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실존을 추구하는 ‘시대의 지성’ 오에 겐자부로는 그의 대표작 <만엔 원년의 풋볼>으로 1994년 노벨문학상 수상한다. 작품은 1860년(만엔 원년) 농민 봉기부터 태평양전쟁에서 패배한 1945년과 일미안보조약 체결에 반대하는 안보투쟁이 벌어진 1960년의 풋볼 팀 구성까지 약 100년에 걸친 한 가문의 역사를 그린 이야기이다. 시코쿠 산골 마을로 귀향한 미쓰사부로와 다카시 형제가 마음속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으로 전개된다. 작가는 작품 <만엔 원년의 풋볼>을 통해 전후 일본 문학에 있어서 인간의 상처와 치유의 문제를 독보적인 서사와 공동체에 대한 문제의식, 긍정적인 휴머니즘으로 진정한 자기 구원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오에 겐자부로의 <만엔 원년의 풋볼>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작가 소개
오에 겐자부로(1935 ~ 2023)는 일본 시코쿠 에히메현 출신으로 도쿄대학 불문학과를 졸업하고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 전후 문학을 이끌어 간 소설가이자 사회 운동가이다. 그는 국수주의를 비판하고 반전 및 평화운동을 지지한 사회 운동가로 일본문학의 진보주의 평화주의 운동을 펼쳐 타자와의 공존을 위해 노력하는 인간상을 그려내어 일본에서 두 번째로 1994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다. 그는 좌파, 진보적 성향을 띠며 천황제 폐지를 주장하며 평화 헌법을 지지한다. 그의 작품으로 <만엔원년의 풋볼>, <체인지링>, <나의 나무 아래에서>, <개인적인 체험>, <하마에게 물리다> 등이 있다.
줄거리
· 네도코로 형제의 귀향
‘안보 투쟁’으로 혼란에 빠진 1960년 일본을 배경으로 추한 외모에 초등학생 무리가 던진 돌멩이에 맞아 오른쪽 눈의 시력을 상실한 주인공 네도코로 미쓰사부로(미쓰)는 안보투쟁 현장에서 머리를 다친 후 정신이상을 앓는 친구의 엽기적인 자살로 깊은 충격에 빠진다. 그에게는 안보 투쟁에도 참여했던 전향한 학생운동가인 동생 네도코로 다카시(다카), 머리에 혹이 달린 채 태어나 수술을 받아 보호시설에 맡겨진 아이, 그런 아기를 출산한 충격으로 위스키에 의존하며 살아가는 아내 나쓰코가 있다. 어느 날 미쓰사부로는 ‘정체성을 찾고 새롭게 시작하자’는 동생 다카시의 제안을 받아들여, 아내와 함께 고향인 만엔 원년(1860년)에 농민 봉기가 일어났던 산골 마을 시코쿠로 돌아온다. 미쓰사부로와 다카시 형제가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소문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을 청년들이 키운 수천 마리 닭이 갑자기 죽자, 그들은 다카시를 찾아와 슈퍼마켓 천황에게 부탁하여 처리방법을 알아달라고 부탁한다. 마을 청년들은 닭을 소각하여 처분하라고 하는 그의 말을 듣고 다소 실망한다.
