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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사마천 사기

사군자 맹상군(전문)의 2차 합종과 식객 '풍환', 계명구도, 교토삼굴

by 이야기마을촌장 2023. 11. 24.

맹상군(전문)은 제나라 왕족으로 태어났으며 고향은 '영땅'이다. 그는 전국시대 사군자 중에 한 사람으로 소진의 1차 합종에 이어 2차 합종을 이루어 낸다. 그는 위나라와 한나라의 연합군으로 진나라의 동진을 약 20여 년간 막은 인물이다. 그는 사람을 가리지 않고 사귀기를 좋아한다. 심지어 도둑까지도 사귀어 위기를 당할 때에 그들의 도움으로 탈출하기도 한다. 이에 관한 '계명구도'라는 고사성어도 전해진다. 특히 식객 풍환과의 만남은 그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여기에서는 맹상군(전문)의 2차 합종과 식객 풍환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맹상군

맹상군의 업적

· 생애 

맹상군(전문 ? ~ BC 279)은 제나라 사람으로 전국시대 정치가이다. 그는 전국시대 4명의 공자 (사군자 : 제 맹상군, 조 평원군, 위 신릉군, 초 춘산군) 중에 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는 2차 합종을 이루어 내어 진나라의 동진을 약 20년 간 막는다. 사마천은 그를 '명불허전'이라 하며 크게 칭찬하였다.

 

· 출생 일화 

맹상군은 아버지 전영의 40명 자식 중에 하나로 태어났다. 그리고 전문의 어머니는 신분이 비천하였다. 아버지 전영은 "5월 5일에 태어난 아이는 문설주까지 자라면 부모를 해친다."라는 말을 믿고 자기 부인에게 "이 아이를 죽여라."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의 부인은 그러지 않고 아이를 키우게 된다. 아이가 장성하여 아버지를 찾아와 죽이라고 한 이유를 묻는다. 아버지 변명의 말을 듣고 난 아들 전문은 "문설주를 높이면 아이를 죽이지 않아도 되지 않느냐?"라고 반문한다. 이에 전영은 아이가 비범하다는 것을 알고 집으로 들여 아들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집에서 식객을 접대하는 일을 시키게 된다. 전문은 사람을 가리지 않고 만나 사귀는 것을 좋아한다. 심지어는 도둑, 상인, 농부, 학자 등 누구라도 차별하지 않고 만나고 사귄다. 그리고 손님들 보다 선물이 먼저 도착하게 하는 등 그들을 감동시킨다. 따라서 식객들 사이에 전문의 명성은 점점 더 널리 퍼지게 된다. 심지어 전문의 식객이 3천여 명에 이르게 된 적도 있었다. 

 

· 계명구도(鷄鳴狗盜)

 어느 날 진나라 소양왕이 전문의 소문을 듣게 되어 그를 재상으로 기용하려고 진나라로 부른다(BC 299). 이에 전문은 부름에 응하여 진나라로 가게 된다. 그러나 신하들은 "전문은 제나라 왕족으로서 미래에 후환이 될 것이니 죽여야 합니다."라고 왕에게 말한다. 그러자 소양왕은 마음이 변하여 그를 잡아 죽이려 한다. 이에 전문은 전부터 알고 있었던 소양왕의 애첩 연희에게 목숨을 구걸하게 된다. 애첩 연희는 소양왕에게 줄 호백구(여우의 겨드랑이 흰털로 만든 옷)를 요구한다. 이때 전문의 식객 중에 도둑인 사람이 있었다. 식객 도둑이 전문을 도와 소양왕의 창고에 들어가 호백구를 훔쳐온다. 그리고 그것을 연희에게 주고 도망을 가게 된다. 전문일행이 국경인 함곡관에 도착하였을 때는 한밤중이었다. 새벽에 첫닭이 울기 전에는 성문을 열 수 없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때에도 식객 중 닭울음소리를 흉내 내는 사람이 닭울음소리를 흉내 낸다. 마침내 성문이 열리자 맹상군 일행은 진나라를 벗어나 탈출하게 된다. 이 이야기에서 "계명구도(鷄鳴狗盜)", '닭울음소리 잘 내는 사람과 개 흉내를 잘 내는 도둑', 즉 '보잘것없는 재주라도 요긴하게 쓸 때가 있다.'라는 의미의 고사성어가 유래하였다. 그러나 후대 북송의 왕안석은 <독맹상군전>에서 "맹상군은 계명구도하는 무리만 있고 진정한 인재가 없어서 진나라를 제압하여 천자가 되지 못하였다."라고 맹상군을 비판한다. 

