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제2대 국왕 정종(1357 ~ 1419)은 영안대군 방과(芳果)로 태조 이성계의 둘째 아들이며 어머니는 신의왕후 한 씨이다. 정종실록은 총 6권 1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재위기간 1398년부터 1400년까지 2년 2개월 동안의 역사적 사실을 편년체로 적은 역사서로 정식 명칭은 '공정왕실록'이었으나 숙종 이후 '정종실록'이라고 불리게 된다. '조선왕조실록'은 현재 대한민국 국보 151호로 지정되어 있다.
출생과 활약
· 출생과 활약
방과(정종)는 어머니 신의왕후 한 씨로 태조 이성계의 둘째 아들이다. 그는 아버지의 무인기질을 이어받아 무장으로 활약을 했으며 성품이 인자하고 용기와 지략이 뛰어나고 체구가 크고 강건하며 눈밑에 사마귀가 있었다. 고려말 시절 아버지 이성계와 함께 북방 전투에 참가하였으며, 또한 1377년 그의 나이 20세에 아버지 이성계를 수행하여 지리산까지 진출하여 노략질을 하는 왜구의 침략을 무찌르고, 1389년 해주에서 왜구를 격퇴하고, 황산대첩에도 참전하는 등 많은 공을 세웠다. 그 후 동생 이방원이 정몽주를 척살할 때도 같이 동참한다. 조선 건국 후에는 영안대군으로 임명되어 병권에 관여한다. 그러나 방과는 권력을 추구하는 성향은 아니었다.
제1차 왕자의 난
· 세자책봉과 왕자들의 반발
이성계는 74년을 사는 동안 6명의 부인과 8남 5녀의 13명의 자식을 둔다. 이성계는 1392년 조선의 왕으로 등극하자마자 권문세가의 딸로 조선개국에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한 둘째 부인 계비 강 씨 신덕왕후를 총애한다. 따라서 이성계는 계비 강 씨의 요구를 받아들여 그녀의 소생 2남 1녀(무안대군 방번, 의안대군 방석 그리고 경순공주) 중에 일곱째 아들 방번을 세자로 책봉하려 하자 공신인 배극렴, 조준 등이 아직 어리다고 반대한다. 그러자 이번에는 여덟째 아들인 11세 방석을 세자로 책봉하고 정도전으로 하여금 세자를 가르치게 한다. 이때 장남 방우는 39세이고, 다섯째 아들 방원은 26세이었다. 이에 조선이 개국되기 1년 전에 55세의 나이로 사망한 첫째 부인 한 씨 신의왕후의 소생 6남 2녀(진안대군 방우, 영안대군 방과, 익안대군 방의, 회안대군 방간, 정안대군 방원, 덕안대군 방연 그리고 경신, 경선공주)의 불만이 높아지게 된다. 방원은 맏형이 방우가 세자로 책봉되어야 한다고 강하게 반발한다. 방원은 위화도 회군 때 개경에 최영 부대를 쳐야 한다고 주장하고, 개국을 반대하는 정몽주를 제거하였으며, 왕대비 안 씨를 강압하여 공양왕을 폐위시키고 이성계를 왕으로 만든 일등 공신이다. 따라서 공으로 보면 방원이 세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왕후 강 씨와 정도전 등의 배척으로 군권을 상실하고 개국공신에서도 제외당하는 등 굴욕을 맛보았는데 세자 자리마저 강비의 소생인 방석에게 돌아간 것이다.
· 정도전 일파 밀모설
조선 건국 이후 정도전은 의흥삼군부를 설치하여 중앙집권화한 결과 개국공신의 지위는 급격히 상승하였으나 왕실과 훈신세력은 정치에서 소외되기 시작한다. 정도전은 한고조 유방의 책사 장량에 비유하면서 자신이 이성계를 이용하여 조선을 개국하였다고 공공연히 자랑을 하곤 한다. 그리고 정도전은 신권중심의 왕정을 주장하여 이는 왕족에게 대단히 위협적인 것이었다. 한편 정도전의 배후 세력인 계비 강 씨가 1396년 병으로 죽게 되자 이방원은 정계 복귀를 위한 노력이 본격적으로 추진된다. 그러던 중 병권을 중앙에 집중하던 정도전 일파가 1398년 진법 훈련 강화를 핑계로 왕족의 사병을 해체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방원은 사병마저 빼앗겨버리면 완전히 힘을 잃게 되기 때문에 방의, 방간 등 형제들과 함께 정도전 일파를 살해하기로 결정하고 '정도전 일파 밀모설'을 만든다. 즉 정도전, 남은, 심효생 등이 밀모하여 태조 이성계의 병세가 위독하다고 속이고 한 씨 소생의 왕자들을 궁중에 불려 들여 일거에 살육하려고 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내용이다.
