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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몽골 징기스칸의 유럽 침략 - 칼가강 전투, 레그니차 전투와 모히 전투

by 이야기마을촌장 2024. 10. 1.

칭기스 칸(테무진)은 1206년에 몽골 제국을 건설하여 여러 차례의 정복 전쟁을 걸쳐 동쪽의 태평양에서 서쪽의 다뉴브 강과 페르시아 만까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영토를 가진 제국을 건설한다. 여기에서는 칭기스 칸의 생애와 업적 그리고 유럽을 정벌하는 과정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징키스칸

 

칭기즈칸

· 생애

테무진(칭기스 칸 1162~1227)은 1162년 몽골의 바이칼 호수 근처에서 태어난다. 그의 아버지 예수게이는 보르지긴 부족의 족장이었으나, 테무진이 9살이 되었을 때 적대 부족인 타타르족에 의해 독살당하였다. 이로 인해 테무진과 그의 가족은 고난의 시기를 겪게 된다. 테무진은 어린 시절부터 강한 의지와 리더십을 보였다. 그는 카리스마와 전략적 사고로 점차 많은 지지자들을 모은다. 그리고 자무카와 토그릴과 동맹을 맺어 아내 보르테를 구출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자무카와의 관계는 점차 악화되어 결국 전쟁을 하게 된다. 1206년, 테무진은 몽골의 여러 부족을 통합하고 '위대한 왕'이라는 의미의 "칭기스 칸"이라는 칭호를 공식적으로 채택한다. 그는 몽골 제국을 건설하고, 군사적, 정치적 개혁을 통해 부족 구조를 통합된 공로제로 변모시킨 후 탕구트족의 서하, 여진족의 금나라, 거란족의 서요(카라 키타이), 오구즈족의 호라즘 제국 등을 정복하여 제국의 영토를 확장한다. 호라즘을 정복함으로써 몽골은 실크로드의 중요 거점을 장악하고 나중에 바투와 수부타이 원정군이 동유럽을 공격할 수 있는 길을 열게 된다. 칭기즈칸은 1226년 11월 서하 원정을 마무리하는 단계에서 낙마 사고를 당하여 그 후유증으로 중병에 걸리게 된다. 이듬해 1227년 3남인 오고타이를 대칸으로 지목하고 7월 12일 66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 업적

칭기즈칸은 대제국을 건설하는 등 군사적 능력뿐만 아니라 행정적, 문화적 측면에서도 큰 영향을 미친다. 그의 대표적인 업적은 다음과 같다. 1. 몽골의 여러 부족을 통합하여 강력한 몽골 제국을 세운다. 2. 기병과 궁술 전략을 도입하는 등  군사 전략 혁신하여 전투에서 큰 성공을 거둔다. 3. 아시아와 유럽의 광대한 영토를 정복한다. 4. 효율적인 행정 시스템과 군사 조직을 도입하여 제국을 효과적으로 관리한다. 5. 다양한 종교를 허용하고 존중하는 정책을 펼친다. 6. 무역로인 실크로드를 활성화하여 동서양 간의 무역과 문화 교류를 촉진한다.

· 칭기즈칸의 가족들 

칭기즈칸(테무진)은 이들은 주로 정복한 지역에서 얻은 공주나 여왕들로 여러 명의 부인과 많은 첩을 두었다. 이들 중 일부는 칭기즈칸의 주요 부인으로 인정받아 독립적인 관리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많은 자녀를 두었습니다. 그중 보르테는 칭기즈칸의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부인으로 그들의 결혼은 아버지들에 의해 어릴 때 약속되어 있었다. 보르테는 징키스칸의 네 아들 주치, 차가타이, 오고타이, 톨루이의 어머니로 징키스칸의 많은 군사 원정에 함께 동행을 한다. 징키스 칸은 많은 그들은 징키스칸의 유산을 이어받아 몽골 제국을 더욱 확장시키고 발전시킨다. 주치는 보르테의 첫째 아들로, 징키스칸의 후계자 중 한 명이다. 차가타이는 두 번째 아들로, 중앙아시아 지역을 통치한다. 오고타이는 세 번째 아들로, 징키스칸의 사후 몽골 제국의 대칸이 된다. 톨루이는 네 번째 아들로, 몽골 제국의 군사력을 강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몽골의 폴란드 정벌

