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러시아 문학의 새로운 기수인 소설가 바실리 악쇼노프는 1960년 중편소설 <동기생>을 발표하고 일약 스타로 젊은이들에게 유명세를 타게 된다. 그의 단편소설 <달로 가는 도중에>는 벌목장 트럭 운전사 발레리 키르피첸코가 스튜어디스 타냐를 보고 첫눈에 반해 모스크바와 하바롭스크를 반복해서 비행기를 타면서 남은 휴가와 돈을 모두 써버린다는 이야기이다. 주인공은 이상하리만치 한 번도 제대로 말을 걸어보지도 않고 그저 그녀를 보고싶어 주위를 맴돈다. 여기에서는 바실리 악쇼노프의 <달로 가는 도중에>에 대하여 작가소개와 줄거리 그리고 주인공의 감정변화에 대하여 알아 보기로 하자.
작가 소개
바실리 악쇼노프(1932~2009)는 러시아 카잔에서 태어난 소설가로 1960년대 러시아 문학의 새로운 기수가 된다. 그는 1960년에 중편소설 <동기생>, 장편소설 <별나라로 가는 차표>, 단편소설 <달로 가는 도중에> 등의 작품을 연이어 발표한다. 그는 초기 작품에서 새로운 세대에 대한 대담한 표현으로 젊은 층의 지지를 받으나 소련 체제하에서 보수 비평가로부터 혹평을 받게 되어 1980년 미국으로 건너간다. 이후 작품인 <강철새>, <화상(火像)> 등은 현대 소련을 다루면서도 다분히 실험적 성향을 보여 현대 러시아문학 속의 ‘서유럽파’라고도 불리게 된다.
줄거리
사람들은 누구나가 다 찰나의 순간에 누군가와 마법과 같이 사랑에 빠지게 되는 일이 있다. 그리고 빼어난 외모나 타고난 힘, 출중한 재주, 깊은 정신세계와 지식, 엄청난 재력, ‘팜므파탈’ 같은 성적 매력 등과 같은 것 앞에서도 쉽게 공손해지고, 호기심과 경외감을 느끼며 드물게는 ‘유사’ 사랑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러시아 작가 바실리 악쇼노프의 소설 <달로 가는 도중에>에 등장하는 주인공 발레리 키르피첸코도 이러한 경우와 비슷하게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지게 된 경우이다.
· 줄거리
유배지로 유명한 사할린 벌목현장에서 트럭 운전사로 일하는 주인공 발레리 키르피첸코는 어린 시절 부모를 모두 잃고 고아원과 군대, 수용소를 거쳐 현장 합숙소까지 거친 생활을 이어왔다. 그런 그가 한달 휴가를 받아 중간 기착지인 모스크바에서 정장 세벌을 사고 흑해 연안으로 휴가를 가려고 모스크바행 비행기를 타려고 유즈니 공항으로 간다. 유즈니 공항에서 그는 동료 바닌을 만나 술과 식료품을 잔뜩 사가지고 바닌의 누이 라리사의 집을 방문한다. 그곳에서 3일 동안 술을 먹고 지내다 라리사의 사랑고백을 받게 되는데 뿌리치고 공항으로 가서 모스크바행 비행기를 탄다. 그는 여름 휴양지로 가던 비행기 안에서 스튜디어스 타냐에게 첫눈에 반해 환상에 빠진게 된다. 그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 모스크바와 하바롭스크를 반복해서 비행기를 타면서 남은 휴가와 돈을 모두 써버린다. 심지어 그녀에게 선물할 '오월의 첫날'이라는 향수까지 준비하고 다닌다. 결국 그는 하바롭스크 공항에서 벌목장 사할린으로 되돌아가는 중에 타냐를 만난다. 공항 한모퉁이에서 사탕을 나누어 주며 웃고 있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주인공은 동료 마네비치에게 달까지 거리가 얼마나 되는 지를 묻는다. 그는 앞으로 벌목장에서 그녀를 생각하리라고 상념에 잠기며 여행가방을 들고 일어난다.
