을 폐위하기로 결심하고 정변을 일으킨다. 결국 강조는 목종을 시해하고 대량원군 왕순(현종)을 새 국왕으로 옹립한다. 그가 바로 고려 제8대 국왕 현종이다. 그 후 1010년 11월까지 강조가 실권을 장악한다.
고려·거란 전쟁
· 제2차 고려·거란 전쟁 : 양규, 강조
1010년(현종 1) 요나라 거란의 성종이 '강조의 정변'을 구실로 40만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온다. 이에 양규가 흥화진에서 항전하자 거란의 성종은 이를 피해 우회 공격한다. 이에 현종은 강조에게 30만 군대를 주어 통주에서 방어하게 하였으나, 강조는 패하고 죽임을 당한다. 거란은 곽주, 안주 성을 빼앗고 개경까지 함락시킨다. 고려 조정에서는 항복하자는 여론이 있었으나 강감찬의 반대로 현종은 지채문의 호위를 받으며 나주로 비참한 몽진을 한다. 현종은 창화현 아전에게 병장기를 빼앗기고, 적성현에서는 괴한들이 현종에게 활을 쏘았다. 나중에 공주를 빠져나오면서 임신한 왕후마저 떼어놓고 피난해야만 했다. 이 시기 현종은 공주에서 머물다 김은부의 딸과 관계를 맺게 되고 나중에 그의 딸들이 왕후가 된다. 전주에서는 절도사 조용겸이 현종을 납치하려고 하여 겨우 위기를 모면한다. 이후 고려가 하공진을 보내 화친을 청하자 거란의 성종은 현종이 친조 하는 조건으로 철수한다. 양규와 김숙흥은 철수하는 거란군을 공격하여 많은 피해를 입히고 전투 중에 전사한다. 나주로 피난간 현종은 다시 개경으로 돌아온다.
· 최질, 김훈의 난
한편 전쟁으로 인해 군비가 크게 증가하여 관리에게 지급할 녹봉이 부족해지자 장연우, 황보유의 등의 문신들은 1014년 11월에 경군 무신들의 영업전을 빼앗는다. 이에 무신인 상장군 최질, 김훈 등이 군사를 이끌고 이 정책을 실행한 장연우, 황보유의를 붙잡아 현종 앞에서 매질을 하며 협박하고 귀양을 보낸다. 무신들은 전공이 높은데도 영업전을 빼앗긴 억울함을 호소하며, 무신도 공이 높으면 문신처럼 높은 품계를 받을 수 있도록 요구한다. 이에 현종은 일단 수락하였다. 그 후 1015년 현종은 서경유수판관으로 임명한 이자림과 모의하여, 무신들을 위로한다면서 서경에서 잔치를 한다. 잔치가 무르익어 무신들이 술에 취하게 되자 최질, 김훈 등 19명의 장군들을 주살한다. 이후 황보유의와 장연우를 다시 불러 기용하고 무신들이 고친 관직을 다시 복구한다. 그 결과 무신들은 약해지고 문신들이 시대가 열린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거란조정에서는 고려에 대한 3차 침공이 힘을 얻게 된다.
· 제3차 고려·거란 전쟁 : 강감찬 귀주대첩
고려에서는 이미 거란과의 전쟁에 대비하여 국방을 강화하여 상당한 전력을 준비하고 있었다. 1018년(현종 9) 거란의 소배압은 '현종의 입조와 강동 6주의 반환을 요구'하면서 10만 대군을 이끌고 침략한다. 이에 현종은 상원수 강감찬, 부원수 강민첨에게 20만 대군을 보내 귀주에서 거란군을 대파한다. 고려는 1만 2천 기병 매복시키고 냇물을 막았다가 일시에 내려보내 승리한 흥화진 전투에서 거란군을 대파한다. 그러자 거란군은 자주에서 강민첨의 공격을 받고 개경으로 향한다. 그러나 식량이 될만한 것은 모두 불태워 없애버리는 청야전술에 말려 거란군은 식량공급에 차질을 빚는다. 결국 소배압은 개경 가까운 신은현에 도달하였으나 개경을 함락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군사를 돌려 퇴각한다. 고려군은 협공으로 패퇴하는 거란군을 추격하여 귀주에서 섬멸시키는 귀주대첩에서 대승을 거둔다. 거란군은 10만 명 중에서 생존자는 겨우 수천 명에 불과할 정도로 전멸하게 된다. 결국 이듬해 고려 현종이 거란에 화친을 요청하자, 거란은 고려와의 평화적인 외교관계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 후 13세기 중엽 몽고의 침입이 있기까지 약 200년간(덕종, 정종) 평화의 시대가 오게 된다.
※ 지면관계상 이어지는 내용은 다음 시간에 계속하겠습니다.
제8대 현종 2 - 국가체제 정비와 문화정책 및 가족과 사망, 초조대장경, 선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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