· 제1차 왕자의 난
결국 1398년 8월 25일, 태조 이성계의 등극에 지대한 공을 세웠던 다섯째 아들인 이방원(태종)이 주도한 신의왕후 소생의 왕자들이 사병을 동원하여 '정도전 일파의 밀모'를 사전에 방지한다는 명복으로 이복동생인 세자 이방석과 일곱 번째 아들 방번을 살해하고, 그를 지지하는 정도전, 남은, 심효생 등 반대파 세력들을 제거하고 권력을 장악한다. 이 사건은 전처소생과 후처 소생 간의 권력 다툼으로 '제1차 왕자의 난', '방원의 난', '무인정사', '정도전의 난'이라고 한다. 이방원은 이 난을 통해 조선 초기의 실권을 모두 장악하게 된다.
정종의 등극과 퇴위
· 정종의 등극
거사에 성공한 후 하륜, 이거이 등 방원의 심복들은 방원을 세자로 책봉하려고 하였으나 방원은 극구 사양한다. 따라서 장남인 방우는 1393년에 이미 병으로 죽고 없어서 방원의 뜻에 따라 둘째인 방과가 세자에 책봉되고 1개월 만에 태조가 물러나면서 왕위에 오르게 된다. 당시 와병 중이던 이성계는 처음에 내용을 파악하지 못하다가 나중에 사실을 알고 난 뒤 무척 상심하여 1398년 9월에 둘째 아들 방과(정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상왕으로 물러난다.
· 제2차 왕자의 난
제1차 왕자의 난 이후 2년이 지난 뒤 1400년 1월, 논공행상에 불만을 가진 박포가 방원과 사이가 좋지 않고 왕위 계승에 야심을 가진 방간을 찾아가 "방원이 방간을 죽이려고 한다."라는 거짓 밀고를 한다. 그러자 넷째 아들방간은 박포의 말을 확인도 하지 않고 박포와 함께 사병을 일으켜 이방원에 도전한 사건이다. 이는 비교적 쉽게 진압되어 박포는 사형을 당하고 방간은 체포되어 유배를 당한다. 정종은 이방원을 왕위 계승자로 결정된 동생이라는 뜻인 '세제'로 책봉한다. 방원은 다음 왕위 계승자인 세제의 자리를 확보한다. 이 사건을 '제2차 왕자의 난', '박포의 난', '방간의 난'이라 한다. 특히 두 차례에 걸친 왕자의 난에서 이방원의 승리하여 사병이 혁파되고 모든 군대가 국가의 군대로 통합된다. 그해 11월, 이방원은 정종을 이어 조선의 3대 왕인 태종으로 즉위하고 태조 이성계는 태상왕이 된다.
· 정종의 업적
정종은 1399년 한양의 지형에 문제가 있다고 하여 수도를 다시 개경으로 옮긴다. 분경금지법을 제정하여 관리가 왕실과 외척에 의존하는 것을 금지하여 귀족의 힘을 약화시킨다. 그리고 사병을 혁파하고 병권을 의흥삼군부로 집중시키고, 도평의사사를 의정부로 중추원을 삼군부로 고치면서, 삼군부에 직을 두보 있는 자는 의정부에 합좌하지 못하게 하여 정무와 군정을 분리하는 행정개혁을 한다. 이러한 일련의 개혁은 모두 이방원의 지시하에 이루어진다. 또한 집현전을 설치하고 노비변정도감을 설치하여 노비의 변속을 관리한다.
· 정안왕후 김 씨
정종은 평생 10명의 부인을 만나 17남 8녀의 자식을 둔다. 그는 부인중 정안왕후 김 씨를 젊은 시절부터 사랑하여 정이 더욱 두터워 평생 해로한다. 훗날 정안왕후가 김 씨가 먼저 사망하자 동생 태종이 이를 위로하는 잔치에서 아내 생각에 먼저 잔치를 파하고 돌아갔다는 일화가 있다. 그러나 정안왕후 김 씨와의 사이에서는 자식이 없다.
· 정종의 처세와 퇴위
1400년 11월 정종은 왕위를 동생 방원(태종)에게 양위하고 상왕으로 물러난다. 이는 그의 정비 정안왕후의 간절한 바람이기도 하여 상왕으로 물러나는 것이 목숨을 유지하는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이다. 그 후 그는 인덕궁에 머물며 격구, 사냥, 온천, 연회 등을 즐기며 유유자적하다가 왕위에서 물러난 19년 후 세종원년 1419년에 6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그는 오랫동안 묘호도 없이 '공정대왕'으로 불리다가 숙종 7년 1681년에 이르러 비로소 '정종'이라는 묘호를 받게 된다. 그의 능은 후릉(厚陵)으로 북한 개성시 판문군 령정리에 정안왕후 김 씨의 묘와 같이 쌍릉으로 나란히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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