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투어 쇼펜하우어는 비관의 철학자다. 고통을 삶의 본질로 여긴다. 쇼펜하우어는 고통은 단순한 소멸해야 하는 아픔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탄생하고 새로운 가치관을 성립시키는 것으로 보고 '살아남고자 하는 의지'가 우리 안에 깃든 욕망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서는 지난 시간에 이어서 지면관계상 다하지 못한 쇼펜하우어 아포리즘의 뒷부분을 알아보고자 하자.
쇼펜하우어 아포리즘(2)
"자신이 증오스러울 때는 자는 것이 최고이다."
반성은 자기혐오이므로 반성으로 자신이 하잖게 느껴지고 증오스러울 때는 기도나 명상, 술을 먹는 것 어떤 것보다도 자는 것이 최고이다.
"인간의 불행 중 상당수는 혼자 있을 수 없어서 생기는 일이다."
지식이 있는 사람은 고독으로 첫째, 자기 자신과 함께할 시간을 얻고, 둘째, 타인과 함께하지 않을 자유를 얻는다. 인간이 겪는 모든 고뇌는 교제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교제에는 많은 강제와 고충, 위험이 따른다. 따라서 공동체 사회가 추구하는 공동의 가치관인 사회성은 타인의 높은 수준에 나를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가장 낮은 수준에 나를 떨어뜨리는 행위가 된다.
"나는 왜 다른 사람의 판단에 휘말리는 것일까?"
내가 내 삶을 판단하고 결정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시선 속에 행복을 느낀다. 내가 바라보는 나보다도 그들이 바라보는 나를 더욱 사랑한다. 그 이유는 한마디로 나는 정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정직한 사람이면 나는 사람들 앞에 겸손하게 행동하였을 것이다. 그들이 나를 높이 평가하는 데 두려워했을 것이고, 나를 비웃는 조롱에 감사했을 것이다. 나는 작은 비판에 분노하고, 입에 발린 칭찬인 줄 알면서도 교만하였다. 인간은 누구보다 자기 자신에게 정직해져야 한다. 지금 나는 본래 가진 능력보다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나를 감동시키는 것은 사랑이다. 사랑의 표현은 기다림이고 기다림은 고통이다. 따라서 사랑은 고통과 기다림에 대한 인내이다. 고통과 기다림이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내가 고통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했다는 증거이다.
"우정을 우연에 맡겨서는 안 된다."
배울 점이 있는 친구를 사귀려고 노력해야 한다. 자신의 가치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사람과 가까이해서는 안된다. 참된 우정의 목표는 인생의 성공을 기약하는 결실이다. 우정에는 약한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 좋은 친구를 찾는 방법은 예의이다. 가족의 위로는 의무이지만 친구의 위로는 선택이며 희생이다. 성공과 행복뿐만 아니라 불행과 절망도 같이 나누었을 때 그를 친구라고 부를 수 있다. 사소한 일에 친구의 도움을 요청하여서는 안 된다. 그것은 친구의 호의를 이용하는 것이지 우정이 아니다.
"사람들이 원하는 나로 평생을 살 수는 없다."
현실에서 내가 다른 사람을 칭찬하는 이유는 그에게 칭찬을 듣고 싶어서다. 내가 그를 경멸하는 이유는 그가 나보다 더 훌륭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원하는 나로 평생을 살 수는 없다. 사람들의 눈높이에 나를 맞추려는 순간 모든 불행이 시작된다. 내가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면 사람들도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게 될 것이다.
"소유는 만족이 아니라 의무의 시작이다."
내가 그것을 사랑하거나 소유할 때는 과연 소유할 자격이 될 수 있는가? 솔직하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을 천국으로 만드는 방법은 아무것도 욕심내지 않는 것이다.
"나보다 비참한 자들이 나를 행복하게 해 준다.
즐거움, 행복, 만족은 소극적인 감정으로 대상이 없다. 즉 대상보다도 감정이 더욱 중요하게 느낀다. 그러나 고통, 절망, 고뇌에는 대상이 있다. 이러한 대상을 나를 불행하게 만들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따라서 불행과 고뇌와 절망에서 가장 빨리 위로받으려면 나보다 더 비참한 자들을 찾아내는 것이다. 인생은 대상과의 휴전이 없는 전쟁이다. 이 전쟁에서 끝까지 살아남는 자는 죽음뿐이다.
"적과 동지를 구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나의 불행을 타인에게 이야기하는가, 하지 않는가에 따라 적과 동지가 구별된다."
인격의 특징 중 하나가 이중성이다. 충고가 필요한 사람일수록 간섭을 싫어하고, 위로가 필요한 사람일수록 동정을 증오한다.
"불행이 터졌을 때보다 불행이 지나간 후가 더 중요하다."
불행이 벌어지지 않았기를 기대해 봐야 소용없다. 불행의 원인이 되었을지 모르는 자신의 태만이나 무모함, 불성실을 후회하기에도 늦었다. 불행 그 자체로 징계이므로 불행이 이미 지나갔는데 자기 징계를 반복하는 것은 그 자체로 또 다른 불행을 불러오게 되는 비극이 된다. 변명이나 축소, 미화할 필요 없이 깨끗이 인정하고 덮어버리면 그만인 것이다.
"그대의 오늘은 최악이었다. 내일은 오늘보다 저 나쁠지도 모른다."
소크라테스는 살기 위해 먹고 마시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친다. 먹고 마시기 위해 사는 것은 악인이라고 말한다. 젊은이들이여, 돈과 명예에 삶을 팔지 말라. 가진 자는 빼앗김을 두려워하고, 이름을 얻은 자는 기억되지 못함을 두려워하며 산다. 평화와 안식은 삶의 의지를 빼앗는 적이다. 그대의 삶이 평안과 안식을 누리게 되었을 때 그대의 삶은 사육자의 의지를 따라게 된다는 것을 명심하라.
"나는 타인에게 필요한 물건이 되길 거부하겠다."
나는 상품이 아니다. 고객들의 구경거리가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들 마음대로 나를 진열대에 전시하고 싶어 한다. 내가 저지른 행위에 대한 책임은 내게 있으며, 이를 판단하는 도덕적 관점도 나의 것이다. 타인이 자신의 도덕적 개념을 들먹이며 나의 행동을 판단하는 것은 권리에 대한 남용이다. 그런 행위야말로 비도덕의 핵심이다.
"오직 질문을 통해서만 성장한다."
인간은 질문을 통해 살아가는 이유와 목적, 그 속에서 얻어지는 의미와 가치를 추구한다. "왜 사는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가치 있는 삶이란 무엇인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맺음말
우리는 여기에서는 요즈음 많이 인용되고 있는 주옥같은 금언이자 잠언인 <쇼펜하우어 아포리즘>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쇼펜하우어는 인간 실존 자체를 철학의 목적이자 궁극적인 진리로 삼아 사람은 어떻게 죽어야 하고, 우리가 사는 세계는 어떻게 파멸하는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한다. 따라서 쇼펜하우어의 절망은 끝이 아니라 몰락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잉태하는 위대하고 능동적인 절망인 것이다. 그에게는 고통은 단순한 소멸해야 하는 아픔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탄생하고 새로운 가치관을 성립시키는 것이다. 그는 '살아남고자 하는 의지'가 우리 안에 깃든 욕망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후세에 정신 분석학자인 칼 구스타프 융은 "나의 탐구가 가져다준 가장 큰 결실은 쇼펜하우어였다. 그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고통과 고난에 대해서 처음으로 이야기한 사람이다."라고 그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
※ 쇼펜하우어의 생애와 사상 및 후세에 끼친 영향, 염세주의, 아포리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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