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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삼국지

신야성 전투와 상산 조자룡의 활약, 유표 유기 유종, 감부인 미부인 아두

by 이야기마을촌장 2024. 3. 19.

조조는 박망파 전투에서 10만의 군사로 패배하게 되자 직접 50만의 군사를 일으켜 유비가 차지한 형주를 정벌하기에 나서게 된다. 결국 신야성전투가 벌어진다. 이 전투는 우리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 벌어진 전투가 아니고 <삼국지연의>를 쓴 나관중에 의해 창작된 전쟁이다. 여기에서는 박망파 전투 이후에 벌어지는 이야기인 신야성 전투(AD 207)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하자.

신야성전투

 

신야성 전투

· 유표의 사망

조조가 대군을 이끌고 형주로 오고 있을 때 형주의 주인인 유표는 나이가 많아 큰아들 유기를 후계자로 하고 유비를 보좌하라고 유언을 남기고 죽는다. 평소 유표는 덕으로 다스리는 유비에게 형주를 맡아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그러나 그의 둘째 채부인은 자기가 낳은 아들인 둘째 아들 14살짜리 유종을 후계자로 한 거짓 유서를 만들고 유비에게 부고도 하지 않고 장례를 치른다. 그러자 큰아들 유기는 목숨이 위태로워 성밖으로 도망을 간다. 조조가 50만 대군을 이끌고 온다는 소리를 들은 채부인은 아들 유종에게 항복하라고 말하며 조조에게 양양성으로 오면 형주의 인장을 바치겠다고 한다. 이러한 소문이 유비의 진영에 알려지게 되자 장비는 당장 형주를 치자고 하자 유비는 유표와의 의리로 조카 유종을 끌어내리고 형주를 차지할 수 없다고 말하며 우선 수비가 용이한 요충지인 번성으로 내려가자고 한다. 

 

· 신야성 전투

번성으로 내려간다고 신야성의 백성들에게 알리자 남녀노소 모두 따른다고 짐을 꾸린다. 이에 제갈공명은 조조의 추격을 늦추기 위해 조자룡 장군에게 군사 3000명을 주어 염초와 유황 가루 마른 짚을, 관우 장군에게 군사 1000명을 주어 모래와 진흙을 담을 포대를 준비하게 하여 백하강 상류에 가서 신야에서 불이 오르는 것을 기다리라고 명령한다. 그리고 장비 장군에게는 군사 1000명을 주어 백하강 하류에서 큰 물소리를 기다리라고 말하고, 다른 장수에게 군사 500명을 주어 푸른 깃발과 붉은 깃발을 준비하여 조조군이 신야성에 오기 전에 숲에서 신호를 기다리라고 명령한다. 한편 조조군 50만 중 선발대 10만이 신야성 가까이에 온다. 먼저 선발대의 철갑 기병을 끌고 허저 장군이 폭풍처럼 돌격하면서 보니 푸른 깃발과 붉은 깃발이 두 갈래로 갈라지면서 이동한다. 허저는 지난번 박망파의 전투에서 패배하였으므로 매복이 두려워 추격을 못하고 지켜보다가 정찰병을 보낸다. 허저는 그것이 진군 속도를 늦추는 계략이라는 것을 뒤늦게 파악하고 분노한다. 날이 점점 저물어지자 허저는 지친 군사들을 이끌고 신야성 앞에 이르자 신야성 안이 텅텅 비어있어 성안에서 야영을 하기로 한다. 밤이 어두워지자 성안에서 불이 일어난다. 조자룡이 염초와 유황으로 칠하여 놓고 마른 짚으로 뿌려놓아 불길이 순식간에 퍼져 나간다. 당황한 허저의 군사들은 불이 붙지 않은 동문으로 피하자 조자룡의 군대가 공격하여 허저의 군사들을 살육한다. 겨우 도망친 군사들이 백하강에 도달하여 강을 건너자 갑자기 강물이 불어나 그들을 덮친다. 관우가 모래와 진흙을 담은 포대로 막아 놓았던 강물을 터뜨린 것이다. 대부분의 군사들이 빠져 죽고 겨우 살아남은 군사들이 강기슭에 오르자 이번에는 장비가 공격하여 남은 군사들을 도륙한다. 이렇듯이 신야성 전투는 10만의 허저의 군사들이 화공과 수공으로 대부분 섬멸된 제갈공명의 두 번째 전투이다.