· 칼가강 전투 

칭기즈칸의 명을 받은 몽골의 장군 제베수부타이는 도망가는 호라즘 왕국의 왕 무함마드 2세를 추격한다. 그러나 그가 카스피해 섬에서 병사하자 카푸카스 지방의 조지아 왕국과 아제르바이잔을 정벌한다. 이때 킵차크족과 러시아 공국 연합국 8만과 몽골군 3만 명칼가강 전투에서 몽골 군이 승리하여 키예프공국을 마지막으로 러시아를 무너뜨리고 킵차크 족장을 암살하여 죽인다. 몽골 장군 제베는 병으로 사망하고 수부타이는 몽골로 돌아간다. 얼마 후 칭기즈칸이 사망하자 아들 오고타이 칸은 서하와 금나라를 정벌하고, 바투를 총사령관으로 수부타이를 부사령관으로 하여 12만의 군사를 이끌고 유럽을 정벌할 것을 명령한다. 러시아 침입에 대비한 민족이었던 볼가강 지역의 불가르 족 불가리아는 2만 5천의 몽골군을 대적하였으나 전쟁에 패한다. 이에 잔인한 성품의  바투는 불가르족 인구의 80%를 학살한다.

 

· 레그니차 전투

그로부터 2년 후 1237년 러시아공국은 지난번 칼가강 전투에서 패한 경험이 있었으나 이번에는 12만의 몽골군을 상대한다. 몽고는 먼저 뇌물과 공작으로 라잔공국을 분열시키고 침략하여 바투는 사절단을 모두 죽이고, 수부타이는 라잔공국을 완전히 폐허로 만든다. 그 후 수즈달공국을 3일 만에 정벌한다. 그러나 눈이 녹아 진흙탕이 되자 마지막으로 남은 노브고르도공국을 치지 못하고 남쪽으로 방향을 돌린다. 코젤스크 전투에서 바투는 7주 만에 성을 함락시키고, 키예프공국과의 전투에서 바투는 수부타이에게 지휘를 맡겨 성을 함락시키고 50만 명을 학살한다. 그러자 폴란드의 헨리크 2세는 튜튼 기사단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군대를 모집한다. 한편 몽골군은 헝가리의 판노니아 대평원을 정복하는 것을 목표로 우선 폴란드를 차단한다. 이에 몽골군은 폴란드 헨리크 2세를 제1군의 바이다르와 오고타이의 아들 카단 그리고 제2군의 오르다가 1만 5천의 군사를 이끌고 상대하기로 하고 제3군은 수비타이와 바투가 지휘를 한다. 몽골의 오르다는 폴란드가 군사를 모으기 전에 격파하기로 작정한다. 제1군의 바이다르와 카단은 투르스코 전투에서, 제2군의 오르다는 망구다이 전술(거짓후퇴 전술)을 사용하여 전쟁에서 승리한다. 헨리크 2세는 크리엘닉에서 제1군 바이다르와 카단을 공격하다 실패한다. 보헤미아 왕국의 바틀라프군사 2만이 구원병으로 출병하였으나 브로츠와프를 포기하고 시간을 벌어 몽고군에 대비한다. 그러나 바이다르와 카단은 이에 대비하지 않고 약탈만 계속하고 있었다. 그러자 오르다가 합세하여 보헤미아 왕국의 바츨라프 1세의 2만 군사가 도착하기 2일 전에 5천의 군사로 8천의 헨리크 2세를 공격하는 레그니차 전투(발슈타트 전투)를 시작하여 폴란드의 1진은 망구다이 전술에 말려 모라비아 왕자와 튜튼 기사들이 죽고 섬멸된다. 그 후 몽골군의 정예병과 폴란드 2진과의 전면전에서 파르디안 샷(활을 쏘고 도망가는 궁기병의 전술)에 말려들어 튜튼 기사단과 헨리크 2세는 전멸하게 된다. 이에 폴란드는 여러 공국으로 쪼개지게 된다. 구원병으로 출동한 바츨라프 1세는 폴란드군의 패전 소식을 듣고 헝가리로 가지 않고 그대로 후퇴하고 자국 보헤미아 방어에 전념하기로 한다. 헝가리 주변의 강국들은 아무도 원병을 보낼 수 없었다. 레그니차 전투의 승리로 몽골군은 폴란드 침공에 완벽하게 성공을 한다. 

