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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삼국유사

건국신화 - 단군왕검, 박혁거세왕, 김수로왕, 동명왕(주몽), 석탈해왕, 김알지

by 이야기마을촌장 2024. 5. 16.

<삼국유사>는 고려 충렬왕 7년(1281년) 승려 일연이 인각사에서 편찬한 삼국 시대의 야사인 역사서로 전체 5권 9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삼국유사>는 구전으로 전해 지는 설화를 신라와 불교의 관점으로 고려시대에 이르러 문자로 기록하였으며 이에는 단군 신화와 향가 14수가 기록되어 있다. 앞으로 <삼국유사>에 나오는 재미있는 설화나 이야기에 대하여 몇 차례에 걸쳐 다루어 보고자 한다. 여기에서는 일연 <삼국유사>에 나오는 우리나라 건국 및 시조 신화를 알아보자.

건국신화

 

건국 신화

· 단군 신화

단군 신화는 한민족 최초의 나라 고조선의 건국신화로 <삼국유사>, <삼국사기> 등에 기록되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옛날에 환인의 서자 환웅이 인간세상을 구하고자 하니, 환인이 그 뜻을 알고 삼위태백을 내려다보니 인간을 널리 이롭게(홍익인간)할 만한지라, 이에 천부인(天符印) 3개를 주며 가서 다스리게 한다. 환웅이 무리 3천을 이끌고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 밑에 내려와 여기를 신시라고 하니 사람들은 그를 환웅천왕이라 부른다. 그는 풍백, 우사, 운사를 거느리고 곡, 명, 병, 형, 선, 악 등 무릇 인간의 3백 60여 가지의 일을 주관하고 인간세상에 살며 다스리고 교화한다. 이때 곰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같은 굴에서 살면서 환웅에게 사람이 되기를 빈다. 이에 환웅은 신령스러운 쑥 한 타래와 마늘 20개를 주면서 이르기를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아니하면 곧 사람이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곰과 호랑이가 이것을 받아서 먹고 기도를 하였는데 삼칠일(21일) 만에 곰은 여자의 몸이 되었으나 범은 견디지 못하여 사람이 되지 못한다. 곰이 사람으로 변한 웅녀(熊女)는 혼인할 사람이 없어 신단수 아래에서 아이를 가지기를 기도한다. 이에 환웅이 이에 잠시 사람으로 변해 결혼하여 웅녀는 아이를 출산하다. 웅녀는 출산한 아들의 이름을 단군왕검(檀君王儉)이라 짓는다. 단군왕검은 즉위한 지 50년인 경인년에 평양성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의 이름을 조선(朝鮮)이라 칭한다.

 

· 박혁거세왕의 신화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제왕운기>에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진한 땅의 육부 촌장들이 군왕을 정하여 받들고자 알천 상류에 모여 멀리 남쪽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양산 기슭에 있는 나정이라는 우물가에 번개와 같은 이상한 기운이 드리워진 흰말이 엎드려 절하고 있었다. 찾아가 보니 자줏빛 알이 있고 말은 사람들을 보자 길게 울고는 하늘로 올라갔다. 그 알에서 사내아이가 나오매, 경이롭게 여기면서 동천 샘에 목욕시키니 온몸에서 빛살을 뿜는 것이었다. 이때 새와 짐승이 더불어 춤추고 하늘과 땅이 흔들리고 해와 달이 청명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혁거세라 이름을 짓는다. 같은 날에 사량리 알영 우물가에 계룡이 나타나 그 왼쪽 겨드랑이로 딸아이를 낳으니 그 용모가 수려하였으나 입술이 꼭 닭의 부리와 같았다. 이내 월성의 북천에서 목욕을 시키자 입부리가 떨어졌다. 궁실을 남산 서쪽 기슭에 세우고 두 신성스러운 아이를 봉양하였다. 사내아이는 알에서 태어났으되, 알이 박과 같으므로 그 성을 박 씨로 삼았다. 딸아이는 그녀가 태어난 우물 이름을 따서 알영을 이름으로 삼았다. 그들의 나이가 열셋이 되자 각기 왕과 왕후로 삼고 나라 이름을 서라벌 혹은 사로라고 일컬었다. 왕이 계정에서 태어났으므로 더러 계림국이라고도 하였으나 뒤에 신라로 고친다. 박혁거세왕은 예순한 해 동안 나라를 다스리다 하늘에 올랐는데 칠일 뒤에 그 주검이 땅에 떨어져 다섯 조각으로 흩어졌다. 왕후 또한 죽으매, 나라 사람들이 합쳐서 묻고자 하였으나 큰 뱀이 나타나 사람들을 쫓으면서 방해하였다. 따라서 5체를 다섯 능에 묻고 사릉(蛇陵)이라고 이름을 지었으며 지금의 오릉이 된다. 하지만, 이러한 전설과는 별개로, 오릉의 무덤 형태가 신라에서 4세기 이후에 등장하는 것이기 때문 오릉은 실제로 5세기 이후의 무덤 고분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설이다. 오릉 주변에는 알영정과 사당인 숭덕전이 위치하고 있다.

 

· 김수로왕의 신화

금관가야의 시조 김수로왕의 신화는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전해져 내려온다. 변한의 구야국 왕들인 9명의 간(干)들에게 하늘에서부터 "너희들의 왕을 내려 보낸다"라는 계시를 주고 왕을 내려보내기 위해선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그러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라는 노래를 부르라고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늘의 계시를 들은 가락국 9명의 간들과 2백3명의 백성들이 김해의 구지봉(龜旨峰)에 올라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춤을 추면서 하늘에서 들려온 말대로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그러지 않으면 구워서 먹으리"라고 구지가를 불렀다. 변한의 구야국 백성들이 모여들며 노랫소리가 커지자 하늘에서 빛이 나더니 곧 붉은 보자기에 싸인 금빛 상자가 내려오고, 그 안에 둥근 여섯의 황금 알이 들어있었다. 12일 후 이들 금알에서 사내아이들이 태어났는데, 그 알 속에서 나온 아기들이 6가야국의 왕이 되었으며, 그 가운데 키가 9척이며 제일 먼저 알에서 깨어난 아이가 ‘수로’라는 이름으로 불린 김해 김씨의 시조이자 금관가야를 세우게 된인물이다. 