 

 

맹상군과 식객 풍환

· 빚문서 소각

하루는 행색이 남루한 풍환이라는 사람이 전문의 집에 식객으로 찾아온다. 그를 식객으로 받아 하급숙소에 머물게 한다.  그가 반찬투정을 하며 불평을 하자 그를 고급숙소로 옮겨서 묵게 한다. 한편 식객들을 대접하는 비용은 땅(돈)을 빌려주고 받는 이자로 충당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시간이 흘러 1년쯤 되었을 때 나라에 흉년이 들게 된다. 가뭄과 흉년으로 살기가 어려워진 백성들은 이자를 내지 못해 연체하고 있었다. 이에 전문은 풍환을 이자를 독촉하여 징수하는 사람으로 보낸다. 그는 사람들을 한 장소로 불러 모아 잔치를 벌인다. 그리고 이자를 낼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이자납일 기일을 연장하여 주고 앞으로도 이자를 낼 수 없는 가난한 사람은 그 차용증서 빚문서를 모아 불태워 버린다. 그리고는 풍환은 "이 모든 것은 전문이 시켜서 한 것이다. 그러니 전문에게 감사하라."라고 말한다. 그러자 모든 백성들은 감복한다. 나중에 전문이 이 이야기를 알게 되고 화를 낸다. 그러자 풍환은 "어차피 받지 못할 것을 포기하는 대신에 '은혜와 의리'(전문의 덕을 칭찬하는 것)를 가지고 왔습니다."라고 말한다. 

 

· 재상 복직

그 당시 전문은 제나라 재상으로 민왕을 모시고 있었는데 왕은 전문의 명성이 높아지자 그를 경계하기 시작한다. 결국 전문은 자리에서 쫓겨나게 된다. 그러자 3천여 명이나 달하든 식객들은 흩어지고 결국에는 풍환만 남게 된다. 그리고 전문은 고향 영땅으로 돌아간다. 그러자 풍환은 진나라 소양왕을 찾아가 "제나라 재상이었던 전문이 진나라에서 일하고 싶어 합니다."라고 말한다. 소양왕은 사신을 보낸다. 풍환은 급히 제나라 민왕에게 찾아가 "진나라가 전문을 빼내어 가려고 합니다. 그러니 다시 복직시켜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제나라 민왕은 진나라 사신이 오는 것을 보자 급히 전문을 복직시키고 사과를 한다. 전문이 복직하자 다시 식객들이 몰려든다. 이에 전문은 과거 일을 생각하여 이들을 반기지 않는다. 이에 풍환은 "부귀다사 빈천과우(富貴多士 貧賤寡友), 부귀하면 친구가 많고 빈천하면 친구가 떠나는 것은 세상의 섭리다."라고 말하며 그들을 받아들이라고 한다.

