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나라의 재상 오고대부 백리해는 30세에 공부를 시작하여 40년간 여러 나라를 전전하며 고생한다. 70세에 진목공을 만나 등용되어 진나라의 명재상으로 활약하게 된다. 그는 건숙, 유어 등 능력 있는 인재를 진목공에게 추천하여 나라의 기초를 탄탄히 다지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재상 백리해의 도움으로 진목공은 서융지역의 패자가 된다. 그리고 유랑생활, 노비로서의 생활, 초나라에서 소 키우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이야기, 진목공을 만나 재상이 되는 이야기 등을 오고대부 백리해와 진(秦) 목공과의 관계를 통해 알아보고자 한다. 정말 인생역전, 인간승리의 산증인이 되는 백리해의 이야기는 요즈음 현대인에게는 많은 울림을 준다.
출생과 유랑생활
백리해는 우나라 사람이다. 그는 소 키우는 목축을 잘하고 좋아했다. 그는 30세에 두씨 부인과 결혼하여 아들 백리시(맹명시)를 낳았다. 30세에 공부를 시작하여 3년쯤 지났을 때 두 씨 부인의 권유로 입신양명을 위하여 세상을 돌아다니기로 결심하고 고향을 떠난다. 제나라에서는 너무 힘이 들어서 거지와 같은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던 중 건숙을 만나 의형제를 맺고 그의 집에 더부살이를 한다.
건숙의 충고
건숙은 제나라왕 공손무지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충고하여 찾아가는 것을 말린다. 또 왕자 퇴가 소 키우는 사람을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려는 것을 그도 역시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또 말린다. 그러나 벼슬을 간절히 원하는 백리해가 이번에는 우나라 임금 우공을 찾아가려 하자 건숙은 그도 큰 인물이 아니라고 반대하지만 더 이상 말리지는 못한다. 그는 고향 우나라로 간다.
궁지기와 만남
백리해는 건숙의 친구인 궁지기의 추천으로 중대부가 되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진나라가 우나라 군주에게 괵나라를 치려고 하니 길을 빌려달라고 한다. 이때 재상 궁지기는 "괵나라와 우나라는 입술과 이의 관계와 같다"라고 하며 이를 반대했다(순망치한(脣亡齒寒) :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라는 뜻의 고사성어). 그러나 우왕 말을 듣지 않는다. 결국 진(晉) 나라가 괵나라, 우나라를 차례로 정벌하여 백리해는 포로로 잡혀 진나라의 노비가 된다. 그 후 진헌공의 딸 목희공주가 진(秦) 목공의 부인이 될 때 노비로서 딸려 가는 중 초나라로 탈출한다.
초나라의 생활
탈출한 백리해는 초나라에서 야인을 만나 소를 키우며 살아간다. 그가 소를 잘 키운다는 것을 관리가 초성왕에게 추천한다. 그 소식을 들은 초나라 성왕이 그를 어인으로 삼아 남해로 보내 말을 키우게 한다. 한편 진목공은 목희공주의 결혼예물 노비명부에 백리해가 빠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진나라 사람 공손 지를 통해 그의 인물됨을 알게 되었다.
진목공과 만남
진목공은 백리해를 모셔오려고 초 성왕에게 많은 예물을 주고 데려오려고 하자 신하 공손 지는 이를 말린다. 그렇게 하면 초성왕이 그가 현자임을 알아보고 주지 않고, 중한 자리에 쓸 것이라고 말한다. 이에 숫양가죽 5장(노비의 몸값)을 주고 "도망간 죄를 묻게 하려고 하니 돌려달라"라고 하면, 초성왕은 돌려줄 것이라고 공손 지는 계책을 말해준다. 그 결과 진 목공은 백리해를 얻게 된다. 오고대부라는 이름을 이때 얻게 된다. 즉 '오고대부'라는 말은 '숫양 다섯 마리 값의 정승'이라는 뜻이다. 백리해는 뛰어난 인재(건숙, 유여 등)를 왕에게 천거하였으며, 진나라의 2명의 왕을 옹립하였고, 진목공에게 서쪽지방을 먼저 통일한 후에 힘을 길러서 중원에 진출하라고 조언을 하였다. 진나라의 초석을 닦는 데에 큰 기여를 하게 된다. 다음은 위대한 정승인 백리해의 활약에 대하여 알아보자.
· 진혜왕 옹립
진(晉) 나라 헌공의 죽자 왕위계승 다툼이 벌어진다. 이때 재상 백리해의 간언으로 진(秦) 목공은 하서지방의 땅을 받기로 약속을 하고, 공자 이오(진혜왕)를 도와 왕이 되게 만든다. 그러나 진혜왕은 이극을 죽이고 난 후에 진목공에게 약속한 하서지방의 땅을 주지도 않았다. 또 백리해의 요청으로 진목공은 가뭄에 처한 진혜왕을 도왔다. 그런데 이듬해 진(秦) 나라에 가뭄이 닥치자, 진혜왕은 오히려 전쟁을 일으킨다. 전쟁 중에 진목공은 한원전투에서 포위를 당해 위기에 처했으나, 300명의 결사 구원군으로 위기에 벗어나 오히려 진혜왕을 사로잡는다. 화가 난 진목공은 그를 죽이려고 하였다. 이때 진혜왕의 이복 누나인 부인 목희의 반대로 태자 어를 볼모로 잡고 혜왕을 풀어준다.
· 진문공 옹립
진 혜공이 죽자, 진(秦) 나라 인질로 잡혀있던 태자 어가 도망가 진(晋) 회공이 되었다. 인질이 마음대로 도망가자, 진(秦) 목공은 크게 화내었고, 이에 중이를 진(晉) 나라 왕으로 만들기 위해 초나라에 머무르던 중이를 부른다. 이에 중이는 진목공의 부름에 따라 진(秦) 나라 군대를 이끌고 고향 진(晉) 나라로 돌아온다. 진 혜공의 폭정에 시달리던 백성들은 중이(진 문공)를 왕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 백리해의 은퇴
진문공이 죽은 후 진나라와 동맹국인 정나라 원정을 신하 백리해, 건숙이 반대하였으나 진목공은 듣지 않고 출정하였다. 이때 백리해와 건숙은 울면서 말렸고, 효산에서 매복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을 한다. 진(晋) 나라 땅 활에 도착하였을 때 정나라 상인 현고가 소 12마리 바치며 정나라가 침공에 대비한다는 말을 한다. 결국 진나라와 1차 효산전투에서 패하게 된다. 과연 백리해의 예상대로 효산에서 매복이 있었다. 그 후 좌서장 백리해와 우서장 건숙(2명의 재상)은 재상직을 버린다. 그 후 백리해의 아내 두씨 부인이 아들과 함께 찾아와 40년 만에 재회를 한다.
※ 다음은 이 글과 관련이 있습니다. 춘추오패 서융의 패자 '진(秦) 목공'과 백리해, 건숙, 유여
맺음말
우리는 위에서 오고대부 백리해와 진목공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위대한 재상 백리해는 뛰어난 인재를 진목왕에게 추천하였으며 그리고 진목공에게 '서융지방을 합병하여 국력을 길러 중원에 진출하라'라고 하였다. 동으로는 강력한 진(晉) 나라를 굴복시키고, 서로는 신하 유여의 계책으로 12개 나라를 병합하게 된다. 드디어 진목공은 서융지방의 패자로 등극한다. 이와 같이 재상 백리해는 나라의 기초를 튼튼히 하였다. 그러한 선견지명 때문인지 몰라도 정말로 그로부터 400년 후 진나라는 최초로 천하를 통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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