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사군자는 제나라 맹상군 전문, 조나라 평원군 조승, 위나라 신릉군 무기, 초나라 춘신군 황헐이 있다. 이들은 2차 합종책으로 약 20년간 진나라의 중원 진출을 막았다. 사군자에 대하여 후세인들의 평가 기준은 식객의 수와 질이다. 그중 가장 식객이 많은 맹상군을 제일로 꼽고 그리고 평원군, 신릉군, 춘신군 순위이다. 평원군에는 모수라는 사람이 위, 초나라 동맹에 성공한다. 이와 관련된 고사성어로 낭중지추와 모수자천이 있다. 그러나 사마천은 이들 중 신릉군을 협객정신을 가진 인물로 보고 가장 높이 평가한다. 이 시기에는 조, 위, 초나라의 합종책에 대항하여 진나라 범저의 원교근공책이 있다. 지난 시간에는 사군자 중 맹상군 전문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여기에서는 전국시대 사군자 '협객의 원조' 신릉군 위무기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인재 등용 상황
사군자들 중에 춘신군만 제외하고 3명 모두 왕족이다. 전국시대 진나라를 제외한 6국들은 인재를 잘 기용하지 못하고 다 놓치고 말았으나 진나라는 인재들을 잘 등용하여 나라가 강성하여진다. 예를 들면 상앙, 손빈, 범수, 악의 등 뛰어난 인재들이 모두 위나라를 찾아갔지만 위나라는 그들을 기용하지 않고 모두 놓치고 말았다. 상앙, 범수는 진나라로, 악의는 연나라로, 손빈은 제나라로 가고 만다. 그 결과 위나라는 서서히 몰락해 간다. 그러나 진나라는 인재를 잘 기용하여 나라가 발전하기는 하나, 기용된 인재들이 왕족이 아닌 기려지신(떠돌이 신하)이란 이유로 마지막에는 모두 왕에게 버림을 받게 된다. 이들에는 상앙, 범수, 장의, 여불위, 이사 등이 있다. 그리고 진나라는 비교적 6국에 비해 나라의 기강이 바로 서서 나라를 떠나 배신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신릉군의 생애
신릉군(위무기 ? ~ BC 243)은 전국시대 위나라 소왕의 아들로 태어나 이름은 '무기'이다. 그는 소왕이 죽자 신릉군에 봉해진다. 그리고 전국시대 사군자 중 한 사람이 된다. 그리고 인재를 찾아다니는 사람으로 의리가 있고 겸손하였다. 그래서 그를 따르는 식객들이 3천 명이나 달하였다. 후세 중국인들은 '협객정신(꽌시)'의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그를 존중한다.
신릉군의 업적
진나라 백기장군은 장평대전(진나라 백기장군이 장평에서 조나라 조괄의 40만 대군을 전멸시킨 전쟁 BC 262) 이후 다시 조나라 도성 한단을 포위한다. 이에 평원군 조승은 위나라 안희왕과 처남인 승상 위 무기(신릉군)에게 구원을 요청한다.
· 위나라 진비 10만 지원군
이에 위나라 안희왕은 장군 진비에게 10만의 군사를 주어 조나라를 지원하기로 한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진나라 소왕은 사신을 파견하여 "조나라를 도와 지원군을 보낸다면 진나라는 위나라를 공격하겠다."라고 협박한다. 어쩔 수 없이 안희왕은 장군 진비에게 그 자리에 멈추고 관망하라고 명령한다. 이에 장군 진비는 진격하지 않고 망설이며 눈치만 본다.
· 후영과 주해
이 상황에 위무기는 스스로 전차 100승을 준비하여 지원군 10만이 없이 혼자서라도 조나라를 도우려 한다. 한편 위 무기는 숨어 있는 현자 '후영'을 알고 지냈다. 그는 나이가 70세인 노인으로 지금은 성문 문지기로 있다. 이러한 상황을 잘 알고 있는 70세 노인 후영은 위무기에게 계책을 알려 준다. 왕비 여희(과거 위무기가 그녀의 아버지 원수를 갚아 주었음)를 이용하여 군사 지휘권을 상징하는 병부를 훔쳐오라고 한다. 병부를 손에 넣은 위무기에게 후영은 "만일 장군 진비가 병부를 보고도 의심하여 지휘권을 넘겨주지 않으면 그를 죽이라."라고 말한다. 그리고 백정 주해를 같이 보낸다. 주해는 후영이 잘 알고 지내던 사람으로 백정이지만 철퇴를 잘 쓰는 사람이었다. 이에 주혜는 "지금이야말로 내가 받은 은혜를 갚을 수 있는 순간이다."라고 생각하고 기꺼이 그를 따라간다. 결국 위무기는 장군 진비를 주해의 철퇴로 죽이고 조나라로 진격한다. 여기에서 "절부구조(竊符救趙) 병부를 훔쳐 조나라를 구한다"라는 고사성어가 유래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초나라도 춘신군 황헐에게 군사를 주어 출병하게 한다. 그 결과 위나라와 초나라의 지원군은 진나라 군사를 물리쳐 조나라를 위기에서 구하게 된다.
신릉군의 죽음
신릉군은 '절부구조' 이후 위나라 안리왕이 자기를 싫어한다고 생각하고 조나라에 계속 머무른다. 그 후 진나라가 위나라를 공격하여 나라가 위급하다는 말을 듣는다. 이에 모공과 설공이 "조나라가 5개 성을 식읍으로 주면서 대접해 주는 것은 위나라가 존재하기 때문인데 위나라가 망하면 지금처럼 대접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까? 위나라를 구하러 돌아가야 합니다."라고 충고한다. 이에 위나라로 돌아 간 신릉군은 군사 전권을 위임받고 진나라 군사를 격퇴한다. 그 후 진나라는 "신릉군이 역모를 꾀하고 있다."라는 말을 과거 진비 장군의 부하들에게 찾아가 황금 만 냥을 주며 퍼뜨린다. 안리왕은 신릉군을 의심하게 된다. 이를 알게 된 신릉군은 술을 마시고 허송세월하다가 4년이 지나자 생을 마감하게 된다. 그가 죽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진나라는 결국 위나라를 멸망시킨다.
※ 진소왕의 책략가 범수(범저)와 원교근공책, 장평대전, 한단성, 양후
맺음말
위에서 우리는 전국시대 사군자 '협객의 원조' 신릉군 위무기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위무기는 의리와 협객정신으로 사람을 대한다. 그러자 많은 인재들이 감동하여 그를 따른다. 그래서 위기 때마다 그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는다. 예를 들면 후영, 주해, 여희 등 이러한 사람들에게 그는 은혜를 베푼다. 그 결과 그들은 자기가 받은 은혜는 반드시 되돌려 갚는다. 이러한 의리를 중시하고 보은하는 정신이 현재 중국인들이 말하는 '꽌시 정신'이다. 그 기원은 신릉군의 '의리와 협객정신'으로부터 나온다고 할 수 있다. 신릉군은 처남 평원군의 나라인 조나라 그리고 초나라와 함께 합종하여 약 20년간 진나라의 동진을 막아냈다. 그가 죽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진나라는 범저의 원교근공책으로 서서히 중원을 장악하여 통일국가(진시황 진나라)로 가게 된다. ※ 다음은 이 글과 관련이 있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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