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담, 전영, 전횡 이들 전씨들은 진나라 말기 진승과 오광의 난의 혼란한 틈을 타 제나라를 재건하고 차례로 왕이 된 순임금의 후손들이며 형제들이다. 이들 전담, 전영, 전횡들은 왕 유방의 의해서 한나라로 통일되기 전까지 제나라를 이끌고 마지막까지 항우와 유방에게 저항하였다. 여기에서는 제나라의 왕 전담, 전영, 전횡과 유수전투, 오호도, 어청도, 이연도 등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제나라의 유래
주나라 무왕이 제후국들을 세울 때 진나라를 세운다. 그때 진나라는 순임금의 후순으로 공자 완이 BC 672년에 제나라로 망명하여 제나라 환공의 신하가 되어 상인으로서 세력을 키운다. 그 후 이들은 제나라의 왕이 된다. 이러한 제나라의 왕이 된 가계의 흐름을 살펴보면 처음에 규완의 규씨집안에서 진완의 진씨 집안으로 그 후 기원전 BC 386년 강태공의 강씨 왕조를 몰아내고 전(田)씨 집안이 제나라의 왕이 된다. 이때의 시대를 전제시대라 한다. 이러한 전씨들은 제나라의 위기 시마다 힘을 합쳐 나라를 구하여 백성들로부터 신망을 받게 된다. 그러한 대표적인 인물로는 진나라의 동진을 10년 동안 막아낸 맹상군 전문과 연나라 악의 장군의 침략으로 다 무너지고 2개의 성만 남아 나라가 망하기 직전에서 구한 전단 장군이 있다.
전담
전담(? ~ BC 208)은 제나라 적현 사람으로 진나라 말기 진승과 오광의 난이 일어나 주불이 위나라를 공격하고 위구를 왕으로 옹립하여 제나라 적현 땅까지 왔을 때 전담은 젊은이 수백을 거느리고 자신의 노복을 거짓으로 포박하여 현청으로 가 경계를 늦춘 현령을 죽인다. 그리고 그는 "사방에 제후들이 봉기를 하니 우리도 제나라에서 일어나야 한다. 그리고 제나라는 원래 전 씨들의 나라이니 내가 왕이 되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말하며 스스로 왕이 된다. 그후 주불의 군사를 몰아내고 세력을 키워 제나라 전역을 평정한다. 한편 진나라 장군 장함이 위나라의 수도 임제를 포위하자 위왕 위구는 제왕 전담에게 구원을 청한다. 이에 전담은 군사를 이끌고 위나라를 지원하러 가서 임제에서 장함과의 전투 중에 사망을 하게 된다.
전영
전담의 죽자 그의 사촌동생 전영이 패잔병을 이끌고 동아로 도망을 간다. 이때 제나라 사람들은 전기를 왕으로 삼고 전간을 장군으로 반란을 일으킨다. 이에 동아로 도망간 전영은 항량의 도움을 받아 진나라 장한을 무찌른다. 그러자 장한은 서쪽으로 패주하고 항량은 그의 뒤를 쫓는다. 그러자 전영은 제나라의 땅으로 가서 반란을 진압하자 전가는 초나라 항량에게로 도망간다. 전영은 전담의 아들 전불을 왕으로 옹립하고 자신은 재상이 된다. 한편 도망가던 진나라 장한의 군대가 함양으로부터 지원군을 보충하여 점점 강해지자 항량은 사신을 보내 함께 칠 것을 요청한다. 그러나 전영이 초나라로 도망간 전가를 죽일 것을 조건으로 요구하자 항량은 거절한다. 결국 전영은 도움을 주었던 항량의 요청을 거절한다. 그 결과 항량은 혼자 초군을 이끌고 진나라 장함의 군대를 추격하다가 장함의 반격으로 죽게 된다. 이 일로 인해 항우는 전영에게 원한을 가지게 된다. 그 후 항우가 거록성 전투에 승리하자 모든 제후국들이 그에게 굴복한다. 항우는 제후들에게 분봉을 시행할 때 제나라를 삼등분하여 전불은 교동왕, 자기를 도운 제나라 장수 전도를 제왕, 전안을 제북왕으로 봉하고 원래 실력자인 전영은 분봉에서 제외시킨다. 그리고 동쪽으로는 장이를 상산왕, 진여는 왕이 아닌 제후로 봉한다. 이에 전영과 진여 그리고 한쪽 구석인 서촉지방의 유방은 항우에게 앙심을 품게 된다. 따라서 가장 먼저 제나라의 전영이 유방이 임명한 전도, 전안을 제거하고 나아가 주불까지도 물리치고 제나라의 왕이 된다.