· 주인공의 감정의 변화
이 이야기에서 인상적인 것은 주인공의 감정의 변화이다. 작가는 수사적이거나 감상적인 과장 없이, 그저 담담하게 대화하는 것처럼 전지적 관점으로 그를 들여다본다. 주인공 발레리는 몇 마디 타냐와의 가벼운 대화만을 나누었지만 그녀를 보고 싶어 그녀를 찾아 주위을 방황한다. 결국 주인공은 그녀를 가까이 하기 어려운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달에 있는 사람'으로 승격시킨다. 유배생활 같은 벌목장에서 떠나 1년에 단 한 번 평소라면 술, 도박 외엔 쓸 곳도 없는 돈을 탕진하러 가는 목적 없는 휴가를 보내기 위해, 매사에 거침없던 그가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비행기 표를 끊는다. 비행기 안에서 스튜어디스 타냐를 만나 첫눈에 반한다. 그후 그년를 만나기 위해 주변을 맴돈다. 그녀와 우연히 마주쳐도 눈인사 이상 접근해 말을 걸어 볼 마음이 없다. 그저 양복을 사고 책을 읽고 공항과 모스크바 시내를 어슬렁거리고, 그녀가 있을지도 모르는 같은 노선 비행기를 갈아타며 마음은 공중으로 붕뜬다. 휴가는 그것으로 빠르게 지나간다. 하바롭스크와 모스크바를 오가며 여기가 어딘지 몇 시인지 감각을 잃을 정도가 된다. 태어나 이만큼 많은 책을 읽고, 자신의 삶에 대해 생각하고, 느닷없이 울어본 적이 없다. 이처럼 멋진 휴가를 보냈다고 생각한 적이 없을 만큼 만족스럽다. 그렇게 다시 벌목현장으로 돌아오는 그에게는 아무런 감정변화도 없다. 사할린에서 유즈니를 거쳐 하바롭스크와 모스크바까지 그간 비행기로 오간 거리를 계산하며, 갈 수 없는 저 달과의 거리(약 38만km)를 비교하면서. 그녀라는 ‘달’에 닿는 거리를 가늠한다. 주인공은 “그렇게 멀진 않은데. ... 아무것도 아니군.”라고 중얼거린다. 공항에서 멀찍이 타냐를 바라 보면서 “트럭을 몰고 능선으로 올라가는 동안 그녀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일단 능선에 올라가면 너무도 생각해야 될 일이 많아서 그녀에 대한 생각은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산허리까지 내려오게 되면 다시금 그녀 생각이 나리라. 그리고는 저녁 내내 그리고 밤새도록 그녀 생각을 하게 되리라. 다음 날 아침에는 그녀를 생각하면서 잠에서 깨어나리라.”라고 상념에 잠기면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맺음말
우리는 여기에서 바실리 악쇼노프의 <달로 가는 도중에>에 대하여 알아 보았다. 작품 속의 주인공 발레리 키르피첸코는 아무런 감정 변화도 없이 그저 자기가 좋아하는 스튜어디스 타냐를 바라보기만 한다. 바보스럽게 그녀의 주변을 맴돈다. 그렇게 시간과 돈을 다 써 버려도 마냥 좋기만 하다. 이러한 주인공의 감정변화를 작가는 담담하게 써내려가고 있다. 주인공 발레리는 선물로 준비한 향수 '오월의 첫날'을 타냐에게 주지도 않는다. 그냥 준비하고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고 마음은 하늘에 붕 떠있다. 주인공은 마지막에 멀리서 사탕을 나누어 주는 타냐를 보고도 가까이 가서 말을 걸지 않는다. 그리고는 동료 마네비치에게 달까지 거리가 얼마나 되는 지를 묻는다. 주인공은 마음속으로 그녀를 가까이 하기 어려운 달에 있는 여인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러고서도 벌목장에 돌아가서 계속하여 그녀를 생각하리라고 한다. 이러한 사랑을 순수한 사랑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한 부분이 있다. 작가 바실리 악쇼노프는 독자들로 하여금 '주인공의 타냐에 대한 사랑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깊은 생각에 빠지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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