· 네도코로 형제의 견해 차이
그 일이 있은 후 미쓰사부로와 다카시 형제는 만엔 원년의 농민봉기를 주도한 증조부 동생의 봉기 후 삶을 알아보기로 작정한다. 다카시는 증조부가 자신의 안위를 위해 봉기의 주동자였던 동생을 살해한 것으로 알고 있으나, 미쓰사부로는 증조부가 동생을 고치현으로 도망치도록 하고, 도쿄로 간 증조부의 동생은 개명하여 메이지 신정부의 고관이 된 것으로 알고 있다. 두 사람의 기억은 둘째 형 S의 죽음에서도 다르게 생각한다. 대학을 졸업한 큰형은 자발적으로 입대해 전사했고, 예과연습생에 지원한 S형은 전쟁이 끝난 후 귀환하여 패전의 혼란 속에 조선인부락 습격 사건에 휘말려 죽고 만다. 다카시는 이런 S형에 대해 습격을 주도하다가 죽은 영웅으로 기억하고 있고, 미쓰사부로는 조선인부락 습격에 동참한 무법자들이 조선인을 죽인 후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체구도 작고 가장 약한 S형을 희생양으로 삼아 죽은 것이라 믿고 있다. 작가 오에 겐자부로는 이러한 상반되는 기억을 통해 네도코로 집안의 100년의 역사 속에 죽어간 자들을 독자들로 하여금 재평가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즉 그러한 사람으로는 100년 전 농민봉기의 지도자였던 증조부 형제, 일본제국의 아시아 침탈기에 만주에서 정체 모를 일을 하다가 죽은 아버지, 태평양전쟁에 참전해 필리핀에서 전사한 맏형, 패전 직후 조선인부락을 습격하다가 죽은 S형, 자살한 여동생, 광기에 사로잡혀 죽은 어머니다. 그리고 네도코로 다카시가 증조부의 동생과 S형에 자기동일화함으로써 증조부의 동생-S형-다카시로 연결되는 네도코로 집안 영웅의 계보는 1860년(만엔 원년의 농민 봉기)-1945년(태평양전쟁)-1960년(60년 안보투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100년의 역사는 '폭력적인 것'으로 점철되어 있다. 귀향한 후에는 조선인이 경영하는 슈퍼마켓 약탈을 주도하고 약탈의 책임을 지듯 자살해 버린 다카시의 삶 또한 폭력 그 자체이다. 소설 속 등장인물은 저마다 폭력으로 인해 고통을 받는 인간으로 그려지고 있다. 작가 오에 겐자부로는 반폭력적이고 비행동적이며 방관자적인 인간인 미쓰사부로와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행동형 인간인 다카시라는 인물을 대조시켜 보여주고 있다. 다카시는 폭력적인 인간으로서 자신을 정당화시키려는 욕구와 자기를 처벌하려는 욕구 사이에서 고통스러워한다. 그는 백치 여동생과의 근친상간으로 임신한 여동생을 자살로 몰고 간 죄의식 때문에 자신의 죄를 폭로한 후 가장 폭력적인 방법인 곳간 방에서 엽총으로 스스로를 처벌하는 자살을 택한다.
· 다카시의 슈퍼마켓 습격과 사망
다카시는 증조부의 동생이 에도막부의 과도한 세금과 부역에 저항하여 일으킨 농민봉기를 지도한 것처럼, 마을의 경제적 지배자인 조선인 '슈퍼마켓 황제' 백승기에 대항하기 위해 마을 청년들을 모아 풋볼 훈련시킨다는 핑계로 조직 훈련을 시켜 슈퍼마켓을 습격한다. 그리고 마을 사람 모두 약탈에 동참하도록 하고 물건의 재고를 풋볼 멤버들이 관리하도록 한다. 다카시의 풋볼팀이 강에 떠내려간 아이를 구하는 장면을 보던 미쓰에게 부촌장은 다카시가 미쓰를 속이고 고향집을 이미 팔았다고 말해준다. 미쓰는 이 골짜기에서 일어나는 일에 외부인간이 되기로 결심하고 아내 나쓰코에게 도시로 돌아가자고 말하나 아내는 거절한다. 눈으로 인해 발이 묶여 곳간채 2층에 혼자 지낸다. 목숨을 구하였던 아이의 아버지는 사례로 엽총을 다카시에게 보낸다. 동생 다카시의 여자 친구인 모모코는 엽총을 보고 폭동에 대해 두려움과 회의를 느끼게 된다. 우란분 염불춤에 나오는 증조부의 동생과 같이 되려고 다까시는 계획대로 한 단계씩 차근차근 준비해 나간다. 그러나 형 미쓰는 젊은 주지가 준 편지를 보고 증조부의 동생은 혼자 도망가 잘 살았다는 증거가 확실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어느 날 저녁 미쓰는 다카시가 눈 위에 벌거벗고 성기가 발기한 채로 원을 그리며 달리는 모습을 보게 된다. 