 

 

몽골의 헝가리 정벌

· 모히 전투(셔요강 전투)

1241년 헝가리의 판노니아 대평원의 동부지역인 모히 평원과 셔요 강 지역에서 수부타이(3만)와 바투(4만)가 지휘하는 7만의 몽골군과 헝가리 왕국과 크로아티아 왕국의 국왕 벨러 4세의 6만의 헝가리군이 싸운 전투에서 몽골군이 대승을 한다. 대주교 우그린이 지휘하는 헝가리 중갑기병이 진흙 늪에 빠져 전멸한다. 헝가리는 다시 군사를 모아 벌어진 셔요 강 전투에서 바투는 다리를 건널 때 공격하자는 수부타이의 계략을 따르지 않고 혼자 공격하다가 오히려 다리에서 공격을 당해 섬멸당할 위기에 빠진다. 이때 수부타이가 이끄는 별동대가 부교를 건설해 셔요 강을 건너고 헝가리군의 후방을 공격한다. 공격을 하던 수부타이는 전투 중 몽골군의 공성무기가 있는 곳까지 후퇴 명령을 내리고 나프타 폭탄과 화염 공격으로 헝가리 군을 섬멸한다. 이때 우그린은 사망하고 벨러 4세는 도망을 간다. 이 전투를 모히 전투 또는 셔요강 전투라고 한다. 그 결과 헝가리는 8개월간 철저하게 파괴되고 헝가리 왕국은 붕괴의 위기에 빠지게 된다. 그 후 오고타이의 사망으로 쿠릴타이(대칸 선출회의)에 참석하게 되어 몽골의 유럽원정군은 더 이상 서유럽으로 진격하지 않고 몽골로 돌아가게 된다. 귀환 도중 바투는 킵차크 칸국의 세우고 칸이 되었으며, 수부타이는 구유크 칸이 대칸으로 옹립된 이후에도 장군으로 활약하다가 73세의 나이로 사망하게 된다.

 

 

맺음말

여기에서는 칭기스 칸의 생애와 업적 그리고 유럽을 정벌하는 과정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칭기스 칸은 1206년 몽골의 여러 부족을 통일한 후 빠른 기동력과 기마술로 세계를 정복하고 대제국을 건설한다. 그는 호라즘을 정벌하고 4명의 아들에게 제국을 분봉하여 다스리게 한다. 이것이 4대 칸국의 시작이다. 칭기스 칸의 사후, 몽골 제국은 그의 후손들에 의해 네 개의 주요 칸국으로 분할된다. 1. 원나라 (Yuan Dynasty): 쿠빌라이 칸이 중국에 세운 칸국으로, 베이징을 수도로 삼는다. 원나라는 몽골 제국의 중심지로서, 중국 전역을 통치했다. 2. 일한국 (Ilkhanate): 페르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한 칸국으로, 훌라구 칸이 세웠다. 일한국은 이란, 이라크, 아제르바이잔 등을 포함한 지역을 통치했다. 3. 차가타이한국(Chagatai Khanate): 중앙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한 칸국으로, 차가타이 칸이 세웠다. 이 칸국은 오늘날의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등을 포함한 지역을 통치했다.  4. 킵차크한국 (Golden Horde): 동유럽과 러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한 칸국으로, 바투 칸이 세웠다. 킵차크한국은 러시아, 우크라이나, 카자흐스탄의 일부 지역을 포함한 광대한 영토를 통치했다. 이러한 네 개의 칸국은 각기 다른 시기에 붕괴되었지만, 몽골 제국의 유산은 전세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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