전횡
이에 항우는 화가 나서 제나라를 공격하던 중 전영이 죽게되어 전영의 동생 전횡이 항우와 맞서 싸운다. 그러던 중 유방이 초나라의 수도 팽성을 함락시키자 항우는 급히 팽성을 수복하기 위해 돌아간다. 그러자 전횡은 제 나라 땅을 회복하면서 전영의 아들 전광을 왕으로 삼고 자신은 재상이 된다. 한편 한나라의 장수 한신의 북벌이 시작되어 위나라가 정벌되고 제나라만 남았을 때 한나라 사신 역이기가 찾아와서 동맹을 제안하여 항복하고 한나라로 귀속하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한나라와 맞서고 있는 장수들의 경계를 풀어 역이기와 함께 주연을 벌인다. 이때 괴철의 유혹으로 공을 역이기에게 빼앗기는 것을 싫어한 한신이 무력으로 공격하자 방비를 풀었던 제나라의 군은 패배하게 되어 수도 임치까지 쳐들어 온다. 이에 분노한 전횡과 전광은 역이기를 삶아 죽인다. 그 후 제왕 전광과 초나라 원군 용저는 유수에서 한나라 장수 한신과 전투를 하여 크게 패하고 전사하게 된다. 유수전투에서 전광이 죽자 전횡은 왕이 되어 끝까지 저항을 한다
※ 국사무쌍 한신의 업적, 과하지욕, 천하삼분론, 정족지세, 토사구팽
· 전횡과 병사 오백 명의 자결
이후 계속되는 한신, 조참, 관영의 압박으로 전횡은 양나라 팽월에게 도망 가 그에게 귀속한다. 그 후 유방이 천하를 통일하여 황제가 되자 전횡은 오백 명을 이끌고 동쪽 섬 오호도로 도망을 간다. 그러나 반란을 두려워한 한고조 유방이 끝까지 추격하며 회유와 위협을 하자 마침내 전횡은 빈객 두 명을 데리고 섬에서 나와 낙양의 한고조에게로 가던 중 자결을 하여 목을 내어 놓는다. 이에 한고조는 "한낱 평민이 일어나 세 형제가 번갈아 왕이 되었으니 어찌 어질지 않겠는가!"라고 눈물을 흘리며 장례를 성대히 치러 준다. 이때 장례를 마친 그를 수행하던 빈객 2명이 구덩이를 파고 자살을 한다. 그 후 이 소식을 전해 듣게된 섬에 도망가 있던 나머지 오백 명도 모두 자결을 한다. 아마 동쪽 섬 오호도는 우리나라의 섬인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우리나라 군산시 어청도와 충남 보령시 이연도에 전횡과 그의 부인, 딸을 모신 사당이 있다.
맺음말
우리는 여기에서 제나라의 왕 전담, 전영, 전횡과 유수전투, 오호도, 어청도, 이연도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이들은 순임금의 후손답게 자기가 그냥 왕이 되는 그러한 인물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의리와 도를 지켜 왕위 계승의 정당성을 지키려 하였으며 항우가 제나라 백성들을 학살하자 다시 분연히 일어나 단결하여 저항을 한다. 이렇듯 그들은 백성들로부터 신뢰를 받았던 인물들이었다. 사마천은 "심하구나! 괴통의 계책이 전횡을 혼란스럽게 하고 회음후 한신을 교만에 빠지게 하여 두 사람을 망쳤구나! 전횡의 절개는 고상하여 빈객들마저 그 의리를 사모하여 같이 죽었으니 어찌 이보다 더한 현명함이 있겠는가!"라고 안타까워하며 그의 의리와 절개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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