미쓰는 다카시가 자신의 아내 나쓰코와 관계를 가지는 것을 호시를 통해 듣고도 모르는 채 한다. 하루는 동생 다카시와 그를 따르던 이들이 처녀를 강간하려다 돌로 죽인 사건을 나쓰코가 찾아와 미쓰에게 이야기해 준다. 다카시는 자신이 마을 처녀를 강간하려다 죽였고, 그걸 은둔자 기이치로(기이)가 봤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자신이 구해준 아이의 아버지가 가져다준 엽총을 가지고 곳간 방에 숨어든 다카시는 '자신이 여동생을 근친상간했고 그로 인해 임신한 여동생이 자살했다'는 진실을 털어놓으며 슈퍼마켓 약탈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듯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이러한 다카시에 대해 미쓰사부로는 '진실이 무엇인지에 대해 외치나 행동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신념과 의지를 관철시킨 다카시는 자살로써 자신의 죄를 극복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 증조부 동생의 진실과 새 출발
그 후 눈이 녹고 길이 열리자 슈퍼마켓 황제 백승기는 모든 일을 불문에 부치고 네도코로 집안의 100년의 역사를 상징하는 건물을 해체하는 과정에 곳간 방을 허물다 발견한 밀실을 미쓰에게 보여준다. 증조부의 동생은 봉기 후 동지들을 저버리고 혼자 도망친 것이 아니라 곳간 지하에 숨어 끝까지 전향하지 않고 살아남아 스스로 20년 넘는 유폐생활 끝에 죽었던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미쓰는 눈물을 흘리며 다카시를 이해하지 않은 자신을 원망한다. 그는 증조부의 동생과 다카시에 대한 자신의 '판결'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고, 모든 사태를 방관자적인 입장에서 바라보기만 하였던 자신이 이제 '재심'을 받을 차례라고 생각한다. '재심'의 판결은 네도코로 집안의 살아남은 혈족으로서 미쓰사부로가 어떠한 삶을 살아가느냐에 달려 있다. 다카의 아이를 임신한 부인 나쓰코는 미쓰에게 장애인 아이와 배속에 있는 아이를 함께 키우며 다시 시작하자고 이야기한다. 슈퍼마켓은 정상화가 되고 다카시의 추종자이던 호시오는 모모코와 결혼하겠다며 떠난다. 미쓰와 아내 나쓰코는 우란분 염불춤에 필요하다는 다카시의 옷을 마을 사람에게 주고, 미쓰는 교수 자리 대신에 아프리카 파견 자리를 선택하여 '기대'라는 이름의 코끼리를 만나고 '풀로 만든 집'을 찾기 위해서 아프리카에 통역사의 길을 떠난다.
맺음말
우리는 여기에서 오에 겐자부로의 <만엔 원년의 풋볼>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소설이 발표된 1967년은 근대화에 성공한 메이지 유신 100년(1968년)을 기념하기 위한 '메이지 백년제' 준비로 술렁이던 시기다. 작품 <만엔 원년의 풋볼>은 한 가문의 갈등의 역사뿐 아니라 폭력으로 얼룩진 일본의 근대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현대 일본인의 구원의 방향을 제시한 ‘그로테스크한 리얼리즘’ 문학의 소설이다. 작가는 인간의 폭력성이 인간의 내면에 잠재된 본질적인 성향이라면 폭력성에 대항하여 "죽음은 단순한 폭력의 희생으로서 죽음이 아니라 진실을 위한 자발적 선택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오에 겐자부로는 2005년 서울국제문학포럼에 참석해 "노벨상을 이미 받았어야 하는데 못 받은 한 사람과, 앞으로 받을 세 사람이 있다."라고 말한다. 이때 '못 받은 한 사람'은 르 클레지오(2008년 수상)이고, '앞으로 받을 사람 세 사람'은 오르한 파묵(2006년 수상)과 모옌(2012년 수상) 그리고 황석영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노벨 문학상이 곧 나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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