 

 

상산 조자룡의 활약

· 유비의 도망

유비는 신야성 전투에서 10만의 허저의 군사들을 죽여 시간을 벌었으나 아직 조조에게는 40만의 군사들이 남아 있었다. 그들이 추격해 오자 번성에 무사히 도착하였으나 번성은 작은 성이라서 조조의 군사를 막을 수가 없어 번성을 지나 형주의 양양성으로 향한다. 그러자 번성의 백성들도 그들을 따라나선다. 유비가 양양성에 도착하자 채부인과 유종이 성문을 굳게 닫고 문을 열어 주지 않는다. 유비 일행은 할 수 없이 그래도 수비에 용이한 형주의 강릉으로 향한다. 많은 백성들과 노약자들로 행군하는 속도가 늦어져 위험해지자 제갈공명이 대표로 유비에게 "속도가 늦어지니 백성들을 과감히 포기하고 가야 됩니다. 연민에 싸여 우를 범하면 안 됩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유비는 "공명선생, 민심을 잃고 어찌 천하를 얻을 수가 있겠습니까? 나는 백성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라고 대답한다. 제갈공명은 유비의 덕에 크게 감명을 받아 그를 존경하게 된다. 한편 조조는 양양성에서 채부인과 아들 유종의 항복을 받고 정예군 5000명을 조직해 유비를 추격해 온다. 나중에 채부인과 유종은 조조가 지방 청주로 보냈다가 암살한다. 

 

· 조자룡의 활약

유비 일행은 조조의 정예군에게 결국 따라 잡히게 된다. 그러자 유비는 직접 군사 2000명을 데리고 후방을 막아보려 하였으나 군사들은 하나둘 죽고 백성들은 도망치며 아비규환이 된다. 이러자 장비는 백성을 두고 떠나지 않으려는 유비를 둘러업고 도망을 친다. 제갈공명은 조자룡에게 유비의 가족을 부탁하며 유비를 호위하며 같이 도망을 간다. 난리통에 조자룡은 유비 가족을 놓치자 날랜 군사 10명을 데리고 전장을 누비며 유비의 두 부인 미부인감부인을 찾아다닌다. 피난 가는 백성들 사이에서 감부인을 발견하고 10명의 군사를 호위병으로 하여 유비에게 보낸다. 그리고 조자룡은 혼자서 미부인과 감부인의 아들 아두를 찾아 나서 헤매다 어깨에 창을 맞고 피를 흘리며 아두를 안고 있는 미부인을 만난다. 미부인은 자기로 인해 조조의 군사에게 잡힐 수 있다는 생각에 스스로 우물에 뛰어든다. 조자룡은 할 수 없이 우물을 향해 두 번 절한 후 아두를 안고 미친 듯이 칼을 휘두르며 적진을 정면돌파한다. 이 모습을 조조가 보고 자기 수하로 만들고 싶어 "절대 죽이지 말고 생포하라."라고 말한다. 조조의 명을 받은 병사들은 함부로 창을 찌르지 못하고 주춤하자 조자룡은 기적처럼 적진을 뚫고 유비의 진영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유비에게 "미부인을 지키지 못하였으니 죽여주십시오."라고 말한다. 그러자 유비는 "어린놈 하나 때문에 소중한 사람을 잃을 뻔하였다."라고 대답하며 조자룡에게 고마워한다.  조자룡은 자기를 소중히 생가하는 유비에게 눈물을 흘리며 충성을 맹세한다.

 

 

맺음말

우리는 여기에서 신야성 전투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신야성 전투는 실제의 역사적인 사건이 아니지만 <삼국지연의>를 쓴 나관중이 촉나라 유비의 입장에서 재미있게 각색하여 창작한 이야기이다. 전투를 살펴보면  5000명의 군사로 10만의 조조의 군사를 완벽하게 섬멸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제갈공명의 신출귀몰한 전략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유비가 추격하는 조조의 군사들에게 잡히면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10만이나 되는 늙은 노인, 아이, 여자들을 포함한 백성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같이 도망치는 장면은 유비의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잘 묘사한다. 그리고 상산 조자룡이 유비의 아들 아두를 구하여 한 손에 유비의 아들 아두를 안고 미친 듯이 칼을 휘두르며 말을 달려 적진을 돌파한다. 이 장면은 조자룡이 주군 유비에게 목숨을 기꺼이 바치는 충성심을 보여주어 많은 독자들로 하여금 통쾌하고 눈물이 흐를 정도의 멋진 명장면으로 기억되게 한다. 

유비의 형주 탈출, 강동의 손권, 유비와 손권의 동맹, 제갈공명의 외교

 

유비의 형주 탈출, 강동의 손권, 유비와 손권의 동맹, 제갈공명의 외교

조조는 박망파 전투에서 10만의 군사로 패배하게 되자 직접 50만의 군사를 일으켜 유비와 형주 정벌에 나서게 된다. 신야성 전투에서 유비는 조조의 장수 허저의 10만을 죽이고 승리하여도 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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