 

· 동명왕의 신화

동명왕은 고구려의 시조로 ‘주몽(朱蒙)신화’라고도 한다. 신화는 <동국이상국집>, <삼국유사>, <삼국사기>, <광개토왕릉비문>, <동국여지승람>, <청장관전서> 등에 수록되어 있다. 주몽은 하늘의 신인 해모수를 아버지로, 강물의 신인 하백의 딸 유화를 어머니로 하여 알에서 태어난다. 그 어머니가 몸을 의지하고 있던 부여왕조의 금와왕은 그 큰 알을 버리게 하였지만, 짐승과 새들이 알을 보호하였다. 왕이 직접 그것을 깨뜨리려 하였으나 깨지지 않으므로 할 수 없이 그 어머니에게 돌려주었다. 어머니가 그 알을 싸서 따뜻한 곳에 두었는데 알 속에서 한 아기가 태어났다. 그 아기는 매우 출중하고, 특히 활을 잘 쏘았으므로 사람들이 그를 활 잘 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주몽’이라고 불렀다. 금와왕의 일곱 왕자들은 주몽을 시기하여 없애려고 하였다. 주몽의 어머니는 계략을 써서 주몽이 기르고 있던 왕실의 말들 가운데에서 가장 좋은 것을 차지하게 하고, 주몽에게 몸을 피하여 큰일을 도모하게 하였다. 주몽이 도망하여 엄수(개사수)에 도달하였으나 왕자들의 추격이 급박하였다. 주몽은 물을 향해서 “내가 천제의 아들이고 강의 신의 외손자인데 이제 이 추격을 어찌하리오.” 하고 말하자 고기 떼와 자라들이 다리를 놓아 추격을 면하게 되었다. 주몽은 남쪽으로 달아나서 졸본에 도착하여 작은 집을 엮어 나라의 기틀로 삼고 나라 이름을 고구려라고 하였다.

 

 

시조 신화

· 석탈해왕의 신화

신라의 4대 왕인 탈해는 석(昔)씨의 시조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다음과 같은 신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남해왕 때에 아진포에 혁거세왕에게 해산물을 바치던 '아진의선'이라는 노파가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문득 바다에서 까치들이 떼를 지어 날며 우짖고 있음을 보았다. 이상히 여긴 노파가 살펴보았더니 거기에 배 한 척이 있었고 배 안에 큰 궤짝이 있었다. 궤짝을 열어보니, 그 속에 단정하게 생긴 한 사내아이와 그 밖에 여러 보물, 노비들이 들어 있었다. 그 사내아이를 7일 동안 보살펴 주자, 스스로 입을 열어 말하기를 “나는 본디 용성국 사람이다. 그 나라의 왕비에게서 알로 태어났으므로 버림을 받아 이곳에 닿았다.”라고 하였다. 그 아이는 말을 마치자 지팡이를 끌고 두 사람의 종과 더불어 토함산에 올라가 거기다 돌무덤을 파고 7일 동안 머물렀다. 그런 뒤에 산을 내려와 성 안을 살펴 살 만한 곳을 물색하던 중 호공의 집에 다다랐다. 그는 호공의 집 곁에 남몰래 숫돌과 숯을 묻고서, 이튿날 아침 관가에다 그 집은 자신의 조상이 대대로 살았던 집이었는데 자신이 잠시 집을 비운 사이 호공이 들어와 차지한 것이라고 송사를 제기하였다. 그리고 그는 숫돌과 숯을 증거물로 제시하여 그 집을 차지하게 된다. 그 소문이 나자 남해왕은 탈해가 슬기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여 그를 맏공주와 배필이 되게 하였다.

 

· 김알지의 신화

알지는 김(金)씨의 시조로 <삼국유사>, <삼국사기>에 수록되어 있다. 영평 3년 경신 8월 4일에 호공이 밤에 월성 서리를 지나다가 큰 빛이 시림 속에 비침을 보았다. 붉은 구름이 하늘로부터 땅으로 뻗쳤는데, 구름 한가운데 황금 궤짝이 나무 끝에 걸려 있었고, 빛은 그 궤로부터 흘러나오고 있었다. 또한, 흰 닭이 그 나무 밑에서 울고 있었다. 왕에게 이를 아룀에 왕은 그 숲으로 가서 궤를 열어 보니 어린 남자 하나가 누워 있다가 곧 일어났다. 이름을  우리말의 어린애를 뜻하는 알지라고 짓었다. 이 아이를 안고 대궐로 돌아오니 뭇새와 짐승들이 서로 따르고 기뻐하여 모두 뛰어놀았다. 왕은 알지를 태자로 책봉하였으나 뒤에 파사에게 사양하여 왕위에 오르지 않았다. 금궤에서 나왔다 하여 성을 김씨라 하였다. 알지는 열한을 낳고, 열한은 아도를 낳고, 아도는 수류를 낳고, 수류는 욱부를 낳고, 욱부는 구도를 낳고, 구도는 미추(未鄒)를 낳았으며, 이 미추가 왕위에 오르니 신라의 김씨는 알지로부터 시작되었다.

 

 

※ 지면관계상 이어지는 내용은 다음 시간에 계속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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