  

· 교토삼굴(狡兎三窟) 

어느 날 풍환이 전문에게 “교활한 토끼는 도망치는 동굴을 세 개 만든다. 하지만 전 공께는 도망칠 굴이 고향 영지(1번째 굴) 한 곳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위와 제로 달아날 굴을 두 개 더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공을 고침무우(高枕無憂 높은 베개를 베고 근심 없이 잠을 자도록 하는 것)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말한다. 그 후 풍환은 위나라 양왕을 찾아가 “민왕은 과거에 전문을 해임했던 적이 있다. 지금 전문을 부르면 나라가 부국강병 해질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양왕은 전문을 위해 자리를 비워둔다. 전문은 위로 가겠다고 하지만, 풍환은 그것을 말리며 “제 민왕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라고 말한다(2번째 굴). 그 후 위나라 사신이 자주 전문에게 드나드는 것을 알게 된 제나라 민왕은 풍환의 말대로 전문에게 “ '설' 땅에 조상의 묘(廟)를 세우겠으니 부디 제에 머물러 주오”라고 사정한다. 전문이 가지고 있는 '설' 땅에 선대의 왕들을 모신 선영이 들어서면 제 민왕은 조상의 왕들이 있는 무덤을 공격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3번째 굴). 여기에서 '어려움을 잘 대비하여야 한다.'라는 뜻의 “교토삼굴”(狡兎三窟)의 고사성어가 유래하게 되었다. 얼마 되지 않아 제 민왕은 다시 전문을 싫어한다. 이에 전문은 고향으로 들어간다. 그 후 진나라의 공작과 제 민왕의 의심으로 전문은 목숨의 위협을 받는다.

 

 

맹상군의 2차 합종

결국 BC 284년 전문은 과거에 풍환이 마련하였던 두 번째 굴인 위나라로 도망쳐 재상이 된다. 그 후 전문은 한나라와의 합종으로 위·한 연합군을 결성하여 진나라의 동진을 약 20년간 막아낸다. 그 뒤에 연나라는 악의 장군을 통해 5개국 연합군(조·위·한·진·연 나라)을 결성하여 제나라 민왕을 공격한다. 그 결과 대승을 거두고 제나라 민왕을 제거한다. 멸망 직전에 몰린 제나라는 '전단'에 의해 다시 재건된다. 그 후 전문은 다시 제나라로 간다. 

 

 

맹상군의 죽음

전문이 죽자 맹상군이라는 시호가 주어진다(BC 279). 그러나 그가 죽은 후 아들들의 상속 다툼이 벌어지게 되고, 그 후 '설'땅이 위나라와 제나라의 공격을 받게 되어 맹상군의 자손은 끊어지게 된다.

 

 

맺음말

여기에서는 맹상군(전문)의 2차 합종과 식객 풍환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전국시대에 맹상군은 2차 합종을 이루어 내어 위·한나라 연합군으로 진나라의 동진을 약 20여 년간 막았다. 그리고 그는 사람을 가리지 않고 사귀기를 좋아한다. 식객 풍환이나 심지어 도둑까지도 사귀어 위기를 당할 때에 그들의 도움으로 탈출한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을 비판하는 후세의 사람들이 있다. 특히 북송의 왕안석은 <독맹상군전>에서 "맹상군은 계명구도하는 무리만 있고 진정한 인재가 없어서 진나라를 제압하여 천자가 되지 못하였다."라고 맹상군을 비판한다. 그리고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라는 말 있다. 그러면 우리는 '사람을 가리어 사귀어야 하는지', 아니면 맹상군처럼 '사람을 가리지 않고 사귀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이 것은 시대 상황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만약 시대가 전국시대처럼 불안하고 혼란할 때에는 맹상군의 처세가 맞을 것이고, 시대가 안정되고 도덕적일 때에는 사람을 가리어 사귀는 것이 맞을 것이다. 요즈음 현대인들에게는 후자가 답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 맹상군의 이야기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필요도 있다.

※ 다음은 이 글과 관련이 있는 글입니다. 전국 사군자 선비정신의 평원군(조승), 낭중지추, 조승살첩, 조사, 이동

 

전국 사군자 선비정신의 평원군(조승), 낭중지추, 조승살첩, 조사, 이동

전국시대 사군자는 제나라 맹상군 전문, 조나라 평원군 조승, 위나라 신릉군 무기, 초나라 춘신군 황헐이 있다. 이들은 2차 합종책으로 약 20년간 진나라의 중원 진출을 막았다. 그중 가장 식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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